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1일 (토)
(녹)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샘: 기도에 믿음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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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0-09 ㅣ No.2205

[영성의 샘] 기도에 믿음과 희망을

 

 

미국에서 5년간, 교포 사목할 때 경험한 묵주기도 체험을 나눕니다.

 

미국에서는 총기 사건이 뉴스 속보로 자주 보도됩니다. 어느 날 신문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미국인 부부와 한인 여성이 총기 사건 피의자와 피해자로 밝혀진 내용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매님 한 분이 전입해 왔고, 오랜 기간 냉담했다면서 신앙을 회복하고 싶다고 도움을 청하며 전입해 오게 된 배경을 힘들게 밝혔습니다. 

 

자매님은 백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도왔고, 변호사의 아내도 함께 근무했습니다. 하루는 의뢰인을 만나러 변호사와 자매님이 출장 갔다 돌아와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매님 옆에서 총소리가 났고, 변호사는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본인도 총알이 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차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변호사의 아내가 남편과 자매님을 불륜으로 의심했고, 출장 나간 날 의심이 깊어져 살인을 계획하고 나왔던 겁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아내도 자살했습니다. 얼마 전 봤던 신문의 기사 내용이었고, 그 피해 당사자를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겁니다.

 

변호사와 그 아내는 죽었지만, 자매님은 치료받고 퇴원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자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다고 자책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호텔에서 약을 먹고 생을 포기하려 했지만 직원에게 발견되어 살아났습니다. 자매님은 살아있음에 기뻐한 게 아니라 그 사실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기억만 가득한 그 동네를 떠나 제가 있는 곳으로 이사 왔고, 오랜만에 성당을 찾은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살아있는 이유가 한국에서 신앙생활과 레지오를 열심히 하는 어머니와 형제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매님은 자기를 살린 하느님의 뜻이 궁금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과 결과 앞에 제 삶과 사목 경험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과 위로는 없었습니다. 그저 준비되지 않은 원론적인 말씀으로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사랑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자매님을 아픈 기억에서 살리고 싶었습니다. 성령 세미나에도 참여시키고, 교리도 다시 가르치고, 성경 공부반에도 등록하게 했습니다. 수시로 자매님을 만나 면담하고, 매달 고해성사의 은총도 받게 했습니다. 자매님은 점점 평온해지고 표정도 밝아지면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서먹했던 관계도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취직도 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정 무렵 문자 알림이 들렸고, 너무 늦은 시각이라 확인하지 않다가 혹시나 해서 뒤늦게 문자를 읽었는데, 자매님이 두 사람의 기일이라 묘지를 찾아갔고, 다시 심한 죄책감이 몰려와 자기도 그들을 따라가겠다는 유서였습니다. 다급하게 전화했지만, 이미 전화기는 꺼진 상태였고, 문자가 왔을 때 왜 바로 읽지 않았는지 깊은 후회만 남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을 했었는데, 제가 아는 모든 지인에게 이유는 묻지 말고 당장 묵주기도 5단을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바쳐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바쳤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묵주를 들고 성모님의 전구를 청했습니다. 아침이 밝아 7시가 되었을 무렵, 놀랍게도 자매님의 자녀로부터 어머님의 생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전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드러난 기적

 

자매님은 퇴원 후, 저에게 찾아와 따지듯이 울며 하시는 말씀이 자길 위해 기도했냐며, 왜 기도를 해서 자기를 살렸냐고 원망했습니다. 격한 감정이 가라앉고 들려주는 그 날의 상황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물에 뛰어 내렸고, 정신이 혼미할 즈음에 물가에 떠밀려 왔음을 인지했답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인데, 어떤 여자가 다시는 이러지 말라며 구해줄 테니 살라고 했답니다. 그때 성모님이 자기를 살린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발견된 새벽 시각이 제가 묵주기도를 요청했던 시각과 일치하여 분명 성모님의 전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드러난 기적이라 믿었습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경험인데, 지금 그 자매님은 묵주기도 전도사가 되어 열심히 공동체에 봉사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 있음을 수시로 제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분 중에서도 기도의 은총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치는 기도에 믿음과 희망을 두지 않으면, 그 기도는 여러분의 의심으로 원하던 결과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 기도의 은총을 감소시키진 않습니다. 저 역시 그날 바친 기도에 완벽한 믿음을 두지 못했지만, 수많은 이의 기도가 더해졌기에 그 자매님은 새 삶을 선물 받을 수 있었겠지요.

 

우리가 하는 기도에 믿음과 희망을 두며, 형식적인 기도일지라도 성실하게 바치는 레지오 단원이 되어 묵주기도의 전도사가 되길 기도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9월호, 김형렬 요셉 신부(마산교구 사목국장, 마산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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