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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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성인, 복자, 하느님의 종에게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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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10 ㅣ No.2361

[특별 기고] 성인, 복자, 하느님의 종에게 기도하기 (1) (Pregare i santi, i beati e i Servi di Dio)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와 함께 지난 2월 8일에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추진 제2차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전구(轉求) 기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 시성부 차관보 보구스와프 투렉(Bogusław Turek) 몬시뇰의 특별 강연을 2회에 걸쳐 전재합니다. - 편집자 주

 

 

1. 왜 성인들에게 기도하나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50항은 성인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무요 공동상속자들이며 우리의 형제요 탁월한 은인들인 이 성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마땅한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유일한 구속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은혜를 얻고자 우리가 간절히 그들을 부르고 그들의 기도와 힘과 도움에 의지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2683항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들어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는 것은, 그분과 가까이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준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아래의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956항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49항을 참조하여 성인들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이들은 주님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하며,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에서 주님을 섬기고 (…) 따라서 그들의 형제적 배려로 우리의 연약함이 많은 도움을 받는다.”

 

위의 몇 가지 인용문은 - 더 많은 인용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특히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시성된 성인들에 대한 전통을 반영합니다. 특히 신자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본보기로 제시하는 역할과 전구자의 역할이라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구자로서 성인들은 꼭 필요한 것일까요? 신자들이 주님께 직접 기도할 수는 없을까요? 성인들의 전구가 필요한 근거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인용한 위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인들은 하늘에 있고 하느님과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전구를 요청합니다. 성인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여전히 신앙공동체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인들에게도 똑같이 기도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치 성인들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성인들을 통하여 기도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인들이 지상에서는 성덕의 모범으로 하느님과 가까이 있었고, 이제는 천상의 증인으로서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진정한 전구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칼 라너(Karl Rahner)의 묵상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특별한 중개 없이도 하느님을 바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성찰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애정과 관계의 구조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인들과의 관계는 이러한 구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성인들에게 기도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특별한 계명이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함께 기도하는 것이고, 친교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우리 편에 서서 우리와 함께 기도합니다.

 

성인들의 전구를 요청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라너에 따르면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유명한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는 전례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에 반대하면서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들, 즉 성인들이 사라짐으로써 하느님께서 참으로 더 깊이 사랑받고 찬양받으신다면, 이것은 성인들을 크게 기쁘게 할 것이고 그들은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빛이 없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밤의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지 않도록 다시 횃불을 들어야 합니다. 결국 세상에서 하느님의 빛인 성인들의 빛 속에서 우리는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느님의 종에게 드리는 전구 기도

 

전구의 차원은 성인들과 복자들, 즉 교회의 사도적 권위에 의하여 승인된 행위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성인 대열에 이름을 올린 이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성덕의 명성’ 속에서 죽은 이들에게도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전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수 세기 동안 시복과 시성이 수행되어 온 전통적인 절차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실제로 초세기부터 순교자들의 행적이나 증거자들의 거룩한 삶을 소개하는 글들이 쓰여졌고, 순교자들의 명성이나 성덕은 그들의 전구를 통해 얻은 은총과 기적들을 통하여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받은 은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기적에 관한 책들이 생겨났습니다. 전구의 결과로 얻은 은총에 대한 설명이 담긴 이 책들은 기적이 성인의 지상과 천상의 삶을 통합하는 것으로서, 성인의 성덕을 나타내는 확실한 징표라는 대중의 믿음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순교자나 성인에 대한 신심은 그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얻은 기적과 은총의 수와 성격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기적이 성덕을 판단하는 거의 유일하고 독특한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성인 경배는 신자들의 자발적인 경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의 무덤을 방문하거나, 사망일에 그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방문에서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도나 구체적인 필요를 위한 전구 기도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이렇게 드러난 ‘성덕의 명성’, ‘기적’, ‘표징’은 단순히 사회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과거와 오늘날에도 시복시성 안건의 기본 요건이 되는 신학적 실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성덕의 명성과 표징에 대한 검증’은 여론의 현상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의 표현을 포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복 및 시성 절차에서 전구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저는 하느님의 종에게 바치는 전구 기도와 관련된 두 가지 요소를 추가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전구 능력의 명성’과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성덕의 명성’, 그리고 두 번째는 ‘기적’입니다.

 

 

3. 성덕의 명성 맥락에서 이해하는 ‘전구 능력의 명성’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성인”이라고 여겨지는 이가 주님 곁에서 자신의 소망을 위해 전구해주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결과적으로 성인, 복자, 하느님의 종의 전구로 말미암아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현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전구 능력의 명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덕의 명성’과 밀접하게 결합된 이 두 요소는 시복 및 시성 절차를 착수하기 위한 진정한 전제 조건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성덕의 명성’에 대한 진정한 평판은 항상 ‘전구 능력의 명성’으로 두드러진다는 사실에서 이 둘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 진위를 평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준입니다.

 

시성 안건들의 교구 예비 심사를 위한 교황청 시성부 훈령 「성인들의 어머니」는 ‘전구 능력의 명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전구 능력의 명성’은 하느님의 종의 전구로 받은 하느님의 은총과 은혜에 관하여 신자들 사이에 퍼진 의견을 말한다.”

 

규정에 반복적으로 명시된 바와 같이, ‘성덕의 명성’과 ‘전구 능력의 명성’에 대한 진실하고 진정한 평판이 없으면, 시복 및 시성 절차를 착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할 주교 혹은 청원인은 안건의 개시를 결정하기 전에 행하는 예비 조사 과정에서, ‘성덕의 명성’에 대한 진정한 평판이 신자들이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필요를 위해서 성인이라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청하게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덕의 명성’에 대한 평판에는 시성 후보의 전구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은총과 하늘의 호의를 얻은 사람들의 증언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실제 기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 현행 법률은 그러한 기적을 선언하려면 상세한 연구와 신중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 성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의 전구에 의지한 것이 주님으로부터 허락되었다는 신자들의 내밀한 확신에 관한 문제입니다.

 

반대로, 문서화되지 않고 ‘전구 능력의 명성’이 증언되지 않는 ‘성덕에 대한 명성’은 진정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한 단순한 유명세나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성덕의 명성’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구 능력의 명성’이 일련의 사실과 사건이 아니라 널리 퍼진 의견으로 정의될 때, ‘전구 능력의 명성’을 분석하면서 각각의 은혜가 진정한 은총인지 확인하거나 전구 기도와 받은 은총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를 윤리적 확실성으로 입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입증 과정은 기적의 경우는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조사의 목적은 아래에서 살펴볼 ‘성덕의 명성’에 대한 기준에 따라 그 존재를 확인하고 그 진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3.1. ‘전구 능력의 명성’의 진정성

 

교황청 시성부 훈령 「성인들의 어머니」는 ‘성덕의 명성’과 ‘전구 능력의 명성’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명성은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이 명성은 믿을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되어 지속적으로 널리 퍼지고 상당히 많은 하느님 백성 사이에 알려진 것이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은 자발적인 것: 동기

 

‘전구 능력의 명성’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만들어져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요건은 분명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참된 선과 관련 없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잘못된 가정과 진실하지 않은 동기를 가진 기도로 시복 안건이 추진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수도회의 존속이나 성소의 증가와 같은 주관적인 평가, 희망 사항 또는 필요한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전구 기도에 의지하는 진정한 이유를 현명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금 언급한 이유 또는 이와 유사한 이유가 전구 기도를 장려하는 이유라면, ‘전구 능력의 명성’을 얻기 위한 인위적인 방법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구 기도에 대한 진정한 호소는 성흔(聖痕), 환시(幻視), 발현(發現) 등과 같은 특정 현상에 근거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한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항상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지 그분의 거룩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으로 간주되는 신자에게 전구 기도를 요청하는 진정성 있고 자발적인 기도는 그 사람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그가 설립하거나 성취한 업적, 생전에 누렸던 미디어의 인기와도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덕의 명성’과 ‘전구 능력의 명성’은 좋은 평판, 대중의 인식,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명성과는 현명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정성과 지속성: 시간

 

이러한 요구사항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차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단기간 동안만 누군가의 성덕을 확신하고 그분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전구 기도는 순간적인 관심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안정적인 관심과 확신의 결과로서,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상당히 많은 하느님 백성 사이에 알려진 것이어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질과 양

 

책, 강의, 팜플렛, 라디오, 텔레비전 또는 인터넷에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덕의 명성’과 ‘전구 능력의 명성’의 기초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전구 기도에 의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에 대한 의존이 언제 어떻게 싹트고 계속 되었는지, 그리고 기도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와 함께 계속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교황청 시성부 훈령 「성인들의 어머니」는 ‘믿을 만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진술은 표징과 은총을 받았다는 전구 능력의 명성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자질이며, 그들이 사회에서 누리는 좋은 평판과 생각을 말합니다. 따라서 명성의 진위 여부는 특별히 자격을 갖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도덕적 위상(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진실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 등)뿐만 아니라 맡은 역할(주교, 본당 사제, 수도회 장상, 지역 교회에서 특별히 헌신하는 평신도)과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훈령은 ‘상당히 많은 하느님 백성’을 언급합니다. 양적인 기준입니다. 신자 전체가 전구 기도에 자신을 맡길 필요는 없지만, 전구 기도에 의지하는 신자는 상당한 인원이어야 하며, 소수의 인원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상당한 수’는 단순히 숫자나 통계적 의미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기도와 은총과 표징을 받는다는 확신이 살아있는 하느님 백성의 구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와 요청된 은총을 받았다는 확신은 비록 성인의 대열에 오르는 후보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전체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특정 수도회의 구성원들 안에서만 혹은 하느님의 종의 가족들 안에서 또는 특정 그룹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전구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전구 능력의 명성’은 진정한 것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전구를 통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열매인 ‘전구 능력의 명성’은, 모든 시복 안건의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인 진정한 ‘vox populi’, 곧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구 기도는 신앙의 맥락을 강조하며 ‘아래로부터’, 즉 성인의 대열에 오르는 후보자의 ‘성덕의 명성’에 대한 신자들의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인 ‘vox populi’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인 ‘vox populi orantis’로도 표현됩니다. [교회와 역사, 2025년 3월호, 글 보구스와프 투렉 몬시뇰(시성부 차관보), 번역 김남균 시몬 신부(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부관장)]

 

 

[특별 기고] 성인, 복자, 하느님의 종에게 기도하기 (2) (Pregare i santi, i beati e i Servi di Dio)

 

 

4. 기적

 

복자의 시성이나 신앙의 증거자의 시복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기적의 기원은 지금까지 언급했던 전구(轉求) 기도입니다. ‘성덕의 명성’과 ‘전구 능력의 명성’이 없다면 기적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1983년 법전 개정 이후에, 시성부의 실행 절차에 순교자의 시복 안건에는 기적의 확인이 필요하지 않지만, 시성 안건에는 기적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증거자의 경우에는, 그리스도교의 영웅적 덕행을 실천한 이들, 목숨을 바친 이들의 경우, 복자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기적이 확인되어야 하며, 시복 이후에는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나야 시성을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6월 1일, 교황청의 여러 부서 방문 중 시성부를 방문하여 부서의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적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확신을 표현했습니다.

 

“나는 양심에 따라 기적이 없는 시복을 거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기적은 ‘하느님의 손가락’이며, 이는 우리에게 ‘이것이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교황은 2019년 12월 12일 교황청 시성부 설립 50주년을 맞아 시성부 구성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같은 개념을 다시 한 번 언급했습니다. 특히 영적 실재로 시복 안건과 시성 안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강한 복음적 감각과 윤리적 엄격함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실제로 한번은 아마토(Angelo Amato) 추기경(당시 시성부 장관)과 함께 기적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기적이 필요한 이유는 그곳에 ‘하느님의 손가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백한 개입 없이는, 시성 안건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는 교황의 이 말씀에 따르면, 기적은 초자연적 표징으로, 본받고 전구해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천상에서 하느님과 가장 완벽한 친교를 이루며 지내는 교회의 모습을 보증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충분히 면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자료들은 하느님과의 친교에 대한 확증과 교회 권위가 성덕에 대해 내린 판단에 대한 거룩한 확증으로 구성됩니다. 사실 인간적 평가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록 진지한 방법으로 수행되고 내용의 정확성을 가지고 수행되지만, 새로운 성인과 복자의 최종 선포를 하는 교황에게 그 결정에 대한 보증과 최대의 확실성을 제공하기 위해 신성한 표징에 호소합니다.

 

‘순교자에 관해 연구하거나 시복 후보자의 영웅적 덕행을 인정하기 위하여 인간적으로 가능하고 엄격한 단계로 명문화된 모든 절차를 거친 후, 기적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확인하는 것이며 가경자, 하느님의 종, 복자의 전구에 의해 얻게 된 하느님의 업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하느님의 손가락(digitus Dei)’이자 인간의 판단에 대한 ‘하느님의 목소리(vox Dei)’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신중함에 따르면 이 까다로운 요건은 지역적이든 보편적이든 하느님의 종을 시복하거나 복자를 시성할 때, 그 경배를 허가하기에 앞서 성덕을 확인하고 식별하는 것과 같이 중요하며, 이는 인간적인 오류 가능성으로부터 이를 보호하는 기본적인 도구로 여겨집니다.

 

시복 및 시성 안건에서 검토하는 기적은 그 기적이 일어난 종교적, 신앙적 맥락에서 찾고 이해해야 하며, 그 기적이 진실하고 심오한 풍요로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시복 및 시성 안건에서 이러한 측면을 검증하는 작업에는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한 신학적 기준으로 기적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사하는 개별 사례의 세부 사항에서,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간주하는 사실과 가경자, 하느님의 종 또는 복자의 전구를 통해서 하느님께 기도한 사실 사이에 인과 관계가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특정 부분의 존재를 신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실제로 전구 기도가 있었다는 것, 즉 기적을 얻기 위해 시성 후보자를 통하여 주님께 전구 기도가 명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전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기적이 단 한 사람의 전구 기도에 명확하고 확실하게 귀속되기 위해서는, 시성 후보자 한 명에게만 전구 기도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전구 기도가 이루어지는 맥락에서 어떤 사건을 진정한 기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시복 및 시성 안건에서 교회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 지역 교회의 맥락에서 성인의 가치를 논할 때 이미 언급했듯이 - 한 개인의 이익을 위한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의 표징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할 새로운 이유를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성인이나 복자의 선물을 통해, 우리는 본받을 새로운 본보기를 얻고 신자들에게 영적 유익을 주는 메세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5. 공적 경배와 사적 경배

 

교회의 기도나 신자의 개인 기도에 대해 말할 때는 경배의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공적인 기도든 개인적인 기도든 성인, 복자, 또는 하느님의 종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께 바치는 전구 기도에도 해당됩니다.

 

시복 및 시성 절차의 목적은 성덕의 개념 속에서 죽은 후보자를 복자의 명부나 성인의 목록에 등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시복의 경우 지역 교회 차원에서, 시성의 경우 보편 교회 차원에서 교회의 공적 경배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규정을 담고 있는 우르바노 8세 교황(Urbanus PP. VIII, 1623~1644 재위)의 1634년 7월 5일의 교황령 ‘천상 예루살렘 시민들’은 복자나 성인으로 선포되지 않은 죽은 사람에게 드리는 공적 경배를 금지합니다. 공적 경배의 존재가 확인되면 즉시 시복 절차는 중지될 것입니다.

 

한편, 교회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공적 경배를 금지하지만, 하느님의 종에 대한 사적 경배는 허용되며 요구됩니다. 만약 이러한 사적 경배가 없다면 ‘전구 능력의 명성’과 전구 기도로 인하여 받는 은총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5.1. 공적 경배

 

이미 언급했듯이 교회의 권위에 의해 시복식 또는 시성식을 통해 성인들이나 복자들의 명부에 올린 하느님의 종들만이 공적 경배의 대상으로 인정됩니다. 교회법전은 공적 경배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배는 합법적으로 위임된 사람들이 교회의 권위에 의해 승인된 방식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바칠 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공적 경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❶ 단순히 개인의 자격이 아닌 교회의 이름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❷ 이 목적을 위해 합법적으로 위임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❸ 최종적으로 교회의 권위에 의해 승인된 예식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공적 경배는 해당 지역의 교구장으로부터 필요한 허가를 받고, 현행 전례 규범에 따라 교회의 이름으로 자신의 봉사를 수행하는 성직자 또는 평신도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 행위와 일치합니다.

 

복자와 성인에게 허용된 공적 경배의 형태

 

복자나 성인에 대한 공적 경배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며, 이는 교회의 권위에 의해 규정됩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이 있습니다.

 

먼저 미사 거행입니다. 고대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따르는 이 관행은 복자 혹은 성인의 기념일 미사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역 교회나 보편 교회의 전례력에 따른 기념 미사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종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경우 사망 기념일이라 하더라도 성인을 위해 준비된 전례 양식을 사용하여 미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이는 후보자의 시복을 위한 기도를 하거나, 예를 들어 보편지향기도에서 그러한 지향으로 기도하거나 전례의 마지막 부분에 적절한 기도를 하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복자 혹은 성인들과 달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름은 성찬례 기도에서 언급할 수 없습니다.

 

성찬례와 마찬가지로 「시간 전례(성무일도)」도 고유한 본문을 사용하고, 교회의 권위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되거나 공통된 부분을 사용해야 합니다.

 

공적 경배의 한 형태가 ‘호칭 기도’입니다. 「성인 호칭 기도」는 교회에 전해진 가장 오래된 호칭 기도입니다. 여기서 성인의 이름은 교계제도를 따라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인 호칭 기도」를 노래하거나 암송할 때 지역 교회의 성인과 복자의 이름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경자와 하느님의 종의 이름은 추가할 수 없습니다.

 

성인이나 복자에게 성당을 봉헌하는 일, 특정한 주제의 사람이나 물건의 주보 성인으로 간구하는 것도 일종의 공적 경배입니다. 성인의 경우, 교구장 주교가 성인의 이름으로 성당과 경당을 봉헌할 수 있습니다. 복자의 경우에는 교구 전례력에 기입된 경우에 한해 복자의 이름으로 봉헌할 수 있습니다. 복자이지만 교구 전례력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의 이름으로 성당을 봉헌하려면 경신성사(敬信聖事)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가경자 혹은 하느님의 종에게는 성당을 봉헌할 수 없습니다.

 

주보 성인과 관련한 내용 역시, 교구장 주교 혹은 지역 주교회의의 요청으로 경신성사부에서 성인에 관한 주보를 정하여 수여할 수 있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로 복자에게도 가능하지만 이미 가경자로 선언되었더라도 하느님의 종에게는 수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성인과 복자의 유해에 대해 늘 큰 경의를 표하며, 특정 장소(예를 들어, 제대 밑)에 안치하거나, 행렬이나 순례 때 유해를 모시고, 분향하거나 친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공적 경배 역시 복자나 성인에게만 허용됩니다. 성인이나 복자의 유해와 관련된 다양한 작업, 예를 들어 유해에 대한 교회법적 입증, 유해 발굴, 순례 형태의 일시적 혹은 확정적 이전 등은 교회의 유해 관련 규정에 의해 규제됩니다. 유해의 진정성과 보존과 관련하여 교황청 시성부의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또한 복자의 유해를 모시고 경배의 형식으로 순례를 할 경우에는 2016년에 경신성사부에서 제정한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인과 복자에 대한 공적 경배의 중요한 형태는 그들을 표현한 그림, 회화, 프레스코화, 조각, 모자이크 혹은 형상으로 표현한 예술 작품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성당 혹은 공적으로 기도가 이루어지는 장소에 전시될 수 있습니다. 가경자 혹은 하느님의 종의 경우에도 그림이나 이미지 혹은 다른 형태의 표현을 만들 수 있지만, 오직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제의실이나 개인적인 장소에 둘 수 있지만, 성당 내부에는 둘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은 그들이 이미 성인이나 복자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자 혹은 성인을 향한 공적 경배의 표현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신자들의 전구 기도를 장려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성덕과 ‘전구 능력의 명성’을 더욱 높이는 일이기를 바랍니다.

 

 

5.2. 사적 경배

 

신자들이 성인, 복자 혹은 후보자에게 자발적으로 드리는 경배를 ‘사적 경배’라고 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백성은 어떤 사람의 순교나 성덕을 확신하고 그의 전구를 간구하며 그들이 요청한 은총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적 경배와 ‘성덕의 명성’, ‘전구 능력의 명성’ 사이에는 분리할 수 없는 연관 관계가 있으며, 이는 시복 안건을 시작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단체나 성직자의 인도로 성당 내부에서 이루어지더라도 전례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사적 경배는 개인적일 수도 있고 공동체적일 수도 있습니다.

 

전례가 아닌 사적 경배의 예로는 다음의 것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개인 기도 및 공동체 기도, 무덤 방문 혹은 하느님의 종과 연관된 장소 방문, 그에게 속한 소유물 보존, 그림, 조각, 비문, 출판물, 영화,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터넷 페이지 등의 표현이 포함됩니다. 사적 경배의 일부 표현은 전구 기도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종들의 전구에 의탁하는 것은 성인의 대열에 오르는 후보자의 ‘성덕의 명성’을 진실하고 확실하게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기도의 진정성에 대한 존중과 하느님의 종들에게 전구할 수 있다는 자유를 고려한 차원에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형태로 사적 경배를 홍보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하느님의 종의 사진과 함께 그의 전구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 관할권자가 승인한 기도문이 포함된 상본을 준비하고 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과 연관된 장소 방문, 무엇보다 그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은 신자들이 그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신호입니다. 그러한 방문의 이유는 사적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호기심 때문에 혹은 잘 알고 있어서 혹은 이미 유명해져서 그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방문자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인쇄물의 도움을 받아 그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이 사적 경배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장소에는 신자들이 방문 이유 혹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의 기도를 표현하며 자신의 지향과 전구 기도의 결과로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기록할 수 있는 노트를 준비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의 종에 대한 기억과 경배를 표현하며 그와 관련된 기억을 간직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친숙함의 차원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성덕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속한 물건은 이러한 확신을 강하게 지키고 활기를 불어넣는 일종의 ‘유물’이 되며, 종종 성인의 대열에 오르는 후보자와 가까워지고 싶고, 일상적인 필요에 처했을 때 그에게 맡기거나, 시련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의 전구에 의지하고 싶은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인과 복자, 하느님의 종에게 적용되는 ‘공적 경배’와 ‘사적 경배’라는 용어는 본질적으로 기도의 차원을 가리킵니다. 곧 교회법과 전례 규정대로 그들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표현한 것입니다. 공적 경배와 사적 경배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근본적인 기준은 성인과 복자, 하느님의 종의 차이에 대해 하느님의 백성 사이에 잘못된 인식이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종류의 행동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6. 결론

 

성인품에 오르는 성덕은 전구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성인 형제들이 주님께 전구하는 힘을 의지하고 믿는 하느님 백성의 기도가 갖는 근본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복자와 성인을 선포하거나 시복 시성 절차를 시작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또한 기도에서 그들의 전구에 의지하는 것을 배제한다면 복자와 성인, 하느님의 종은 그 의미와 ‘기능’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이 차원을 건전하고 진정성 있게 증진하는 것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입니다.

 

저는 다음의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복자와 성인, 하느님의 종들은 천국에서 무엇을 할까요?”

 

우리는 그 답을 성녀 소화 데레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제 천국은 세상 끝날 때까지 이 땅에서 쓰일 것입니다. 네, 제 천국은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하는 데 쓰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 있는 성인들이자 우리 친구들의 낙원입니다. 바로 이 땅에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실, ‘새 계명’이 땅에서 우리를 위한 계명이라면, 그 가치는 하늘에서도 같습니다. 그 계명은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우리들의 성인과 복자, 하느님의 종이 이 계명을 실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교회와 역사, 2025년 4월호, 글 보구스와프 투렉 몬시뇰(시성부 차관보), 번역 김남균 시몬 신부(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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