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일 (일)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신뢰, 여정의 밑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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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29 ㅣ No.2162

[영성심리 칼럼] 신뢰, 여정의 밑바탕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1902~1994)은 그의 대표 이론인 ‘심리사회적 8단계 발달 모델’을 통해 사람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평생 성장(발달)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전 생애를 통해 사랑의 선물을 발견하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 일련의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통합해야 하는 심리적 과제들이 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건강한 성격 발달에 기여한다고 설명합니다.

 

어느 심리학자의 이론도 인간의 삶을 온전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에릭슨의 이론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여정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첫 단계(0~1.5세)의 주요 과제는 ‘신뢰 대 불신’입니다. 요약하면, 친밀한 방식으로 일관되게 양육될 때 영아는 이 세상이 좋은 곳이고 자신이 긍정적인 존재라는 것을 신뢰하게 되지만, 방임되거나 일관되지 않은 방식으로 양육될 때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신뢰감 형성이 무조건 좋고, 불신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때론 불신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초 신뢰’가 형성될 때 더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뜻입니다. 이분법적 흑백 논리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죠.

 

이 신뢰감 형성이 이후 모든 발달의 초석이 되는데, 이는 신앙 여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도 ‘믿는다.’라는 인간적 행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기초 신뢰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을 때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이미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느끼기 때문에, 때론 그 안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더라도, 세상을 좋게 창조하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되죠.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나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경험하고 아파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더 쉽게 믿게 됩니다.

 

그런데 ‘나는 기초 신뢰가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과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이 기본이라면요? 그래서 감사와 희망보다 불안과 절망감이 계속된다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는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기초 신뢰를 보충할 수 있으니까요. 하느님께서 지금의 나를 친밀한 방식으로 일관되게 양육하고 계신다는 사실, 곧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 끊임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체험 안에서 깨달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신뢰하면서 희망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안에서, 사랑의 선물을 계속 발견해 갈 것입니다.

 

이 길을, 이미 걷고 있는 우리입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24)

 

[2025년 4월 27일(다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대신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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