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2일 (일)
(녹)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가톨릭 교리

저 여인은 누구실까?: 성모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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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0-09 ㅣ No.6247

[“저 여인은 누구실까?”] 성모 승천

 

 

몇 년 전 안식년을 맞이하여 성가복지병원에 머물며 호스피스 병동 중환자분들을 돌보는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환자분들께 “기도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고 사연을 듣다 보니, 나중에는 묵주를 손에 쥐고 저를 기다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 번은 병실에서 어느 할머니 한 분과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힐끗 돌아보니 다른 할머니 한 분이 벽에 등을 기대며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겁니다. 근육이 굳어가는 병에 걸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분인데, 앉은 자세로 나지막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묵주기도를 따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벅찼습니다. 묵주기도를 마치고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 어떻게 그렇게 묵주기도를 잘하세요?” “예, 제가 젊었을 때 레지오 열심히 하고 꾸리아 단장도 했어요. 아이들 키운다고 고생도 했지만 묵주기도는 매일 바쳤어요.”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절 묵주기도는 할머니에게 큰 힘이 되었고, 병고에 시달리는 그때도 묵주기도가 할머니의 힘과 위안이 되었던 겁니다. 

 

기도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죽음의 고통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둠 속에서 탄식하며 돌아가시는 분들도 적지 않지만,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분들은 고통 중에도 얼굴이 환히 빛났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함께 기도할 때는 병실 전체에 평화가 감돌았습니다. 성모님께서 함께 기도하시기에 기도하는 이는 죽음의 어둠을 넘어섭니다.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세력을 이겨냅니다.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의 권능으로 죽음을 이기고 하늘에 오르신 분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의 권능으로 죽음을 이기고 하늘에 오르신 분입니다. 성모님이니 그렇겠지, 하겠지만 저절로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을 먼저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들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겁니다. 성모님 역시 아드님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이 패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세상 안에 빛나며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성모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당신 아드님과 일치하여 십자가 곁에 굳건히 머물렀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예수님의 부활에 가장 먼저 참여하여, 부활의 은총을 충만히 살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 안에 온전히 머무른 성모님은 은총의 힘으로 죄와 죽음을 이겨낸 분입니다.

 

교회는 성모님의 지상 생애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졌다고 일찍부터 고백했습니다. 4세기 예루살렘에는 8월 15일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날’ 축일을 지냈습니다. 500년경 이 축일은 마리아의 묘소를 지키던 겟세마니 성모 성지에서 거행되었고, 이후 영면(koímesis 코이메시스) 축일이라는 이름으로 성모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축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시온산에는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성모 영면 성당이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께서 죽음을 맞이하실 때 사도들이 한데 모여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사제 서품을 앞둔 부제님들과 성지 순례를 하며 성모 영면 성당의 성모님 석관 앞에서 함께 무릎 꿇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사도들처럼 부제님들도 성모님을 어머니로 공경하며 신앙생활에 충실하기를 간청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비잔틴의 황제 마우리키오스(†602년)는 제국 전역에 영면 축일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영면 축일은 마리아의 영혼과 육신의 승천(análepsis 아나렙시스) 축일로 알려지기 시작하는데, 그 무렵 다마스쿠스의 요한(†759년) 성인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탁월하게 선포했습니다. 

 

“출산 가운데 자신의 동정성을 손상 받지 않고 보존한 그분이 죽음 이후에도 아무런 손상 없이 자신의 육신을 보존하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아기가 된 창조주를 자신의 태 안에 품은 분이 하느님께서 계신 곳에 머무르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아버지의 신부가 하늘의 신방에 계신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그분을 낳으실 때 고통을 겪지 않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 아드님을 바라보며 고통의 칼로 마음이 꿰찔린 분이, 아버지와 함께 앉으신 당신 아드님을 바라보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아드님께 속한 것을 모두 부여받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어머니와 하느님의 종으로서 공경받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성모 승천의 신비를 마음을 다해 기념했고, 마침내 1950년 비오 12세 교황님은 성모님의 승천을 신앙 진리로 선포했습니다.

 

“원죄 없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는 지상 생애 여정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으로 천상 영광에 올려졌다. 우리는 이를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교의로 규정한다.”(「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3903)

 

 

성모님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돌보셔

 

성모님은 영혼과 육신으로 천상에 올림을 받은 분입니다. 성모 승천은 성모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늘에 오르셨으니 우리들과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욱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십니다. 성모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수 있는가? 하늘에 오르시어 주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돌보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분입니다. 죄와 고통에 시달리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시고, 죽음의 세력에 신음하는 이들을 끌어안으며 힘과 위로를 주시는 분이 성모님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면, 고통과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구원의 길로 변모합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생각납니다. 병든 몸으로 고통과 외로움을 감당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모님의 군단, 2025년 9월호, 노우재 미카엘 신부(부산교구 도시빈민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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