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일 (토)
(녹)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성극ㅣ영화ㅣ예술

희망 영화관: 완벽한 날들(Perfect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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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7-30 ㅣ No.165

[희년 특집] 희망 영화관 : 완벽한 날들(Perfect Days)

 

 

그날, 저는 화진포호가 아름답게 펼쳐진 고성 습지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다다랐을 때, 생명체를 만나러 가는 오래간만의 설렘이 올라왔습니다. 생명은 유희의 대상으로서의 관람이나 구경이 아니라, 신학자 스킬레벡스가 표현했듯이, 어떤 ‘궁극적인 만남’과도 같습니다. 고귀한 생명 현상을 보유한 그 생명체가 세상에 현현했을 때 우리 존재가 그 생명과 만나는 유일한 태도는 겸손과 존중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각시수련 앞에 섰을 때, 그 모습은 생명체 안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어떤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경험하게 해 주었는데, 그 모습이 화려하거나 찬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꽃이 있다.’라는 단순한 진실이 그 어떤 아름다움을 추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지 안에 깃든 하느님의 지극히 겸손하고 고결한 총체적 조절의 기운이 이 수련을 무에서 유로 수려하게 각조했을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하느님께서 관할하시는 총체적 이 대지의 거룩한 운용의 법칙이 나에게 발견됨으로써 궁극적인 만남이 가능해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느님의 존재가 화진포 호숫가에서 바람처럼, 불고 싶은 대로 불어왔고, 순간 아름다운 흰색의 자그마한 수련 잎새가 가녀리게 흔들렸습니다. 그러자 청록의 연잎에 드리운 그 수련 꽃잎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수련의 그림자가 연잎 위에서 가만히 떨렸습니다. 저는 분명히 그 떨림의 흔적들을 목격했고 모든 생명은 이렇듯이 세상에서 고유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러기에 고유한 그들의 모습이 지상에 불완전한 채로 반영되어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자신만의 고유한 떨림을 남깁니다. 우리는 모두 빛이신 하느님의 지상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작품 <퍼펙트 데이즈>는 시부야의 청소부 히라야마라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궁극적 만남’의 과정을 세밀화처럼 아름답게 그려낸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히라야마는 그 일상이 수몰시킨 소중한 만남의 감각들을 떨리는 잎새들의 빛의 반영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일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미려하게 드러나는 겸손한 사태들을 태양 빛에 떨리는 나뭇잎들의 빛의 반영을 통해 목도하며 주인공 히라야마는 경이의 한복판으로 다가가 드디어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아버지의 나라’는 영토나 소유권 전유를 뜻하는 소버린(sovereign)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거룩한 질서감을 향한 다스림(governing)의 형태를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다스림은 통치의 형태로 드러나기보다 각시수련의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에서 완벽한 날들을 꿈꿀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지만 끊임없이 당신의 경이에 참여하라고 격려하시는 가운데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당신과의 ‘궁극적 만남’에 이르리라고 약속하시는 희망의 다스림입니다.

 

[2025년 7월 27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서울주보 6면,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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