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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20: 재의 수요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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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20) 재의 수요일에
환경부 소속 국립 생물자원관의 국가생물 다양성센터 자료에 의하면,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동물의 종류는 대략 100만 종이 넘고 식물은 32만 종이 넘는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몸은 부피와 질량을 갖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백질·지방·탄수화물 같은 유기물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물질들은 화학반응에 의해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원소(element)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 100여 가지 원소가 알려져 있으며 이 중 약 25가지가 생명체의 구성 및 생존에 필수적이다.
특히 탄소(C)·산소(O)·수소(H)·질소(N) 등 네 가지 비금속 원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96%나 된다. 이외에도 생명체 몸에는 칼슘(Ca)·칼륨(K)·나트륨(Na)·마그네슘(Mg) 같은 금속 원소가 존재하며 이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거나 중요한 생명현상 기능을 담당한다.
물질적 관점으로만 봤을 때 원소(원자)들의 집합체인 생명체는 죽음에 이르러 또 다른 생명체인 미생물에 의해 다시 개개의 원소로 분해되고 흩어져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원소로 회귀한다. 풀과 나무 같은 식물은 30여 종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을 태우면 탄소(C)·수소(H)·산소(O)·질소(N) 등의 비금속 원소들은 산소와 결합해 기체로 날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금속 원소들과 비금속 원소의 일부는 고체 산화물 형태로 남아 재를 이룬다. 따라서 재의 성분은 주로 산화칼슘(CaO)·산화칼륨(KO)·산화나트륨(NaO)·산화마그네슘(MgO) 등인데, 이들은 모두 염기성이다.
염기성 물질 중 물에 잘 녹는 것을 알칼리(Alkali)라 부르는데 어원은 아랍어에서 왔다. 영어의 정관사 ‘The’에 해당하는 아랍어 정관사가 ‘알(al)’이며 칼리(kali)는 ‘식물을 태우고 남은 재’를 의미한다.
비누가 없던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풀과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를 물에 녹여 빨래할 때 비누로 이용했다. 잿물은 비누와 같은 염기성이라 단백질을 분해하므로 빨랫감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냈기 때문이다. 또 밭에 재를 뿌려주기도 했는데 이는 재의 금속 원소 성분이 작물에 미네랄을 제공하는 천연비료 역할을 하여 생육을 도왔기 때문이다. 또 재의 염기성 성질은 잎과 줄기 및 토양 속 해충 접근을 막아줘 뿌리를 보호하는 천연 농약 역할도 하며 밭작물에 해가 되는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살균 효과도 있다.
죽음과 소멸을 상징하는 재가 이처럼 옷에 묻은 세속의 때를 씻어내어 새로움을 주고 풀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역설적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생명과 죽음은 시작과 끝이 아니라 영원의 연결고리이며 하느님 섭리가 아닐까 싶다.
3월 5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었다. 이날에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에 얹는 재의 예식을 치르며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는 말씀의 뜻을 깨닫도록 해준다. 재의 수요일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참 의미를 되새겨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3월 9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0 11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