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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상담12: 공감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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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3-25 ㅣ No.564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2) 공감적 대화


타인 공감하려면 정확한 상황 인식이 우선

 

 

철학상담의 기술적 방법으로 공감적 대화가 있다. 이는 상담자를 찾아온 내담자의 고유한 체험을 가능한 한 객관화시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느낌으로써 문제 해결에 이르는 철학상담의 고유한 방법을 일컫는다. 공감적 대화의 중요성은 철학상담의 기본이 공감적 태도를 지향하는 ‘열린 경청’의 소크라테스적 대화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공감적 태도란 어떤 것인가?

 

사실 타인을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오늘날 공감(共感)의 개념은 그 어원과 관련해 중의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윤리적 행위로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독일 철학자 셸러(Max Scheler, 1874~1928)는 공감 개념으로 독일어 ‘아인필룽’(Einfühlung) 대신 ‘미트게필’(Mitgefühl)을 강조한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심파테이아’(συμπάθεια)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어떤 감정을 누군가와 함께 느낀다’란 의미다.

 

중요한 점은 ‘함께’(συν/Mit)라는 접두사의 사용이다. 반면 ‘아인필룽’의 어원인 그리스어 ‘엠파테이아’(ἐμπάθεια)는 ‘안에’ 혹은 ‘안으로’(ἐν/Ein)의 뜻을 지닌 접두사가 사용된다. 즉 공감은 어떤 감정(πάθος/파토스) ‘안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을 ‘함께’ 나누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엠파테이아’에 어원을 둔 ‘아인필룽’에서 번역된 영어 ‘엠파티’(empathy)가 심리학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셸러는 어원에 근거해 공감의 기본 요소를 ‘이해·뒤따라 느낌·뒤따라 삶’이라 하고, 공감의 본질이 타인의 체험과 느낌의 객관적 이해와 이를 따라 느끼고 겪는 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공감은 철학적으로 단순한 느낌 차원의 정서적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심리주의에서 말하는 주관적이고 투사적인 감정이입이나 모방충동 혹은 감정 전염이나 감정합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철학상담에서 말하는 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내적 체험에 대한 객관화와 그에 상응한 정서적 반응을 통해 타인의 고유한 자아를 체험하는 매우 깊은 정서적 교감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공감하는 데 필요한 것은 사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도, 동질의 경험과 느낌도, 감정이입이나 감정합일도 아니다. 타인을 공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그런 인식을 위해 외적으로 표현되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편견없이 주의 깊게 경청하고 바라보는 판단 중지의 현상학적 태도가 요구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라 하겠다. 또 공감과 유사한 감정에 빠져 타인을 잘못 이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범하는 실수 가운데 흔한 것은 자기 경험에 근거해 타인을 판단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공감으로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 감정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만큼 정서적 반응인 공감 역시 다양한 외부의 영향 아래 놓여있으며, 그렇기에 타인을 향한 우리의 감정이 어디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항상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사 우리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과 고통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아픔과 고통이 객관화되어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을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자기 연민에 불과할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3월 23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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