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5일 (화)
(자) 성주간 화요일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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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30년사 편찬사업 구술채록6: 민화위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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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09 ㅣ No.1847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30년사 편찬사업 구술채록 · 6] 민화위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하여

 

 

• 일시 : 2024년 7월 15일 (월) 오후 2시

• 장소 :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30년사』 간행에 앞서,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 역대 위원장 및 위원 등을 모시고 민화위 설립 배경부터 방북 및 대북지원 과정, 앞으로 나아갈 발전 방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물인 이 구술채록문은 민화위 30년사에 수록될 계획이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김가흔 : 신부님께서 민화위에 부임하신 지 이제 2년 정도 지나셨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민화위가 가장 신경을 쓰고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정수용 신부 : 부임 초기에는 저도 북한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민화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민화위 위원이라거나 그밖에 관련된 활동을 하다가 부위원장이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어떻게 창립되고,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이어왔는지 먼저 좀 알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임해서 우선 급하게 해야 할 업무들을 진행하면서도 틈틈이 민화위를 처음 만드셨던 분들을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그 당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정광웅(요셉) 신부,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 조광(이냐시오) 교수 이런 분들 찾아뵙고 이야기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하나같이 민화위의 첫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때 기획했던 세 가지, 기도, 나눔, 교육 · 연구에 대한 사목적 비전을 다시 일깨워주셔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 세 가지를 균형 있게 잘 진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여건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나눔은 지금으로서는 어렵고, 기도는 언제나 가장 중심이 되고 더 확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남북 관계 안에서 그나마 좀 더 준비하고 힘쓸 수 있는 부분은 이제 교육과 연구 사업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민화위가 북측과 여러 가지 협력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올 때, 더 많은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교육과 연구일 것 같아서 현실적인 여건도 그렇고 앞으로 준비하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지금은 교육과 연구 사업에 좀 더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가흔 : 향후 북한과의 교류가 다시 가능해진다면 기존과 같은 대북지원 사업을 재개할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정수용 신부 : 초기의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에는 당시 북한의 열악한 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종교적 자유가 좀 더 보장됐다면, 또 다른 형태의 교류가 가능했겠지요. 그렇지만 1995년이라는 상황이 ‘고난의 행군’기간이었고,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나눔의 형식이 종교 교류가 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인도적 지원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다시 남북 교류가 가능해진다면, 교회의 관심은 여러 가지로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의 종교 자유를 좀 더 보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북측의 가톨릭 단체와 종교적 교류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도 여러가지로 의료나 교육에 어려움이 있고, 식량도 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평양 이외의 지역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당장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래도 인도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의 천주교 단체와 서로 신뢰를 더 쌓고, 교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에 다양한 종교적 교류 사업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북한과 교류하고 지원하는 것이 반드시 북한에 신자들을 늘리고, 과거의 천주교 조직을 다 복원해서 성당을 다시 짓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질화된 부분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결국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길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아픈 이가 있다면 그들을 먼저 돕는 거고, 굶주린 이들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가흔 : 민화위의 북향민 지원 사업은 사회복지의 영역과 다소 겹치는 것 같은데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는 맥락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수용 신부 : 북향민 지원 사업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북향민이 많이 거주하는 양천구 지역을 담당하는 가톨릭 사회복지기관인 ‘한빛복지관’에서 민화위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요, 직접 정착 도우미 활동이나 지원 등은 이미 지역별로 가톨릭 사회복지법인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위에서 북향민 지원사업을 지속하고 함께하는 것은,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이 사람들에게 “북한과 통일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물어보자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네” 하고 대답을 했겠지요. “그럼, 지금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이렇게 다시 물으니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고 해요. 그런 이유입니다.

 

지금 북측에 사는 2천만, 2천5백만 되는 사람들과 이미 많이 이질화되어 있는데, 그들을 형제·자매로 고백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이미 있는 3만 4천 명의 북향민을 먼저 끌어안고 그들과 한 형제로 살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저 북에서 오신 분들로 생각할 수 있을 때 ‘민족의 화해와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고, 어떤 정치적 체제로서의 통일을 이루기 전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 안에서 살아왔던 이들을 우리가 한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북향민들이 이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고,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민족화해위원회도 그분들과 동반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김가흔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가 지난주로 벌써 1,426회가 됐더라고요. 미사는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시는지요? 이 미사에 사람들의 관심을 좀 더 불러일으킬 방법은 없을까요?

 

정수용 신부 : 제가 민화위 부임한 지 2년 정도 지났으니 오시는 분들이 대충 구분이 되지요. 그냥 평일 저녁 미사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특별히 이 미사의 의미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고정적으로 오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민화위 후원회원이나 북에 고향을 두신 분들이거나 혹은 2세라든지 이런 관련 있는 분들도 있고요, 다양한 분들이 각자의 관심을 가지고 오시는 것 같습니다. 또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저녁 미사 시간 맞춰 오신 분들도 이런 미사를 계기로 민족 화해 사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사를 좀 더 알리고 소개하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민화위가 해야 할 일이지요. 그런데 이게 과거에 하셨던 분들에 대한 평가가 될까 봐 조심스럽기는 한데, 한동안 민족 화해 미사가 그냥 방치되었다고 봅니다. 위원회 담당하는 신부들이 미사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서울대교구의 새로 부임한 신부들에게 외주화 해서 형식적으로만 남아 있었던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뭐 예를 들면 1,400차, 1,500차 미사 등 특정 기념일에 좀 더 홍보를 하거나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반적으로 ‘민족 화해’에 대한 관심들이 다시 이어질 때 이 미사도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전체적으로 관심이 줄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사도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미사에 오시는 분들에게 좀 더 알리기 위해서, 강론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난 한 주간 있었던 남북 현안들, 북한 뉴스 중에 한 가지 정도 기도 지향으로 소개하면서 공지를 하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자 하는 북한 본당을 하나씩 선정해서 관련된 그림을 전시해서 시각적으로 보실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나가고는 있습니다.

 

김가흔 : 민화위의 지금 활동은 교육과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특히 ‘평화나눔연구소’ 같은 경우에는 단순한 학술 연구기관이기보다는 연구를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민화위의 교육과 연구 활동에 대해 조금 더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수용 신부 : 단순히 분단 현실, 북의 실체, 북의 현실적인 상황 이런 것을 알리고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하기 위해서 교육한다는 그런 측면보다는, 같이 고민하면서 관심 갖게 하는 게 연구의 작업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학술적 차원에서의 연구도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학술적 연구 결과가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민화위의 교육 사업도 ‘여러분은 이거 모르죠? 그러니까 배우세요, 좀 더 아세요’ 이런 일방적이기보다는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그러면서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찾아내고, 복음적 가치를 모두가 신뢰할 수 있고, 우선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내는 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들을 하게 되고요.

 

그런 차원에서 분단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분단의 역사들이 남아 있는 현장들을 함께 걸어보고, 서로 이야기하고 소감을 나누고 이런 형식의 교육들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평화라는 주제는 교회의 가장 핵심적 가치이면서, 전문적 주제이기 때문에 일반 학계에서 논의되는 것과 함께, 교회가 생각하는 평화의 방식, 평화의 길에 대해서 또 같이 대화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관련된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것을 이 시대가 이야기하는 언어로 같이 이야기 해야 되기 때문에, 이 시대에서 연구되는 부분도 같이 교회가 대화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모두 민족화해위원회가 수행해야 하는 교육 연구 사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가흔 : 민화위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수행해야 하고, 또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수용 신부 : 갈등이 극복되고 조정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갈등 상황에 있다는 인식, 그리고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갈등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미국의 존 폴 레더락(Jouh Paul Lederach)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 분단이 그냥 기본값으로 되어 있고 점점 무관심해지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쏜다든지 하는 군사적 위협을 했을 때도 그냥 하루짜리 뉴스, 단신으로 처리되고 지나가게 되는 것처럼, 이미 분단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상황인데, 저는 그 분단이 만들어내고 있는 비복음적인 문화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갈등, 혐오, 경쟁, 이 모든 것들이요. 그리고 평화적인 방식에 의해서 상대방이 변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민족화해위원회의 궁극적인 목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인이든 신앙을 아직 갖지 않은 분들이든, 민족화해위원회가 이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메시지는 결국 갈등 극복에 대한 희망 혹은 평화에 대한 의지 이런 부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그런 활동이 결국은 이 사회를 조금씩 복음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민화위의 활동이 오늘날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가흔 : 교회 안에서도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대한 시각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생각했을 때 ‘화해와 일치’가 필요한 것은 북한보다도 남한의 교회 안에서가 먼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민화위가 활동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수용 신부 : 소위 말하는 ‘남남(南南)갈등’이지요. 진보적 정책이든 보수적 정책이든 대북정책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첨예하게 갈등을 빚게 되는 그런 문제고요. 궁극적으로 이런 정치적 이슈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북한을 ‘위협과 경쟁’의 대상으로 보느냐, 혹은 ‘포용과 지원’의 대상으로 보느냐, 이 구분에 따라서 모든 정책을 나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메시지를 내든지 그 메시지가 소비될 때는 이런 양극화된 이념적 지형 안에서 소비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저 사람은 우파적이다’, ‘저것은 매우 좌파적인 시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곤 하지요. 그런데 교회가 복음의 기준을 가지고 메시지를 선포한다 하더라도 그 메시지가 소비될 때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교회가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이런 지형을 좀 바꿔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이게 민화위의 단독 사명이라기보다는 한국 교회나 서울대교구 전체가 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다만 민화위는 이런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민화위도 나름의 고민을 해야되겠지요. 결국 저는 이 사회가 듣든 듣지 않든, 교회는 복음적 메시지를 꾸준히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또 분명히 인식을 하고 있어야 되겠지요.

 

김가흔 : 마지막으로 「민화위 30주년 행사」를 기획하는 소감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수용 신부 : 소감이요? (잠시 침묵) 음, 지하실 창고에 (민화위가) 앞으로 걸어나갈 때 쓸 수 있는 중요한 지도가 있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러 서류에 섞여 있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과거에, 이 위원회를 만드신 분들, 그리고 위원회 활동을 해오시면서 고민하셨던 분들의 지혜를 찾아봐야 저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비전이 뭐냐’,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아이디어가 있느냐’ 물어본다면 저는 뭐 지금까지 해오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아요. 저보다 먼저 고민하셨던 분들,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애쓰셨던 분들의 30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물론 그게 다 정답은 아니겠지요. 잘못 갔던 방식에 대한 반면교사(反面敎師)도 담겨 있을 것이고, 초반의 설레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고, 강력한 의지가 함께 모였던 순간도 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시 한번 지하실 창고를 나와서 같이 바라볼 때,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도 거기에 있을 것 같고, 의지도 있을 것 같고, 또 지혜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 안에서 민화위가 걸었던 30년의 역사를 잘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교회와 역사, 2025년 2월호, 구술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리 김가흔(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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