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9일 (수)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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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칼럼: 의심을 자양분으로 삼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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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3-18 ㅣ No.157

[도서 칼럼] 의심을 자양분으로 삼은 믿음

 

 

교황의 갑작스러운 선종 이후 벌어지는 교황 선거를 그린 가상의 이야기를 담은 어느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추기경단의 단장이 교황 선거를 앞두고 봉헌되는 미사를 집전하며, 준비한 원고 대신 자신의 마음에서 즉흥적으로 우러나온 이야기를 강론으로 전합니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의심하는 교황님을 보내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 바로 그 의심 덕분에 가톨릭 신앙은 계속해서 생명을 얻고, 그로써 전 세계에 영감을 줄 것입니다.”

 

비교종교학 교수인 찰스 킴볼의 저서 《종교가 사악해질 때》는 오늘날 종교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와 함정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종교가 사악해지는 다섯 가지 징후에 대해 다룹니다. 우선 첫 번째 위험신호는 자기들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경전의 오용과 악용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둘째,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종교 지도자가 사람들의 합리적인 의문을 억누를 때 커다란 위험이 생겨납니다. 셋째, 이상적인 시대를 확립하려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물론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종교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입니다. 하지만 이상을 편협하게 정의하고 세상의 흐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식만으로 이루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합니다. 넷째,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종교적 목표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숭고한 목적만을 강조하며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면 이미 타락한 종교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현상입니다. 이는 국제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전쟁뿐만 아니라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짓된 확신을 펼치고 나와 다른 신념이나 성향을 지닌 이들을 향한 혐오를 조장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도 해당됩니다.

 

‘너희와 많은 이들’, 곧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의지를 마음에 새길 때, 우리는 의심을 자양분으로 삼은 믿음을 지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믿음이 우리 신앙의 근간을 이룰 때, 예수님께서 바라는 모습의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일굴 수 있습니다. 《종교가 사악해질 때》에 담긴 오늘날 종교를 향한 날카로운 진단을, 신앙공동체에 몸담은 우리 각자를 향한 진단으로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5년 3월 16일(다해) 사순 제2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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