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7일 (토)
(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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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9-24 ㅣ No.2200

[영성심리 칼럼] 울지 마라

 

 

에릭슨의 발달 이론에서 여섯 번째 단계(18세~성년 초기)의 과업은 ‘친밀감 대 고립’입니다. 청소년기에는 주로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만, 성인 초기에 접어들면서 타인에게 관심이 확대되고 의미 있는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앞선 단계의 과업이었던 ‘정체감’을 자신 안에서만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나 우정 등을 통해 타인 안에서 ‘공유된 정체감’으로 이루는 시기죠. 이 시기에 진정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고립감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고립감을 쉽게 표현하면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 정호승)라는 시구처럼,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감정입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산다 해도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죠.

 

앞선 단계들의 과업이 모두 중요하지만, 외로움(고립) 그리고 이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밀감은 특히 더 중요하다 싶습니다. 많은 부분 부모에게 의지하고 또 잘못해도 너그러이 이해받을 수 있는 아동기나 청소년기와 달리, 이제는 스스로 삶을 영위해 가는 성인기의 과업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는 개인주의와 무관심이 점점 확대되는 오늘날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사랑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나 우정 안에서 경험하는 친밀함이 ‘나’라는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라는 정체성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들에게도 친밀감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사제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네 가지 태도’로 ‘하느님과의 친밀함’, ‘주교와의 친밀함’, ‘사제들 사이의 친밀함’,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함’을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교황청 주교부, “사제직의 기초 신학을 위하여” 심포지엄, 2022년)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가장 근본은 바로 하느님과의 친밀함입니다. 인간적인 차원의 친밀감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경계 안에 있고,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 사이의 친밀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관계에서 친밀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친밀감을 얻는 관계를 많이 맺는다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매우 깊은 친밀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한 친구와 누리는 깊은 친밀감도 있지만, 이웃이나 동료, 물건을 사러 들린 상점 주인과 관계에서도 소소한 친밀감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외로워서 울기도 하지만, 내 주위에 누군가가 있고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울지 마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미사 시작 예식 인사)

 

[2025년 9월 21일(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대신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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