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일 (목)
(백) 수호천사 기념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이 시대의 희망人: 시(詩)로서의 성찰(省察) - 구상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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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0-01 ㅣ No.2202

[희년 특집 - 이 시대의 희망人] 시(詩)로서의 성찰(省察) : 구상 세례자 요한

 

 

하얗고 하얀 침상에 누워 푸르디푸른 창밖을 바라본다. “한 겨우내 세상 무대 뒤, 땅 밑에서 움츠리고 살던 초목들이 아무런 요란도 수선도 떨지 않으며 저마다 새로운 봄 치장을 하고서 화사한 햇발을 온몸에 받으며 서로가 염미(艶美)를 발산하고 있”는 봄날이다. 세상이 “푸른 새 옷”을 뽐내는 동안 구상은 저물어 가는 ‘생(生)’을 생각한다. 사실 구상에게 죽음은 너무나 친숙하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관동 대지진으로 생사를 알 길 없게 된 큰형, 북에 홀로 남은 어머니,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지키다 북에 체포된 둘째 형 구대준 신부 모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거라 여기며 살았다. 박빙인생(薄氷人生)인 줄 알고 자신이나 자부를 너무 갖지 말라 당부하던 아버지도, 금쪽같은 두 아들도 먼저 앞세워 보내고 영혼과 예술의 친교를 다져 온 이중섭, 오상순도, “그레고리안 합창이 울려 퍼지는 십자가 제단 앞에서 부동아라한(不動阿羅漢)이기를 다짐했”던 아내도 먼저 주님 곁에 보냈으니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인생이었다. 구상 자신도 종군 생활 중에 또 오랜 세월 괴롭혀 온 폐결핵과의 사투 중에 수시로 떠올린 것이 ‘죽음’이었다. 그리 죽음을 생각하며 산 인생이었지만 인생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보험에나 들 듯한 신앙생활도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였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다 보니,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하느님 맙소사!”란 말뿐이다. 그럼에도 “한 알의 사과 속에”도 “땀과 사랑이 영생”함을, 우리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창창한 우주, 허막(虛漠)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몸이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고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너무 늦지 않게 그리스도 폴(크리스토포로)의 “단순하고 소박한 수행(修行)을 흉내라도” 내 간다면 “구원의 빛을 보리라는 그런 바람과 믿음 속에서” 시를 쓸 수 있게 해주심에 참 복 받은 인생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시를 통한 시로서의 성찰(省察)이 가져다준 축복이었다. 숨이 가빠 온다. 구상은 이제 한 줌의 생만이 남았음을 깨닫는다. 중환자실로 옮겨 가는 자신을 슬프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메모지와 펜을 달라 청해 본다. 그리고 구상은 마지막 말을 마지막 힘으로 적는다.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 그러고는 남은 이들이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라며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덧) 구상 시인은 아무리 멋진 표현을 사용해도 그 표현이 가치를 가지려면 표현과 똑같은 양의 진실이 담겨있어야 제대로 된 문학이 된다는 ‘등가량의 법칙’을 늘 마음에 지니며 살았다.

 

[2025년 9월 28일(다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서울주보 7면, 서희정 마리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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