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7일 (금)
(녹)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자리를 잡고 안정을 얻으면(공간 심리학)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991

[레지오와 마음읽기] 자리를 잡고 안정을 얻으면(공간 심리학)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은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베트남 평화 협정’이다. 이는 미국-남베트남 측과 북베트남-베트콩 측의 2:2 협상으로, 장장 4년 8개월 14일 동안이나 진행되었다. 특히 첫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회의에 사용할 테이블 모양과 자리 배치를 두고 8개월이나 논쟁해, 결국 큰 원형 테이블에 두 개의 작은 사각형 테이블을 놓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이로써 원형 테이블은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하였고, 덧붙여진 작은 테이블은 남베트남과 베트콩을 협상의 동등한 자격자로 보이게 했다. 이 사례는 자리 배치가 비언어적 요소이긴 하나, 각 세력의 정치적 위상뿐만 아니라 정통성을 상징하는 등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심리학이 있다. 바로 ‘공간 심리학’이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이 개인의 생각과 감정, 나아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캐나다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소머는 이런 공간 심리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도서관, 카페, 교실 같은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자리에 앉는 순서, 사람들끼리 대화가 이루어지는 빈도, 신체적 거리 등을 관찰·기록하였다. 또 의도적으로 만든 실험실에서 위와 같은 여러 가지 행동을 관찰·기록하여 두 상황의 결과를 비교하였다.

 

 

사람들은 서로 앉는 위치에 따라 상호작용이 달라져

 

그의 연구 중 유명한 실험은 테이블의 형태와 좌석 배치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소머에 따르면 두 개 다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사람들이 더 많이 대화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보이는 것은 원형 테이블이다. 이는 원형 테이블이 상석-하석이 없는 평등하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반면 직사각형 테이블은 권력관계나 대립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특히 직사각형 테이블 양쪽 끝 위치는 심리적으로 우월한 위치로 인식된다. 

 

그는 또 사람들이 서로 앉는 위치에 따라 상호작용이 달라진다고 했다. 서로 마주 보는 경우 상대의 시선과 표정이 명확하게 보여 대화에 집중할 수 있으나, 경쟁이나 대립의 느낌이 있어 공식적인 회의나 협상에 적합하다. 반면에 서로 90도 각도로 측면에 앉는 경우는 마주 보는 것보다 덜 위협적이며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밀하고 편안한 대화를 유도할 수 있어 카페나 식당에서 가장 선호되는 자리이다. 버스나 비행기에서처럼 나란히 앉는 경우는 두 사람이 함께 화면을 보거나 하나의 서류를 검토할 때 유용하다. 하지만 이 배치는 상대방을 보려면 몸을 돌려야 하므로 대화가 불편하여 자연스럽지 못하고, 옆 사람과 매우 가까워 개인 공간이 침해된다고 느끼기 쉽다. 더구나 각자의 행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 소머의 표현에 의하면 ‘군중 속의 고독’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소머의 연구 외에도 교실 내 자리 배치에 따라 학생들 간의 관계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등의 다른 연구들도 다수 있다. 결국 공간 구성이 사람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40대의 S자매는 열성적인 레지오 단원이었던 엄마의 유언으로 레지오에 입단하였다. 젊고 성실한 그녀는 빠른 시간에 쁘레시디움 간부가 되어 꾸리아에 참석하였는데, 몇 달 되지 않아 그 시간이 버거워 탈단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지시받고 전달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평의회 시간에 사업 보고 논평이나 안건에 대한 의견을 내야 할 때, 생각은 있지만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평의회에서 뭔지 모를 용기가 생겨 발언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꾸리아 회계로 기쁘게 활동한다. 

 

“저는 제가 이중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윗사람의 지시를 잘 따르면서도 마음속은 늘 불만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꾸리아에서 발언을 잘하는 저를 보고 저도 신기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당시 새 꾸리아 단장 선출되면서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자리 배치가 바뀌었고, 어떤 의견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장의 모습이 힘이 되었던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이중적이 아니라 분위기를 타는 성향이었던 거지요.” 

 

 

좌석 배치를 산만하게 하면 레지오 정신이 길러지지 않아

 

교본에 레지오 활동은 본질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추어진 행동이어야 하며, 꾸준하고도 직접적인 접촉을 통하여 활동을 수행하며, 모든 활동을 조용하고 신중하고 침착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434쪽 참고). 그러니 활동의 본질이 친밀한 관계인 만큼 활동의 기초는 만남이다. 활동 대상자를 처음 만날 때와 어느 정도 관계가 진전된 후의 만남은 다소 다를 수 있으니, 활동할 때 만나는 공간뿐만 아니라 서로 대하는 위치까지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교본에서는 영적지도자, 쁘레시디움 간부, 방문자, 새 단원 등의 자리를 정해주고 있다. 이는 ‘좌석 배치를 산만하게 하면 무질서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질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레지오의 정신이 길러지지 않는다.’(교본 181쪽)라고 보기 때문이다. 

 

주회합 제대 또한 ‘회합 탁자로부터 분리시켜 차린다거나, 둘러앉은 단원들의 바깥쪽에 별도로 차려 놓아서는 결코 안 된다’(교본 162쪽)라고 되어 있다. 이 또한 ‘성모상은 모후께서 당신을 따르는 군사들의 한 가운데에 함께 계시는 모습을 드러내’(교본 162쪽)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형태도 모임의 목적에 맞아야 한다. 쁘레시디움의 경우는 ‘쁘레시디움은 강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교본 323쪽)이고, 상급의 지시나 활동 배당하는 단장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원형보다 직사각형 테이블이 좋다. 그리고 평의회는 U자가 이상적이다. ‘평의회의 본질은 그 업무와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하고 자유롭게 토의하는 장소’(교본 239쪽)인 만큼 U자는 강의나 발표처럼 주도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나머지는 이에 참여하는 모양으로 소통이 잘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공간이 주는 심리적 영향을 이해하고 제대로 이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레지오의 추진력은 –중략- 레지오의 영성으로부터 나온다’(교본 126쪽)는 것을 생각할 때,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원인 우리가 레지오 정신으로 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든지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적극적이고 –중략-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성모님께 대한 사랑을 심어 주도록 활동하는 단체’(교본 45쪽)인 사도직 단체, 그것의 대표가 바로 레지오가 아니겠는가!

 

‘각 개인은 –중략- 일단 집단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얻으면 곧 힘을 발휘한다.’(교본 397쪽)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