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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금쪽같은 내 신앙86: 종말론적 신앙 공동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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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 신앙] (86) 종말론적 신앙 공동체 강한 믿음과 간절한 기다림
한참 ‘신천지’에 대해 연구하고 예방교육을 다닐 때가 있었다. 신천지의 비유풀이나 종말론과 같은 교리도 문제였지만, 모략을 꾸며 사람들을 꾀어 입교시키는 ‘보이스 피싱’식 전도 방법은 충격적이었다. 교회로 돌아온 신천지 탈퇴자들에게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물었다. 교리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그곳 사람들이 자기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고 챙겨준 점, 특히 감추어진 진리를 자기들만 깨달을 수 있도록 선택받았다는 체험이 가장 컸다고 했다.
신흥-유사종교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신도들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다. 이제 곧 도래할 종말을 기다리면서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희망을 함께 나누며 천국과도 같은 행복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이 가톨릭교회로 돌아와 묻는다. 왜 천주교 신자들은 뜨겁지 않나요? 왜 하느님 말씀에 관심이 없고 구원에 확신이 없는가요? 왜 공동체가 무관심하고 차가운가요?
신천지 교인 14만 4000명이 채워지면 종말이 시작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잘못되었지만, 그들의 ‘종말론적 신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그들은 속았지만, 주님의 오심을 향한 그들의 선의의 열망과 기다림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 신앙이 처음부터 종말론적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예수님 복음 선포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였다. 그 나라는 먼 훗날 들어갈 수 있는 내세의 세상만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지금 여기 도래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종말적 다스리심이다. 사도들은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종말론적 공동체를 이루며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들에게 종말이란 먼 훗날 일어날 세상 종말이 아닌 주님과 함께 이미 시작된 시간, 곧 오실 주님께서 완성하실 종말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있는 신앙이었고, 주님께서 죄악과 죽음을 이겨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앙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는 곧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종말론적 신앙과 그에 맞갖은 삶의 방식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신앙은 어떠한가? 곧 도래할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깨어 준비하는 신앙인가?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기 위해 운명을 같이 하고 깊은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종말론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가?
지금 보편 교회는 희년을 지내고 있다. 희년 주제 ‘희망의 순례자들’에 담긴 ‘희망’은 저 옛날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사도들이 간직했던 희망이며 2000년 동안 교회가 간직해 온 희망이다. 그 희망은 우리 안에 살아계시며 활동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에 대한 강한 확신이며, 곧 오실 주님께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다. 그 희망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죽음과 병, 고통과 슬픔, 절망과 좌절, 싸움과 갈등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 생명과 건강, 화해와 일치로써 하느님께서 친히 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 희망이다.
이 종말론적 신앙을 새롭게 하기 위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분 안에서 되살아나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존재(로마 6,4 참조)라는 신원의식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죄와 악을 굴복시키시고 죽음을 극복하시며 불멸의 희망으로 당신 제자들을 격려해주신다는 확신으로 새롭게 무장할 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힘차게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희년을 지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원의식을 새롭게 하고, 주님의 오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2월 16일,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0 8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