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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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영성: 언제 다시 뵈올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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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5-06 ㅣ No.2369

[순교영성] 언제 다시 뵈올런지요?

 

 

- 정순매 바르바라가 동정을 지키고자 신분을 위장해 거짓으로 머리를 올리고 있다.(탁희성 화백, 절두산 순교성지 제공)

 

 

초기 한국 교회사 기록에서 지워져 희미해진 이름들과 만나곤 합니다. 《사학징의》에는 교회 주요 거점마다 예외 없이 과부들의 존재가 포착됩니다. 이문동 정진사 집 두 과부, 한신애의 딸 조혜의, 궁녀 문영인을 가르친 50대 청상과부와 김계완을 가르친 윤씨, 동막 사는 태(太)씨, 왕십리의 뒷방 과부, 양사동과 약현 사는 과부, 윤유일의 사촌 윤조이, 폐궁 나인 서경의, 청파의 술집 노파 고씨, 수각교의 과부, 교리 교사 김순이 다슬라 등이 그들입니다.

 

과부들은 단체 생활로 교회의 거점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남대문 손만호의 집에는 7, 8명의 과부들이 모여 교리 공부를 했지요. 군기시 앞에 살던 김희인의 집에도 과부들이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김희인이 검거될 때 김흥년, 이흥임, 이어린아기, 김경애 등이 함께 끌려와서 신문을 받았습니다. 이흥임은 김경애의 시숙모였고, 이어린아기와 김경애는 모녀 사이였습니다. 이중 김경애는 동정녀로 과부 행세를 하며 신분을 꾸몄습니다. 동정녀이면서 가짜 과부 행세를 한 사람은 윤점혜와 이득임, 박성염 등이 더 있었습니다.

 

김희인의 과부 합숙소가 발각되어 수색하자 엄청난 양의 교리서와 성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성화 족자가 3개나 나왔고, 마리아상도 있었습니다. 서양에서 가져온 성상까지 압수되었습니다. 묵주가 6개, 수십 책의 교리서와 베껴 쓰다 만 낱장이 456장, 한글 기도문을 베껴 쓴 종이가 134장이나 나왔습니다. 그녀들은 이곳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려 각종 교리서를 등사하고, 기도문을 베껴 각처에 보급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외부의 시선을 피해 증가하는 교리서와 기도문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과부의 신분을 적극 활용했던 것이지요.

 

과부 최설애는 실 장수로 다니며 교리를 전했습니다. 그녀는 송재기의 집에 갔다가 젊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당시 교회의 지도자 황사영이었습니다. 그의 소문을 익히 들어온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황사영에게 “지금 행색이 슬프고 처량하니, 어찌해야 다시 뵈올런지요?” 하고 말했고, 황사영은 그녀에게 “죽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황사영에게 마음이 약간 설렜던 것 같습니다.

 

황사영은 최설애와 송재기의 처가 밤새 마련한 상복을 입고 상주로 꾸며 극적으로 도성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설애는 이 일로 체포되어, 황사영 찾기에 혈안이 되었던 의금부의 가혹한 고문 끝에 “천주교가 바른 도리임을 알았으니 형벌을 받더라도 바꿀 마음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1801년 11월에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천주교의 무엇이 사회적 약자였던 과부들의 마음을 그토록 움직였을까요? 언제 다시 뵈올런지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이 그녀에게 참수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했을까요?

 

[2025년 5월 4일(다해)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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