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구약] 성경 속 희망의 순례자들: 가장 낮은 곳에서 최고의 것을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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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희망의 순례자들] 가장 낮은 곳에서 최고의 것을 배운다
‘바닥 체험’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이 바닥은 우리가 경험하는 무력함의 정점을 가리킵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은 절망감에 빠지며, 깜깜한 터널 속에 갇힌 것 같다는 고백을 합니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상황이기에 벗어나는 것은 올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바닥에서 올라가는 일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나를 향해 내뻗으신 하느님의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어느새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들었던 한 이스라엘 임금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북이스라엘은 아람 임금과 잦은 싸움을 치러야 했습니다. 힘의 균형은 아람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그때 북이스라엘에는 예언자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아람군이 쳐내려올 것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 임금에게 전갈을 보내어 위기를 모면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자 아람 임금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사마리아 성읍을 포위하였습니다. 식량 공급이 끊긴 사마리아 성읍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린 나머지 인육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엘리사가 전쟁의 원인이라 생각하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이를 미리 알고 대비하였기에 이마저도 실패한 임금은 엘리사에게 내려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재앙은 분명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오. 그런데 이제 내가 주님께 무엇을 더 바라야 한단 말이오?”(2열왕 6,33)
임금은 이 말로 깊은 절망감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력감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만 믿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무력감은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 절망적 고통 속에서 비로소 임금은 눈과 귀가 열려 다른 가능성을 알아 보게 됩니다. 엘리사 예언자는 그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가 한 세켈, 보리 두 스아가 한 세켈 할 것이다.”(2열왕 7,1) 곧 내일이 되면 포위는 풀리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임금의 무관은 주님의 말씀을 부정합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창문을 여신다 한들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있겠습니까?”(7,2) 그는 하느님마저 인간의 가능성 속에 묶어 두려 합니다. 자기 눈에 불가능한 일은 하느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해 질 녘에 성문 어귀에 있던 나병 환자 넷이 아람 진영에 갔다가 그들의 진영이 비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람군은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용병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쳐들어 온다고 생각하고 허둥지둥 물러갔던 것입니다. 이들이 전한 소식을 한밤중에 들었던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이를 확인하고 나서야 예언자의 말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임금의 이야기는 고통과 절망이 희망을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걸림돌이었던 고통은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변모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이 최고의 것, 곧 희망을 얻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2025년 7월 13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서울주보 4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0 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