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일 (화)
(자) 사순 제4주간 화요일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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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영성: 죽지 않겠다, 죽여라(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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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3-04 ㅣ No.2342

[순교영성 3] 죽지 않겠다, 죽여라

 

 

- 천주교 신자인 데다 주문모 신부를 숨겨준 사실이 드러나 송 마리아가 며느리 신 마리아와 함께 사약을 받고 있다.(탁희성 화백, 절두산 순교성지 제공)

 

 

초대 교회에서 신자들의 교리 입문은 십계 공부로 시작됩니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양성 사람 박점쇠는 십계를 4계와 5계까지 배운 상태에서 체포되었다고 했고, 방성필은 2계와 3계까지 밖에 배우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십계 공부가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신분 낮은 신자들은 글을 몰라 구술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었지요.

 

한 계명마다 수십 가지의 행동 규범이 딸려 있었고, 배운 뒤 문답 시험까지 보아야 했습니다. 김치 가게를 하다가 윤점혜를 통해 입교한 최조이는 십계명을 못 외워 계속 야단을 맞았습니다. 시험에 통과해야 입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5계 ‘살인하지 말라.’는 항목에는 40조항이 넘는 하위 죄목들이 열거됩니다. 여럿 앞에서 남을 욕해 그에게 죽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거나, 속으로 남이 죽거나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살인죄에 속했습니다. 자살을 하거나 자신이 제 몸을 해치는 것도 살인죄의 하위 항목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 1754~1801)의 부인 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마리아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당초 천주교 내부에서조차 두 사람의 입교가 큰 풍파를 몰고 올 것을 염려해 반대가 극심했지요. 하지만 여걸 강완숙이 밀어붙여 밀착 관리 대상으로 두 사람의 입교를 돕고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두 여성은 1801년 3월 12일 주문모 신부님의 자수 직후, 나인 서경의의 고발로 닷새 뒤인 3월 17일에 신부를 숨겨준 죄를 물어 사약을 받습니다. 두 여성은 사약 마시기를 강력하게 거부했습니다. 자살이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십계의 가르침을 어길 수 없어서였지요. 결국 집행관은 그녀들의 입을 강제로 벌려 사약을 먹였습니다. ‘차라리 칼을 맞고 죽을지언정 내 손으로 죽지는 않겠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계명을 어겨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차마 견딜 수 없어서였습니다.

 

뒤에 왕위에 오른 철종은 은언군의 서손(庶孫)이었습니다. 대역 죄인과 천주교 신자 부부의 서손이 국왕에 오를 만큼 조선의 왕계는 이미 심하게 뒤틀려 있었던 셈이지요. 이후 은언군과 부인 송씨 및 며느리 신씨와 관련된 일체의 기록은 왕실에 의해 말소되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왕명조차 계명에 어긋난다고 거부한 그녀들의 죽음에서, 십계 교리에 규정된 수백 가지 죄를 짓지 않으려고 그네들이 어떤 성심으로 살았을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 많은 가르침 중 하나라도 어겨 천국에 못가게 될까 봐 벌벌 떨었고, 죄를 짓고는 고해성사로 죄사함을 얻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십계의 가르침은 어떤 의미입니까? 알지만 지키지 않아도 별 상관없는, 뜨거움을 잃은 조문은 아닌가요?

 

[2025년 3월 2일(다해) 연중 제8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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