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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토하의 칠극을 통해 보는, 18세기 조선과 4~5세기 이집트 사막에서의 그리스도교 수도적 삶의 연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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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6 ㅣ No.1919

[특별 기고] 판토하의 『칠극』을 통해 보는, 18세기 조선과 4~5세기 이집트 사막에서의 그리스도교 수도(修道)적 삶의 연결성

 

 

조선에 전래된 대표적 서학서(西學書), 『칠극』(七克)

 

『칠극』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스페인 출신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1571~1618)가 한문으로 쓴 일종의 “그리스도교 수양서”1)이다. 판토하는 남경에서 마테오 리치(1552~1610)를 보좌하다가 1601년 그를 따라 북경으로 진출했다. 『칠극』은 1614년 북경에서 총 7권으로 출간되었으며,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함께 중국을 넘어 “조선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서학서”2)이다. 이 책이 조선에 전래된 때는 북경에서 출간된 직후였던 듯하다.3) ‘칠극’이라는 제목은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인 칠죄종(七罪宗)을 덕행(德行)으로 극복함으로써 자신을 이겨야(克己) 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가리킨다.4)

 

 

『칠극』과 4~5세기 이집트 사막 은수자들의 그리스도교 수도자적 수행

 

『칠극』이 제시하는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악덕과 그것들에 대항하는 일곱 가지 덕행(‘교만’을 이기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어짊과 사랑’, ‘탐욕’을 이기는 ‘베풂’, ‘성냄’을 이기는 ‘인내’, ‘식탐’을 이기는 ‘절제’, ‘음란함’을 이기는 ‘정결’, ‘나태함’을 이기는 ‘근면’)은 성경에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성경과 덕행의 관계는 뒤에 가서 논의하겠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성령의 힘과 사탄적 악의 세력의 대조라는 관점에서 덕과 악덕을 보면서 선을 향한 분투를 담고 있는 『칠극』의 그리스도교적 전통의 원류는 보다 직접적으로는 4~5세기 이집트 사막 수도자들의 전통에서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도교 수도원주의는 이집트 외에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티나, 소아시아 등지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발전했는데, 특히 이집트에서 이미 4세기에 꽃을 피웠다. 4세기에 동방 수도승 영성을 체계화시키고 심화시킨 이는 이집트 켈리아의 수도승이었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345년경~399)이다.5) 그는 소아시아 흑해 근처 폰투스 지방에서 태어났고, 대 바실리우스(330~379)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90)와 같은 이름난 카파도키아의 교부들과 일찍부터 친분을 맺으며 활동했다. 하지만 삶의 풍파를 겪으면서 382년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고, 383년경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막 지역인 니트리아에서 2년 동안 수도승으로 살았으며, 그 뒤 더 깊은 사막인 켈리아로 가서 수도승으로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는 저술작업을 하고 제자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당대 이집트 사막 은수자들의 뛰어난 지도자였던 이집트의 마카리우스,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 그리고 암모니우스는 에바그리우스의 수도승 생활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6) 에바그리우스의 현전하는 수도원주의적 글은 그가 탁월한 이집트 출신의 영성가들에게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집트적 가르침을 배웠고, 마침내 그의 고유한 그리스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훈련을 함께 사용하여 그리스어를 쓰는 세계에 콥트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전하고 그 영성의 통찰을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체계화시킬 수 있었음을 드러낸다.7) 에바그리우스는 이집트 사막 은수자들에게서 관찰되던 악한 생각에 관한 오랜 전통을 토대로 여덟 가지 악덕 목록에 대한 가르침을 몇몇 작품에서 표명한다. 특히 『프락티코스』(Praktikos)8에서는 여덟 가지 악덕 목록과 함께 그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각 악덕의 치료법을 내놓았다. 탐식, 음욕, 탐욕, 슬픔, 분노, 아케디아(나태), 헛된 영광, 교만이 바로 그 목록이다.9) 이는 『칠극』의 일곱 가지 악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두 목록을 비교할 때 판토하의 17세기 저서 『칠극』에만 제시되는 악덕은 ‘질투’이고, 에바그리우스의 4세기 저서에서만 제시되는 악덕은 ‘슬픔’과 ‘헛된 영광’이다.

 

수도승들의 수도자적 삶 전체에서 악덕 혹은 악한 생각을 거슬러 싸우는 분투는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에바그리우스에게 영적인 생활의 두 측면은 크게 ‘수행(프락티케)’과 ‘관상 혹은 인식(그노스티케)’이다. 그노스티케는 또다시 두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자연에 대한 관상 혹은 인식(피시케)’과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관상 혹은 인식(테올로기케)’이다.10) 여덟 가지 악덕에 대항하는 훈련과 주로 관련되는 『프락티코스』의 중심 주제는 ‘프락티케’로서, 그것은 “영혼의 욕정부[Passionate part]를 정화하는 영적 방법”11)으로 설명된다. 이런 정화의 수행 과정이 그노스티케, 곧 관상 혹은 인식에 필요한 조건이 된다. 이런 체계 안에서 수도승 생활은 영혼의 ‘악’과 ‘무지’를 제거하여 ‘덕’을 쌓고 참된 ‘관상 혹은 인식’을 얻기 위해 전적으로 투쟁하는 생활이라 할 수 있다.12) 물론 이 큰 그림 안에서 프락티케와 그노스티케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만이 아니라 상호작용적으로 발전해가는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이 영적인 삶을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하는 이론적 틀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 전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하는 삶’으로서의 ‘프락시스(Praxis)’와 ‘관조하는 삶’으로서의 ‘테오리아(Theoria)’를 말했으며, 이 틀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기원전 30년경~기원후 45년경), 그리고 그리스도교 교부들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년경~215년경)와 오리게네스(185년경~253년경)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이런 전통 안에서 에바그리우스가 4세기 후반에 사막의 그리스도교 수도원주의 맥락에서 프락시스/테오리아의 틀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도교 수도원주의의 도덕적 수행을 이해함에서 우리는 성경 전체에 내재된 모럴 기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 전통은 직접적으로 종교적 중요성을 갖는 근본적인 요소들, 가령 이집트 탈출 과정에서 있었던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하느님과의 만남,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깨우침과 체험 같은 요소들에 토대를 두고 도덕성을 형성했다. 예를 들자면, 성경적 전통 안에서 ‘자비’란 어떤 인간적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지니신 본질적인 특성으로서 사람은 오직 그분의 은총 안에서 그런 자비를 본받아 우리 마음에 자비를 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 마음의 순수성은 하느님의 특성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서 단순한 내면적 청렴함이 아니다. 그 순수성이란 바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마음 상태이다(마태 5,8; 이사 6,5 참조). 우리가 이 글에서 논의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이집트 사막에서의 수도적 덕행의 훈련과 17세기에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저술된 『칠극』의 도덕적 가르침이 이해되는 지점은 바로 위와 같은 종류의 종교적 의미성 안에서다.

 

 

『칠극』과 18세기 조선의 홍유한(1726~1785)의 수도자적 생활

 

조선 후기 학자인 홍유한은 1726년에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 16세 때부터 거의 20년 동안 성호 이익(1681~1763)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당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은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천문, 지리, 과학기술, 그리고 천주교에 관한 서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학서를 읽었다. 『천주실의』와 『칠극』을 읽고 분석하며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13) 한편 홍유한은 이익 선생과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서학서를 공부하던 중, 스승이나 다른 제자들과 달리 천주교 서적을 통하여 유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홍유한과 천주교 신앙의 관련성에 대해 전하는 교회 측 기록은 먼저 1845년 김대건 신부가 부제 때 작성한 보고서에 나타난다.14) 이 문서 후에 쓰인 1862년 다블뤼 주교와 1874년 달레 신부의 기록들은 홍유한의 천주교 신앙생활의 실천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15)

 

한편 적지 않은 연구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홍유한이 천주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고 발전시켜 나간 수도자적 생활을 조명하고 있다.16) 이런 관점(이 글도 같은 관점이다.)에 의하면 그의 수덕생활의 근간에 있던 것이 바로 가톨릭교회의 교리서인 『천주실의』와 함께 일종의 가톨릭 수양서인 『칠극』이었다. 김옥희 수녀는 이렇게 서술한다. “한국 교회사 안에서 엄격한 의미로 보면 교회 창립 초창기, 여명기에 벌써 은수자들이 나왔다. 예컨대 소백산 기슭에서 자발적으로 크리스찬적 은수생활을 하였던 홍유한 선생을 들 수 있겠다.”17) 달레도 그의 저서에서 홍유한이 은수생활을 수행했다는 점에 대한 당대 세간의 구전 전통을 짧게 암시한 바 있다. “홍유한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고적한 곳에서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백산[소백산]에 들어가 13년 동안을 지냈다고 한다.”18) 마백락도 홍유한의 “수덕자적인 신앙의 삶”을 강조하면서, “1751년부터 성호 이익 선생과 제자들이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 서학 서적을 연구할 때 신앙의 진리를 크게 깨달아서 스스로 천주교 수계생활을 시작한 홍유한 선생의 30여 년간 천주교 수덕생활은 참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라고 피력한다.19) 다블뤼 주교는 수덕자로서의 홍유한이라는 관점에서 서울을 떠난 후 그의 거주지 이동을 설명한다. “처음에 예산에서 살다가 그는 순흥으로 이사하여 백산 산중에서 13년 동안 숨어 살았다. 거기에서 그는 세상을 피하고 숨어서 종교 실천에 전념하였다.”20)

 

홍유한이 『칠극』에서 제시되는 수덕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언 중 하나는 권철신(1736~1801)이 세상을 떠난 홍유한을 애도하며 쓴 제문에서 나타난다. 권철신은 홍유한 집안과 가까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평소에 홍유한과 가까이 지내며 그를 흠모했었다. 이 제문은 홍유한의 살아 생전 지나치리만치 탁월했던 덕들을 『칠극』의 덕목에 맞추어 회고하되 일곱 덕목 중 여섯 조목을 가리키고 있다.21) 첫째는 식탐을 막는 절제의 덕이다. “식사하실 때는 반드시 그 절반을 더셨고, 어쩌다 맛난 음식과 만나면 더더욱 그 즐김을 절제하였습니다. … 저는 공께서 음식을 절제함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22) 둘째는 음란함을 막는 정결의 덕이다. “젊어서부터 내실에서 지내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었고, 서른 살 이후로는 다시는 자식을 낳아 기르지 않았으므로, 저는 공께서 여색을 절제함이 지나치다고 여겼습니다.”23) 셋째는 나태함을 이기는 근면의 덕이다. “몸에 고질이 있어 기거가 몹시 힘들었는데도 잠자리에 들 때가 아니고는 일찍이 기대거나 눕지 않으셨으니, 저는 공께서 자기 단속이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24) 넷째는 성냄을 이기는 인내의 덕이다. “뜻하지 않게 나쁜 일이 생겨도 조용히 즐겁게 받아들여, 남을 비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바르다고 변명하지도 않았으니, 저는 공께서 참고 견디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였습니다.”25) 다섯째는 교만을 이기는 겸손의 덕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 마루 아래에서 절을 올리면 반드시 몸을 움직여서 답례하였고, 평소에 말을 쉽게 하지 않아 일찍이 몸소 장담한 적이 없었으니, 저는 공이 겸손을 고집함이 과하다고 여겼습니다.”26) 여섯째는 탐욕을 막는 베풂의 덕이다. “길을 가다가 늙고 병든 이와 만나면 말에서 내려 그에게 주고는, 100리의 불볕더위 길을 아픈 몸을 무릅쓰고 걸어갔으니, 저는 공께서 남에게 베푸는 것이 심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27)

 

『칠극』을 되풀이하여 읽으며 묵상하고 실천하였을 홍유한은 가령 교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에 관한 다음의 구절을 음미했을 것이다. “덕을 지녀 남이 이를 알게 하려 하는 것은 본래 죄가 아니다. 「성경」에서는 ‘네 빛을 남 앞에 밝게 드러내 너의 선행을 볼 수 있게 하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찬미를 드려라.’(마태 5,16)라고 했으니, 오직 덕을 가지고 자기에게 돌리거나 선을 가지고 이름을 얻으려 드는 것이 죄가 될 뿐이다.”28)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겸손에 대한 구절은 교만을 누르려는 그의 수행에 통찰을 주었음 직하다.

 

세상의 영예가 겸손의 덕을 아우르지 않을 경우는 더욱 욕됨에 가깝게 된다. 겸손은 다른 영예로움은 없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영예라면 영예다. 하지만 겸손이 만약 다른 영예와 함께하면 더욱 영예롭게 된다.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향이 홀로 향기로울 뿐 아니라 다른 물건도 모두 향기롭게 해주는 것과 같다. 다만 교만은 이것과 반대로 하니, 아름다운 덕과 훌륭한 재주가 교만을 받으면 욕스럽게 되고, 물들면 더러워진다.29)

 

자신에게 영예를 돌리고자 하는 교만은 4~5세기 사막의 은수자들에게도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에서 자꾸 멀어지게 만드는 은밀하고 끈질긴 유혹이었다. 다음과 같은 교만의 참모습을 그들은 직시할 수 있어야 했다. “이 [교만의] 악령은 영혼에게 하느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선행의 원인이라고 믿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면모를 몰라주는 형제들을 어리석은 자로 여겨 그들에게 거만을 떨게 한다.”30) 이집트 사막의 수도승 에바그리우스가 이 교만의 깊은 병을 이길 수 있도록 제시한 치유법 하나는 이렇다.

 

그대의 옛 삶과 과거의 잘못들, 그리고 그대가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비를 통하여 아파테이아[수행을 통해 욕정을 극복하여 내적으로 평정한 상태]로 건너갔는지, 그대가 버리고 떠나온 세상이 얼마나 자주 그대를 비참하게 했는지를 기억하라. 또한 생각하라: 누가 그대를 사막에서 보호했는가? 누가 그대를 거슬러 이를 가는 악령들을 몰아냈는가? 이런 생각들은 겸손을 낳고 교만의 악령을 허용하지 않는다.31)

 

18세기 조선 후기의 선비로서 천주 신앙을 갖게 된 후 『칠극』의 가르침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자적 삶을 살았던 홍유한과 4~5세기 이집트 사막에서 그리스도교 수덕생활에 힘쓰던 수도승들의 모습이 겹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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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가톨릭대사전』 11권, “칠극七克” (장정란), 한국교회사연구소, 2006, 8347쪽.

2) 판토하, 정민 옮김, 『칠극』, 김영사, 2021, 675쪽.

3) “우리나라에는 광해군 때 허균(1569~1618)이 『칠극』을 중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출간 직후 이미 조선에 전래되어 많은 학자들에게 읽힌 듯하다.” (『한국가톨릭대사전』 11권, “칠극” [장정란], 8348쪽)

4) 『한국가톨릭대사전』 11권, “칠극” (장정란), 8347쪽.

5)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허성석 역주, 『프락티코스』 ‘역자의 말’, 분도출판사, 2011, 6쪽.

6) 팔라디우스, 『라우수스에게 바친 수도승 이야기』 11.5; 에바그리우스, 『프락티코스』 29, 93, 94.

7) William Harmless, Desert Christians: An 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Early Monasticism,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312.

8) ‘프락티코스’는 ‘활동(수행)생활’로 이해할 수 있다(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허성석 역주, 『프락티코스』 ‘해제’, 분도출판사, 2011, 44쪽).

9)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프락티코스』 본문 6.

10) 에바그리우스, 허성석 역주, 『프락티코스』 ‘해제’, 36~38쪽.

11) 에바그리우스, 위의 책 78, 103쪽.

12) 에바그리우스, 위의 책 ‘해제’, 36쪽.

13) 『한국가톨릭대사전』 9권, “이익”(강세구), 7040쪽.

14) “북경을 드나들던 조선 사신들에 의하여 조선에 천주교 사상이 전파되었고, 천주교 서적들이 전해졌습니다. 같은 시기에 홍유한이라는 철학자는 이미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자연적 사물의 이치로 스스로 깨닫고, 가톨릭교회의 서적을 연구함으로써 진리를 이해하였으며, 비록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처럼 하느님을 공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제1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219·221쪽).

15) 다블뤼 저, 최석우 번역, 「조선 순교자 역사 비망기 사본·1」, 『교회와 역사』, 2005년 1월호(356호), 한국교회사연구소 8쪽; 샤를르 달레, 안응렬·최석우 역주,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296~297쪽.

16) 홍유한이 천주 신앙을 가지고 『칠극』에 의거하여 수덕생활을 실천했는지에 대한 주제로 말하자면 사실 부정적인 의견들도 있다.

17) 김옥희, 「한국 가톨릭 수도회사」, 『오늘의 수도자들: 한국 천주교 남녀 수도회 소개』 한국 남녀 수도자 장상 연합회 엮음, 분도출판사, 1983, 33쪽.

18) 달레, 위의 책, 297쪽.

19) 마백락, 「한국천주교회의 첫 수덕자(修德者) “홍유한 선생의 천주교 수덕생활과 사상”」, 『홍유한과 풍산 홍씨 가문의 천주신앙』, 안동교회사연구소 자료집 8, 2015년, 30·33쪽.

20) 다블뤼 저, 최석우 번역, 위의 글, 8쪽.

21) 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 2022, 48쪽.

22) 제문 인용문은 정민 교수의 한문 제문 국문 번역을 따른다. 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 2022, 46쪽.

23) 정민, 위의 책, 46쪽.

24) 정민, 위의 책, 46~47쪽.

25) 정민, 위의 책, 47쪽.

26) 위와 같음.

27) 위와 같음.

28) 판토하, 정민 옮김, 『칠극』 1.66, 김영사, 2021, 82~83쪽.

29) 판토하, 위의 책 1.96, 106쪽.

30)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허성석 역주, 『프락티코스』 14, 70~71쪽.

31) 에바그리우스, 위의 책 33, 79쪽

 

[교회와 역사, 2025년 9월호, 전경미 체칠리아(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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