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ㅣ교회음악
클래식 순례38: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의 만군의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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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38)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만군의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웅장한 이중 합창 빛나는 승전 감사곡
10월 7일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축일의 기원은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 에스파냐, 교황령, 제노바 등의 군대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연합군(신성 동맹군)이 함선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레판토 앞바다에서 오스만 제국 함대를 무찌른 레판토 해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 비오 5세 교황은 모든 신자들에게 승리를 기원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호소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날, 교황은 교황청 서재 창문을 통해 승리의 환영을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승리 이후 그는 이날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제정했습니다. 이후 명칭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고, 성 요한 23세 교황은 이날을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레판토 해전은 전통적인 갤리선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한 싸움이었고, 당시 지중해에서 오스만 제국에 밀려 위기에 처했던 그리스도교 세계에 큰 용기를 준 사건이었습니다. 전투에 참여한 각 나라가 모두 이날을 기념했지만, 특히 그보다 2년 전 키프로스 섬에서 오스만 제국 군대에 대패했고 레판토 해전에 가장 많은 함선을 파견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국가적인 행사로 성대하게 기렸습니다.
마침 이날이 파도바의 성녀 유스티나 축일이었기에 베네치아에서는 성녀를 성 마르코와 더불어 수호성인으로 모셨으며, 1797년 공화국이 붕괴될 때까지 해마다 10월 7일이면 도제(통령)가 이끄는 장엄한 행렬이 성당으로 향했죠. 괴테는 1786년 베네치아에 갔을 때 그때까지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군대로부터 뺏은 군기가 성당에 걸려있었다고 썼습니다.
당연히 베네치아에서 이날 행했던 장엄한 전례에는 다채로운 음악이 함께 했습니다. 특히 산 마르코 대성당은 독특한 내부 공간을 살린 화려한 복합창이 발달했는데, 이런 베네치아 악파의 특징은 바로크 음악이 태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산 마르코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32-1585)와 그의 조카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4-1612)는 대성당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전례와 행사를 위한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그 중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의 <만군의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Benedictus Dominus Deus Sabaoth)>, 조반니 가브리엘리의 28성부 <마니피캇(Magnificat)> 같은 웅장한 작품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성녀 유스티나 축일)을 위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전통적으로 승전을 감사하는 뜻으로 많이 쓰인 <만군의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역시 웅장한 이중 합창이 빛을 발하며, <마니피캇> 중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잠시 침묵하던 모든 성부가 일제히 화려한 음향을 터뜨리는 부분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만군의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https://youtu.be/BXJfTjp4gUM?si=grcowfXiVk_Rp5ZK
[가톨릭신문, 2025년 9월 28일,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0 9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