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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17: 성 발렌티노 축일과 초콜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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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17) 성 발렌티노 축일과 초콜릿
다가오는 2월 18일은 24절기 중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이다. 입춘(立春)도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기다리지만,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와 적은 일조량은 우수 어린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발생이 2배 이상 증가했는데, 특히 우리나라 우울증 발병률은 2020년 OECD 국가 중 1위였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국민은 100만 명을 넘었다. 이 중 여성은 67만여 명으로 남성 32만여 명의 2배가 넘었다. 이는 여성 호르몬 분비가 남성에 비해 날씨·감정 등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연령별로는 20대가 18만여 명으로 최다(18.6%)였는데, 이는 사회 초년생인 20대가 겪는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를 보여준다.
우울증의 임상적 정의는 ‘한 개인의 사회적·개인 일상사적 활동에 있어 정상적인 기능을 붕괴시키는, 극복하기 힘든 슬픔·절망의 상태’다.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 OECD 국가 중 1위인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과 최근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 자살률의 증가가 이를 증명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불명확하나 보통 사회적·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인체의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정서·수면·기억·식욕조절 등에 관여하며 결핍 시 우울증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해 자신에 대한 가치상실·무기력감·자신감 결여·식욕감퇴·자살 충동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세로토닌이 결핍되지 않게 하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항우울증 약의 원리는 뇌에서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것인데, 단음식이나 초콜릿을 섭취해도 세로토닌의 분비가 증가한다.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에는 신경전달물질인 아난다미드의 분해를 억제하는 물질이 들어있다. 아난다미드는 사람과 돼지를 비롯한 동물의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기분·인식·수면·식욕 등을 자극해 기분을 좋게 해준다. 초콜릿을 먹으면 아난다미드가 서서히 분해되어 기분 좋은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팀은 초콜릿을 먹은 집단이 먹지 않은 집단보다 우울증 증상을 나타낼 확률이 70%나 낮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이는 초콜릿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줄이고 세로토닌의 분비를 도와 우울감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초콜릿 이야기를 할 때면 자연스레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떠오른다. 원래 이날은 로마 시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군사력 강화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금지시켰을 때 비밀리에 혼인 성사를 주례하다 체포되어 순교한 성 발렌티노 사제의 축일이다. 14세기 영국에서 연인들을 위한 축일로 기념되기 시작한 성 발렌티노 축일은 1960년대 일본의 한 제과회사의 상술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변질되었다.
앞으로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주고받기보다는, 성 발렌티노 축일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도록 내 주변에 우울해하거나 홀로 힘들어하는 이는 없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나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했던 도움일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2월 16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0 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