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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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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 교회 김대건 신부에 감동하고 방북 희망한 교황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9월 20일 교황청 사도궁 내 클레멘스 홀에서 사도좌 정기 방문(앗 리미나) 중인 한국 주교단을 만나고 있다. 교황은 주교단에게 모든 이를 섬기는 종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77주년인 2023년 9월 1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 벽감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이 거행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8월 6일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YD) 파견 미사에서 2027년 차기 대회 개최지가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발표한 뒤 한국 청년들과 만나고 있다. OSV 3
“저도 언제나 생각하고 기도하는 한반도의 평화라는 꿈을 우리 함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에게 맡겨드립시다.”
‘한반도 평화’와 ‘김대건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교회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한 두 단어가 포함된 압축적인 문장이다.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한 지 177주년이 되던 2023년 9월 16일 바티칸을 찾은 한국 신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동양인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을 앞두고서였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당부했다. 성인을 본받아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사도’가 되는 성소를 재발견하길 바란다고.
앞서 교황은 그해 6월 22일에도 평화의 ‘예언자’가 되도록 모든 한국인을 격려했다. 한국 주교단이 봉헌한 ‘한국 전쟁 정전 협정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 전한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나는 북한에 갈 것이다’
‘평화의 사도’인 교황은 피를 나눈 형제인 한민족이 갈라져 대립하는 한반도 상황을 늘 안타까워했다. 앞서 2015년 미국과 쿠바 간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바 있는 교황이었다. ‘다리를 놓는 사람’(Pontifex)으로서 남북한 화해와 일치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북한에 방문하고 싶다’고 여러 번 밝힌 이유였다.
대표적 장면은 2018년 10월 18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처음 교황을 예방했을 때였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자 교황은 답했다.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 이탈리아어로 ‘나는 갈 것이다’란 뜻이었다.
이 한마디에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가 들썩였다. 교황청과 북한 관계도 급진전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면서 남북관계도 경색 국면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하면서 방북 계획은 백지화됐다. 그럼에도 교황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방북 의지를 드러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2023년 7월 22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교황님은 ‘북한이 초청하면 거절하지 않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에 가고 싶으니 날 꼭 초청해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70년 동안 서로 갈라져 왕래도 없이 지내는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교황님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 탄생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동안 한국 교회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경사가 났다. 유흥식 추기경이 ‘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이 된 일도 그중 하나다. 교황은 2021년 6월 11일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현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 대주교로 승품시켰다. 그리고 장관 임명 11개월 만인 이듬해 5월 29일 유 대주교는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성직자부는 교구 성직자인 사제·부제 개인과 그들의 사목 교역과 효과적인 수행에 필요한 재원 관련 업무 일체를 다루면서 주교들에게 적절한 도움도 제공하는 부서다.
이런 요직을 한국 교회 출신이, 그것도 2021년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이자 두 번째 사제 가경자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던 해에 처음 맡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우리나라의 큰 경사이며 경이로운 축복”이라며 “전국 교우들의 깊은 순교신심과 우리나라 복음화 사업이 크게 신장된 결과”라고 평했다.
대전교구 솔뫼성지는 교황과 김대건 신부 사이 ‘연결고리’다. 2014년 8월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은 솔뫼성지에 자리한 김대건 신부 생가를 찾아 헌화하고 기도했다. 이때 제6차 아시아청년대회(AYD)를 주최하며 방한을 이끈 주역이 당시 대전교구장인 유 추기경이었다.
베드로 대성전에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
교황은 2018년 3월 19일 즉위 5주년을 맞아 낸 세 번째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서 김대건 신부를 언급했다. 복음을 영웅적으로 실천했거나 모든 구성원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해 공동체 전체가 시성된 대표 사례로 ‘한국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을 소개한 것이다.
김 신부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이어져 3년 뒤 8월 21일 탄생 200주년 미사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어’로 거행됐다. 교황은 축하 메시지를 통해 김대건 신부를 ‘영웅적 신앙의 모범적 증인이며, 한국 백성들이 박해와 고통을 겪었던 어려운 시기에도 지칠 줄 모르고 복음을 전하던 사도’라고 표현했다. 이어 “동료들과 함께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미움을 이기기 때문에, 선이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기쁜 희망으로 드러내 보여주셨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최빈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에 동참해 준 한국 교회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절정은 2023년 9월 한국인 조각가가 빚은 김대건 신부 성상이 바티칸에서 우뚝 선 순간이었다. 유 추기경과 한국 교회 대표로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이 잇따라 성수를 뿌리며 성상을 축복했다. 김 신부가 1846년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지 177년 만에 누리게 된 영예였다. 아울러 교황은 2016년 김 신부의 신학교 동기인 ‘땀의 증거자’ 최양업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하기도 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교회에 선물한 또 다른 기쁜 소식은 2023년 여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나왔다. 제37차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파견 미사 중 “2027년 차기 대회 개최지는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1995년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다. 교황은 “WYD 장소가 유럽의 서쪽 끝에서 극동으로 이동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일치를 향한 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표징”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듬해 11월 24일 삼종기도 때 WYD를 준비하는 한국 청년 대표 2명을 사도궁 서재 창가에 세워 소개했다. 이날 포르투갈 청년으로부터 WYD 상징물(십자가와 성모 성화)을 인계받은 주인공들이었다. 교황은 전달식 거행에 앞서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용기를 내세요! 이 상징물들이 지나는 곳마다 하느님의 불굴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민족들 간의 형제애가 피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특히 분쟁과 전쟁의 희생자가 된 모든 젊은이에게 주님의 십자가와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성화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깊은 위로가 되길 빕니다.”
안타깝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1일 선종하면서 2027년 한국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의 뒤를 이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가 반드시 WYD에서 젊은이들을 만날 것이리라.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27일, 이학주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 교회 교황, 세월호 아픔 위로하고 124위 시복의 기쁨 안겨줘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의 시복을 선언하며 무대 양 옆 전광판에 124위 복자화가 공개되자 신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 2014년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로부터 편지를 받고 있다.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할 때 예루살렘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이 말씀을 주제로 삼았다. 우리 사회는 그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따른 아픔과 상처로 전국민이 애도하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픔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한국 국민들을 어루만지고자 6월 방한을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교황은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당신 빛을 기쁘게 받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찬 삶으로, 또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도록 초대하신다”며 아시아 첫 사목지인 한국으로 향했다.
슬픔에 잠긴 사회 어루만진 교황
지난 2014년 8월 14일 오전 10시 15분 경기 성남 서울공항. 로마에서 출발한 지 11시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땅을 밟았다. 교황 즉위 1년 반 만에 한국을 찾아 8월 14~18일 4박 5일 100시간 동안 한국 교회·국민들과 함께했다. 교황의 방한은 사상 세 번째로 1984년·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었다.
그가 아시아 첫 사목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은 한국 교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물론 분단과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는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정신을 심어주려는 뜻에서 비롯됐다. 교황은 도착한 뒤 청와대 충무홀에서 열린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이 민족의 유산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친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이 목표들을 한국 국민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세계를 위해 결코 좌절하지 말고 추구해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황은 방한 시작부터 끝까지 평화와 화해를 노래했다. 이때 교황이 걸친 흰 제의에는 한국에서 선물 받은 두 개의 배지가 달려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나비 모양의 배지였다. 일정 내내 교황은 이 배지들을 패용했다.
“저는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24위 시복미사 뒤 교황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천막을 방문했다. 이때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만나 위로를 건넸다. 당시 김씨는 교황에게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부탁하며 편지를 전달했다. 교황은 김씨의 편지를 수단에 챙겨 넣으며 그를 위로했다. 김씨는 이후 가톨릭에 귀의해 세례를 받았다.
당시 광화문 시복미사에 참석했던 김남훈(비오, 40)씨는 “교황님께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을 때 전광판으로 광경을 지켜보면서 울컥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유가족분들에게 직접 세례도 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분이시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나흘째였던 8월 17일 따로 시간을 내 세월호 유가족을 면담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를 숙소인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초청해 직접 세례를 베풀었다. 교황은 세례식에 배석했던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을 위로하는 자필 편지를 써 “위로의 마음을 꼭 전달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하기도 했다.
바티칸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도 노란 리본을 빼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더라도 늘 세월호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징표였다.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아시아 청년들에 “용기 가져라!”
교황은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AYD)에도 참여했다. 지역 청년대회에 보편 교회 수장인 교황이 참여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교황은 성 김대건 신부 생가가 위치한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22개국 청년 6000여 명과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청년들의 쇄도하는 ‘셀카’ 요청에도 스스럼없이 휴대전화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가 포즈를 취했다. 이날 만남에서 교황은 준비한 연설문을 치우고 30분간 즉흥 연설을 했다.
제6회 AYD 주제는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추고 있다’였다. 교황은 폐막 미사에서 아시아 젊은이들을 향해 용기와 희망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일어나십시오, 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습니다.(시편 67,6) 그분으로부터 우리는 자비를 입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아시아의 젊은이들이여, 일어나십시오.”
“아시아에 살고 있는 젊은이로서, 이 위대한 대륙의 아들딸로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신앙의 지혜를 불어넣으십시오.”
소박한 방한 일정 당부
교황은 생애 기간 소박함과 청빈을 강조하며 자신의 시선과 삶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공식 거처도 교황 사도궁이 아닌 산타 마르타의 집이었으며, 방한 때에도 일정을 소박하게 짤 것을 당부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제 때부터 ‘BMW’, 즉 B(버스)+M(지하철)+W(걷기)를 좋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일 때에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로마에서도 교황청 수행원들과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다닐 만큼 소박하게 사목했다. 방한 당시에는 차량도 KIA 쏘울을 탔다. 교황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창문을 열고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등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첫 번째 공식적 이동지인 대전에 갈 때는 헬기가 아닌 KTX 열차를 이용했다. 당시 교황은 “느린 기차는 타 보았어도 이렇게 빠른 기차는 처음 타 본다. 아주 좋다”며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교황은 청년들에게도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만일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 행복은 결국 날아가 버립니다. 마지막에는 사랑의 기쁨, 사랑의 행복만이 유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의 길은 단순합니다. 이웃, 형제자매, 특별히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27일, 이준태 기자] 0 1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