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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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경 입문15: 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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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입문] (15) 필사 ①
한글날이면 종종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는 ‘한글과 한국어는 다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어, 한국말은 한반도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말하며, 한글은 그 한국어를 시각화해서 표현하기 위해 고안해 낸 문자 체계를 가리킵니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대전환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말이 일회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반면, 문자는 그 말을 저장하고 전파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습니다. 시청각 정보를 녹음이나 녹화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저장,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현대의 전자 혁명 이전, 글은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문자를 쓰고 읽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이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한 공동체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글들은 중요한 전승의 매개체가 되었고,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권위있는 기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문자화된 ‘보편적 기준’도 물리적 한계를 지녔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서들이 낡고, 훼손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래된 글자는 희미해지고, 글자를 담고 있는 소재 역시 낡고 닳아서, 오래될수록 식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정보의 보관과 소통의 도구로서의 기능에도 유효기간이 있었던 셈입니다. 돌이나 금속, 도기에 새겨 넣은 문자들은 훨씬 오래 지속되지만, 파피루스나 양피지, 섬유와 같은 고대의 소재들뿐 아니라 현대에도 가장 널리 통용되는 종이에 이르기까지 문자를 담고 있는 재료들은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집니다. 대신에 펜이나 붓에 잉크나 먹물을 묻혀 문자를 기록하는 것은 정이나 철필로 돌이나 쇠에 새기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필사본의 재료는 점차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변화하는데 처음에는 두루마리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나 오늘날 책의 모양인 낱장을 겹쳐 묶은 코덱스(codex) 형태가 보편화됩니다.
유효기간이 지나 문서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기록들은 보다 선명한 기록으로 옮겨 보존할 필요가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입니다. 글을 담는 재료는 새것이어야 하지만 글의 내용은 옛 것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글에 담긴 권위가 훼손됩니다. 그 권위를 만들어낸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축적된 공동체의 신앙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경우 코덱스 형태 이전, 두루마리 형태의 필사본은 오른손으로 두루마리를 붙들고 왼손으로 펼쳐 읽습니다. 근동의 문자들은 대체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글의 진행 방향도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갑니다. 보통 한번 읽을 때 40-50cm 정도의 넓이로 펼쳐 읽게 되는데 그렇게 펼쳐진 두루마리에는 대략 10-12cm 넓이의 3단 기록이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두루마리의 높이는 30-40cm로 위아래에 3-4cm 정도의 여백을 제외하면 대략 한 단에 35-45행 정도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하나의 문학 작품은 하나의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는데 쿰란의 대이사야서 두루마리의 경우 7.34m의 길이에 이사야서 전체의 내용이 필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큰 작품들은 여러 두루마리로 나누어 기록하기도 합니다. 토라(율법서)가 다섯 권으로 구분되는 이유도 하나의 두루마리로 사용하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하는 대목을 찾아 읽으려면 오른손으로 돌려 감아가며 왼손으로 펼쳐야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다 보면 그만큼 잘 마모되어 자주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5년 11월 2일(다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0 9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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