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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국 교회의 단체: 서울대교구 가톨릭여성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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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7-14 ㅣ No.1880

[한국 교회의 단체 · 12] 서울대교구 가톨릭여성연합회(Seoul Archdiocese Catholic Women’s Organization)

 

 

이 단체는 『교회와 역사』 제249호(1996년 2월 1일 발행, 13~15쪽)에서 다룬 바가 있으나, 이후 30년의 세월 동안 많은 새 역사가 축적되었으므로 최근 활동을 포함하여 다시 소개드린다. - 필자 주

 

 

탄생배경과 창립 - 교회사적 맥락에서의 의미

 

오랫동안 남성중심 사회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서도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20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기 시작했듯이, 교회 안에서도 여성의 주체적인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이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여성 신자들의 단체도 활성화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6·25전쟁 이후 한국교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오지리(오스트리아) 부인회’(KFBO: Katholische Frauenbewegung Österreichs) 지원으로,1) 1963년 11월 19일 명동대성당에서 ‘가톨릭 한국 부녀회’가 출범했다.2) 이 단체가 어떤 분위기에서 출발했는지는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 당시 초대 대표 김양순 씨의 인터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사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요. 그동안 가정 안에서 밥 짓고, 빨래하던 역할에만 머무르던 여성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지요.”

 

이처럼 여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은 이들은 이후 여러 활동을 지속하다가 1967년에 ‘가톨릭 여성단체 서울대교구 협의회 창립총회’를 통해 단체의 이름을 바꾼다.4) 같은 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제16차 세계 가톨릭 여성대회에 초대 대표 김양순 씨가 참석하면서 이 단체는 세계 가톨릭 여성단체들과의 연대 안에서 성장할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는 이후 제3차 세계 평신도 대회에도 참석하고, 귀국 후 자신의 체험을 신문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나누었다.5)

 

 

 

1968년에는 신학교 후원회, 어머니학교 후원회, 교도소 후원회 등 다양한 후원사업과 더불어 여성 대상 세미나, 교양강좌 등도 활발히 열었으며,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 회원 단체로 가입하기도 했다.6) 그러던 중 1971년 7월 6~7일 열린 제5차 총회를 통해 ‘가톨릭여성연합회’(이하 여성연합회)로 개칭하여 오늘날에까지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7)

 

 

현재 활동 - 현재 세상과 교회의 상황에 대한 응답

 

여성연합회의 주요사업은 다음과 같다. 교육 사업(월례특강/피정/생명교육/외국어교실), 행사(사랑나눔바자/교구주요행사), 환경사업(재활용매장 사랑마트 운영/생활환경운동), 후원사업(기관/단체/개인), 봉사활동(사업부/사랑마트 봉사), 홍보출판(회보발간/매스컴활용), 국제교류(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UCWO] 활동/국제 행사 및 교류) 등이다.8 또한 홈페이지에는 여성연합회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구분해 시대별 특성과 활동을 간략히 정리한 연표가 제공되고 있다.9)

 

이를 살펴보면, 먼저 1970년대 활동 중 주목할 점은 각 본당 여성연합회 조직과 연계한 활동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여성연합회는 1977년 11월부터 1978년 2월 9일까지 서울대교구 내 모든 본당을 방문, 여성 단체들과 협력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부들의 비협조적 태도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에도 교구가 지원하는 여성 단체를 조직하려고도 노력했으나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주목할 성과는 바로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의 결성이다. 서울대교구 여성연합회를 중심으로 전국적 조직 없이 교구별로만 활동해오다가 1974년 춘계 주교회의의 인준을 통해 1975년 5월 29일 전국 조직인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를 창립하게 되었다.11)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는 교황청 인준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UCWO: World Union of Catholic Women’s Organisations)’에 1979년 준회원, 1983년 정회원, 1987년부터는 이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12)

 

다음으로 1980년에는 교회와 사회에서 열린 다양한 행사에 여성연합회가 활발히 참여하며 봉사활동을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사회적으로는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와 장애인올림픽대회가 열렸고, 교회 안에서는 1984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와 1989년 세계성체대회라는 중요한 행사가 연달아 있었는데, 이처럼 큰 행사에는 눈에 띄지 않는 많은 봉사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꺼리는 일을 묵묵히, 기쁘게 행한다.”13)

 

여성연합회 회원들은 이러한 정신으로 국가적 행사와 교회의 중요한 행사에 함께했다.14)

 

 

 

또한 이 시기에도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활동은 지속되었다. 1982~1988년까지 6회에 걸쳐 실시한 본당 여성대표자 연수와 한국 가톨릭 여성 심포지엄이 대표적인 활동이다.15) 아울러 소외된 이웃을 위한 후원활동도 꾸준히 이루어졌다.16)

 

199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 운동이 크게 성장한 시기로, 특히 1995년에 중국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이 대회에 여성연합회 회장도 참가하며,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 발맞추어 활동을 이어갔다.17)

 

이 시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신앙인으로서의 여성 리더 양성을 위한 심화 교육이다. 그 대표적 결과가 바로 1991년 ‘가톨릭여성신앙대학’(총 4학기 2년제 과정)의 출범이다. 이 과정은 본당 구역장, 반장 및 단체 임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구약성경, 교회론, 교회사, 여성학, 실천 윤리, 문화 등 다양한 교과 과정을 주1회 2시간 학습했다. 4학기를 수료한 여성 신자들은 지역이나 전문 직종별로 하나의 조직체를 이루고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통한 사회 복음화 실천과 건전한 시민운동을 실천하는 주체가 되었다. 하지만 1997년 입학생 수의 감소로 문을 닫았다.18)

 

2000년대 들어 여성연합회는 복자 강완숙 골롬바19)를 한국 여성 평신도 리더의 모델로 재조명하였다. 강완숙을 여성연합회의 롤모델로 설정하여 관련 심포지엄과 출판기념식을 했을 뿐 아니라, 강학회와 공부방을 개설했다. 2005년 7월 2일 ‘강완숙과 함께 박해시대 교회 안으로’를 주제로 순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같은 해 6월 30일에는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여성 지도자 강완숙 골롬바’를 크게 알리는 자리를 가졌다.20) 그리고 이듬해 2006년부터 ‘강완숙 골롬바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시작했다.21)

 

2000년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 위원회 산하에 ‘여성소위원회’가 발족되었고,22)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 가톨릭여성연합회 회장이 당연직 운영위원으로 임명되어 오늘날까지 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시기 여성연합회는 창립 때부터 전개해온 후원활동도 한층 박차를 가했다. 2003년 3월 25일 ‘환경 운동 확산 및 재활용 실천’ 목적으로 운영하는 생활 중고품 전문매장인 ‘사랑마트’를 개장,23) 전원 봉사자들로 운영하며, 판매 수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24) 현재 명동 가톨릭회관 지하 1층 출구에 있는 ‘사랑마트’는 지속적인 대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랑마트’ 개장 1주년을 맞은 2004년 자선 바자회를 개최한 이후, 이듬해부터 해마다 사순절 바자회를 개최, 수익금을 상반기 나눔행사로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한다.25) 이 밖에도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환경-NGO 활동을 적극 펼칠 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 대응으로 ‘제3기 인생’ 운동을 위한 ‘오름회’를 조직, ‘풍요로운 노년’을 위한 활동과 가톨릭교회의 생명수호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한국천주교평신도단체협의회와 함께 「낙태죄 폐지 반대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 생명 존중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회적 운동을 전개하였다.26)

 

 

 

 

앞으로 전망 - 하느님의 뜻을 따라

 

2023년 11월 28일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여성연합회 창립 60주년 미사가 봉헌되었다. 지나온 60년을 돌아보며 석남연(실비아) 회장은 단체가 이룬 성과에 대해 나누었다.27)

 

“서가연의 60년 세월은 1960년대 대부분 집안에 머물러있던 여성들에게 기존의 틀을 깨트리고 새로운 여성 신자의 역할을 창조한 것이었습니다.”

 

가톨릭 여성연합회가 걸어온 길을 간결하고 강하게 요약한 석 회장은 이어서 이렇게 회고한다.

 

“시작 이후 전국을 돌며 여성단체 필요성을 알려 단체 설립을 이끌어냈고, 1975년에는 한국가톨릭여성연합회를 결성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여성 전국 기구를 탄생시켰고,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 여성연합회관을 마련해서 봉사하는 여성, 배우는 여성들의 장을 마련하였으며 창립 초창기부터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UCWO)와 관계를 맺고 이사국이 된 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과 세계 부회장을 배출한 점도 큰 보람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성과 이면에 남겨진 과제 하나를 꼽는데, 젊은 가톨릭 여성들과의 연대가 부족한 점이다. 이는 앞으로 여성연합회가 향해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이제 젊은 여성 신자들과 연대하고, 세계 여성들과 연결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꿈꾼다.28)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는 지금, 가톨릭여성연합회는 차세대 주역들과 함께 걷는 새로운 60년의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

 

1) 가톨릭여성연합회 홈페이지(www.scwo.or.kr)의 연혁,『50년의 발자취: 서울대교구 가톨릭여성연합회 1963~2013』(이하 『50년의 발자취』), 오덕주 지음, 서울대교구 가톨릭여성연합회, 2013, 21~23쪽 참조.

 

2) 가톨릭신문 제401호(1963.12.1) 3면 참조(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208220131419).

3) 가톨릭신문 제2873호(2013.12.8) 4면 참조(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312040074704).

4) 가톨릭신문 제577호(1967.7.16) 3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7120193855).

5) 가톨릭신문 제595호(1967.11.26) 4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8280204970).

 

6) 가톨릭신문 제610호(1968.3.17) 3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6200187571), 제616호(1968.4.28) 3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7050191908) 참조.

 

7) 가톨릭신문 제774호(1971.7.11) 3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010190251909).

8) 홈페이지에 잘 소개되어 있다.

9) 홈페이지 연혁을 참조 바란다.

10) 『50년의 발자취』, 39쪽.

 

11) 위의 책, 40쪽. 이후 2012년 10월 25일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에서‘한국가톨릭여성단체협의회’로 명칭을 바꾸고, 회칙 개정안을 승인(중협주: 제 2012-597호)받았다.

 

12) 위의 책, 41쪽.

13) 위의 책, 51쪽.

14) 위의 책, 50~60쪽 참조.

15) 위의 책, 45~47쪽.

16) 위의 책, 47~48쪽.

17) 위의 책, 61쪽.

18) 위의 책, 63~67쪽.

19) 강완숙 골롬바는 2014년에 복자품에 올랐다(여성연합회가 강학회와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 2005~2006년에는 순교자로 칭했다.

 

20) 가톨릭신문 2005.7.10 참조(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507100124074 그리고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507100123890).

 

21) 가톨릭신문 2006.9.10(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609100150282).

22) 가톨릭신문 제2220호(2000.10.8) 1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010080229460).

23) 가톨릭신문 제2338호(2006.9.10) 3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303090068087).

24) 홈페이지 활동 코너(https://www.scwo.or.kr/mart/)와『50년사』, 88~89쪽 참조.

 

25) 『50년의 발자취』, 91쪽. 2019년까지는 상반기에 했으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2022년에는 하반기에 두 번, 23년에는 상·하반기 3번을 한 것으로 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홈페이지 활동/사랑나눔바자 연력 참조(https://www.scwo.or.kr/bazaar/).

 

26) 위의 책, 92~96쪽에는 환경운동, 97~99쪽에는 오름회, 99~102쪽에는 생명보호운동의 역사 참조. 낙태법 폐지 반대 청원은 가톨릭신문 제3095호(2018.5.20) 7면 참조(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805150263299).

 

27) 가톨릭신문 제3370호(2023.12.3) 21면(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11280223265).

28) 같은 신문, 같은 면.

 

[교회와 역사, 2025년 5월호, 현재우 에드몬드(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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