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저는 믿나이다14: 이방인 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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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14) 이방인 선교 예루살렘 교회, 주님 은총 아래 이방인 선교 활발
사도행전 8장은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떠남으로써 복음이 이곳저곳으로 두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인들에게(사도 8,5-40), 베드로 사도는 카이사리아의 이방인들에게(사도 9,32―11,18),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안티오키아에(사도 11,19-26)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복음은 이제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넘어 땅끝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선포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두드러지게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행전 8장 1절에 ‘예루살렘 교회’라며 교회가 처음 지리적으로 한정된 지역 신자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를 향해 뻗은 도로를 따라 도시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들불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는 물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 공동체까지 복음이 선포됐습니다. 서기 49년께 로마에는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유다교 율법을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규칙적으로 기도하며 신앙을 유지하려 했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이에 얽매이지 않았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 사회를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이방인에게 눈을 돌린 것은 선교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교회 구조와 조직, 신학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루살렘 밖에서의 선교는 그리스계 출신 필리포스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는 스테파노와 함께 사도들로부터 일곱 봉사자로 임명된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사마리아 고을로 가서 마술사 시몬을 비롯해 그곳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과 같은 혈통입니다. 할례도 당연히 받고요.
솔로몬 임금이 죽은 후 나라가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쪼개지면서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페르시아 등 제국의 침입을 받아 이민족 문화와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유다인들과 완전히 갈라졌다는 점입니다. 필리포스는 유다인에게 멸시의 대상이던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사마리아까지 와서 확인한 것(사도 8,14-17)으로 보아 필리포스의 선교는 상당한 성과를 보인 듯합니다.
사도행전은 필리포스가 더러운 영을 몰아내고 중풍 병자와 불구자를 치유한 것이 선교에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이에 덧붙여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미 호의적으로 맞이했고(요한 4,39-42 참조), 복음을 전한 이가 그리스계 선교사였기에 호감을 샀을 것이라 해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유다인 사제 계급에 대한 혐오가 대단하던 사마리아인에게 그리스 출신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불신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필리포스는 이어 에티오피아 칸다케 여왕의 내시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줍니다.(사도 8,26-39) 유다인도 아닌 그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으며 돌아가는 마차에서도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고 하니 할례를 받고 유다교로 개종한 자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필리포스는 기세를 몰아 아스돗과 카이사리아에 이르는 여러 고을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8,40)
베드로 사도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세례를 줍니다. 대상은 바로 카이사리아에 주둔하던 로마군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친척, 친구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들을 만나기 전 환시를 봅니다.(사도 10,11-16 참조) 그는 환시를 통해 유다교 정결법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명을 받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코르넬리우스를 만난 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5) 사도행전 저자는 코르넬리우스의 세례를 더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사도 10,45)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에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났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키프로스와 키레네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안티오키아에 사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사도 11장 참조) 키프로스 출신 중 대표 인물이 바르나바와 므나손이고, 키레네 출신으로는 루키오스가 있었죠. 또 사도들에게 임명된 일곱 봉사자 가운데 니콜라오스는 바로 이곳 안티오키아 출신입니다. 이곳에서의 선교 성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οs, 크리스티아노스), ‘그리스도인들’(Χριστιανοι, 크리스티아노이)이라는 말이 새로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마리아에서의 선교 성과를 확인하고자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보냈던 것처럼 안티오키아에 바르나바를 보냅니다. 사도행전은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사도 11,23)며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보고를 대신합니다.
사도행전은 이방인에 대한 복음 선포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 곧 은총으로 주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2월 16일, 리길재 선임기자] 0 1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