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베네딕도수도원, 철 십자가, 비아블랑카 |
---|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베네딕도수도원, 철 십자가, 비아블랑카
- 베네딕도 수도원 성당 미사
라바날 베네딕도 수도원
도로 옆 오솔길을 쭉 걸었다. 이후 마을 엘간고에서 베네딕도 수도원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수도원이 아라고산 1,150m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올라온 곳과 돌들이 박혀 있어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길 한쪽으로 이어지는 철조망에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들이 많이 걸려 있다. 지나간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담은 상징물이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마을에서 키우는 소들이 눈에 띄었다. 자연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워낭소리가 바람에 정겹게 들려온다.
이곳은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곳이라 한국 사제분께서 파견해 계신다. 우리 부부는 당시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은 2015년 스페인 성 베네딕도회 라바날 수도원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가 2020년 가을에 귀국했다)을 뵙고 폰세바돈으로 갈 예정이었다. 수도원에서 인사만 드리고 가려 했으나 “일단 멈춰 보라”는 인영균 신부님 권유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 하루도 걷지 않고 쉰다는 건 계획에 없는 일이었지만 멈추라는 말씀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우리도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인영균 신부님 말씀을 들으니 왜 우리가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왜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미사와 쉼
너무 힘들어 쉬고 싶었으나 그동안 일정이 빠듯했기에 매일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런 우리에게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도 쉼과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동키로 보낸 배낭을 알베르게 엘 필라르 주인이 찾아오고 우리는 라바날 알베르게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한국 라면과 김치를 판다는 유명한 알베르게였다. 이튿날 순례자들이 떠난 조용한 마을에서 동네를 돌아보고 시간을 보냈다. 돌담 위로 떨어진 사과와 담장 옆에 피어 있는 장미도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염색하고 남편은 그동안 길렀던 수염을 정리했다. 그리고 알베르게에서 판매하는 문어 뽈보를 먹었다. 요리는 삶은 문어를 알맞게 썰어 접시에 담고 소금과 올리브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인데 크게 요리라고 할 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과 순례자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이며 둥근 나무 접시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베네딕도 수도원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수도원에는 스페인, 독일, 한국인 사제 세 분이 계신다. 스페인 라바날에 한국인 신부님이 파견해 계신다는 정보가 전해지면서 이곳에 들려 우리처럼 뵙고 가길 원한다. 정오가 지나면 마을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받으려고 순례자들이 수도원으로 찾아온다. 오후 1시 40분 낮 기도를 하고 오후 2시경에는 점심을 수도원 식당에서 순례자들과 함께한다. 스페인 관습에 따라 잠깐 쉬었다가 오후 4시부터 7시 저녁 기도 사이에 한국인 순례자들과 ‘까미노 나눔’을 갖는다. 오후 7시가 되어 저녁 기도를 마친 후 8시 30분 저녁 식사 전까지 사제 세 분이 한 주간씩 돌아가면서 성당에서 고해성사나 면담을 하신다. 우리도 4시 30분에 한국인 두 사람과 우리 부부가 수도원 응접실에서 만났다. 야고보 성인의 생애와 산티아고가 생겨난 배경을 설명하면서 순례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철 십자가 아래에서
이튿날 새벽에 신부님 강복을 받고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에 가서 수행할 미션까지 다짐하고 철의 십자가를 향해 길을 나섰다. 폰세바돈을 지나 걷다 보면 독일 코미디언 하페가 쓴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원작 영화 ‘나의 산티아고’(2015년) 명장면에서 발을 담갔던 긴 물통이 나온다. 방목하는 소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순례길에서 유명한 철의 십자가(Cruise de Ferro)는 이라고산 해발 1,528m에 있다. 산티아고 순례(프랑스 길)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십자가이다. 철의 십자가는 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랜드마크이고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중요지형지물이다. 5미터 높이에 원 추형의 기반이 있고 그 윗부분에 둥근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그 위에 세워진 작은 십자가를 말한다. 과거에는 사제들이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었다고 전한다. 오늘날 철의 십자가 밑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사연을 담은 기도 지향과 이름은 적은 돌들과 물건들이 놓여 있다.
멀리 철의 십자가가 보인다. 돌들의 무덤 위에 높이 솟은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원래 선사시대의 제단이 있었는데 그 후 수도원장이 십자가를 세우면서 순례자들은 십자가에 경배하며 고향에서 가져온 돌들을 봉헌했다. 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연을 적은 돌들을 갖다 놓는다.
십자가의 발치엔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순례자들이 이곳에 와서 세상 근심 걱정과 번뇌, 미움과 염원 등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 종교적인 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은 오래전 스페인으로 이주해서 살았던 켈트족의 종교의식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들은 큰 돌을 신성한 곳에 놓으면서 마음의 무거움을 비웠다고 한다. 이런 의식으로 인해 순례자들은 작은 돌에 소망을 써서 올리기도 하고, 망자들의 명복을 빌기도 한다. 동글납작한 돌에 소망이나 혹은 명복을 기원하는 문구를 쓰고 오래가라고 니스칠을 해서 놓기도 한다. 십자가 발치엔 돌들과 사진, 묵주 등 수많은 사연이 쌓여 있는 듯했다. 우리도 염원을 담아 기도드리고 나서 철의 십자가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스페인 하숙’ 촬영지 비아블랑카
나영석 PD는 2019년 2월에 배우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출연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다. ‘스페인 하숙’ 촬영 장소는 스페인 북서부의 ‘비아블랑카 델 비에르소’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차로 약 4시간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출연진은 직접 하숙집을 운영하며 순례객에게 숙박과 음식을 대접했다. 이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주요 거점이기 때문에 선정을 한 것 같다.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순례길에 대해 한층 더 관심을 끌게 한 프로그램이라 우리 부부도 들르게 되었다. 이미 TV에 봤던 익숙한 풍경이라서 반가웠다. 직접 가서 보니 오래된 건물이라서 화장실이나 주방 등이 열악해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촬영지라 그런지 친근해서 기념사진과 인증샷을 찍었다. 우리 부부가 광장에 가서 점심을 먹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저녁에는 니콜라스 레알 수도회 대성당 미사에 참례하였다. 예상보다 성당이 웅장했고 많은 순례자와 미사에 참례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
신미영 미카엘라는 2002년 세례받고, 2008년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Pr. 단장, Cu. 단장, Co.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 8월 남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38일간 다녀오고, 2021년 ‘사진으로 보는 우리 부부 산티아고 순례길’, 2024년 ‘열정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출간했다. 현재는 플랫폼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활동 중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9월호, 신미영 미카엘라(청주교구 용암동성당)] 0 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