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1일 (화)
(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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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수호성인 이야기: 전통 · 첨단 분야에서 전구하는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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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2-10 ㅣ No.2334

[수호성인 이야기] 전통 · 첨단 분야에서 전구하는 수호성인

 

 

잃은 물건을 찾으려는 사람의 수호성인,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축일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12세기 말에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15살 때 아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에 입회했고, 24살 때 사제품을 받았다. 그 이듬해에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한 작은형제회 수도자들의 유해를 보게 된 성인은 자신도 순교자가 되고 싶은 열망에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소망대로 모로코로 파견되었지만 이내 병을 심하게 앓던 성인은 결국 귀향길에 오르게 되었다. 돌아오는 뱃길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잠시 머물던 성인은 마침 아시시에서 열린 작은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포르투갈에서 고행하며 지내던 성인이 하루는 사제 서품식 미사에서 강론을 하게 되었다. 해박한 성경과 교리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열정적인 강론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이를 계기로 성인은 이탈리아의 카타리파 이단 지역과 프랑스의 알비파 이단 지역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았다. 성인이 가는 곳마다 군중은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이단자들은 회개했다.

 

그즈음 작은형제회의 설립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선종했다. 당시 31세이던 성인은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갔고, 잠시 수도회 일을 맡아보다가 설교에 전념하고자 파도바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설교 활동뿐만 아니라 사정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보살피는 데에도 힘쓰던 성인의 기력이 떨어졌다. 36세 때 요양차 파도바를 떠났으나 병이 더욱 심해지는 바람에 파도바로 돌아가는 도중에 선종했다.

 

이례적으로 선종 1년 만에 성인품에 오른 성인은 훗날 교회 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절박한 사람의 절실한 청원을 하느님께 전달하여 응답받게 해주는 기적의 전구자로 알려진 성인답게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기를 바라는 사람의 수호성인으로도 각별한 공경을 받는다.

 

 

교리교사의 수호성인, 성 가롤로 보로메오(축일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는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봉사하려는 열망이 커서 12살 때 성직 입문의 첫 과정인 삭발례를 받았다. 그 뒤 밀라노로 가서 공부했고, 21살 때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해에 성인의 외삼촌이 교황이 되었는데(비오 4세), 평소 조카를 눈여겨보던 새 교황은 이듬해에 22살 난 조카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성인은 트렌토 공의회 기간에 가장 열성적이고 믿음직한 협력자요, 지원자로서 교황을 보필했다. 성인이 24살이던 해에 집안의 장남인 형이 죽었는데, 성인은 가문의 수장 직책을 승계하기를 거부했고, 그 1년 뒤에 더욱 성직자답게 살고자 분발하며 사제품을 받았다.

 

성인은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구성된 공식 교리서 편찬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본당 신부들을 위한 로마 교리서’ 편찬에 깊이 관여했고, 신학교의 혁신, 미사 경본과 성무일도, 교회 음악의 개혁, 교부들의 저서 출간에도 힘을 보탰다. 그리고 27세 때 밀라노 교구장으로 부임해서는 거센 반대 속에서 자객의 총에 맞으면서도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윤리와 생활 태도 개선을 위해, 성직자 양성을 위해,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종교 교육을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애썼다.

 

성인은 가톨릭 개혁 운동의 기수이자 학문과 예술의 수호자로서 늘 겸손하고 거룩하게 처신함으로써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에게 두루 존경받았고, 반대자들로부터도 칭송을 받았다. 또한 교회의 주일학교를 처음 시작한 인물로 알려진 성인은 성직자, 교리교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전파매체 종사자의 수호성인, 성 가브리엘 대천사(축일 9월 29일)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성 미카엘 대천사, 성 라파엘 대선사와 더불어 가톨릭교회가 공경하는 세 분의 대천사 중 한 분이다. 이 대천사는 구약성경에서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의 내용,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영도자’가 오리라는 메시지를 풀이해 준 천사로 알려져 있다(다니 8,15-9,27 참조).

 

이 대천사는 같은 맥락에서 신약성경에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살던 다윗 집안의 요셉의 정혼자 마리아를 찾아가 구세주 잉태를 예고한 천사로 등장한다(루카 1,26-38 참조). 또한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임을 알리며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일러준 천사이기도 하다(마태 1,18-25 참조). 그리고 사제 즈카르야에게 나타나서 구세주를 맞이하는 준비를 할 선구자로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며 희망을 전해주는 역할을 수행한 천사이기도 하다(루카 1,5-25 참조).

 

이처럼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성경에 중요한 인물의 출현을 알려주는 희망의 메신저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중개하며 하느님의 뜻을 사람에게 알려줌으로써 희망을 전달하고, 나아가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까닭에 교회는 20세기 중반부터 성 가브리엘 대천사를 텔레커뮤니케이션(라디오, TV, 전화, 전신, 우편 송달 등) 관련 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인터넷의 수호성인, 세비야의 성 이시도로(축일 4월 4일)

 

성 이시도로는 6세기에 스페인 세비야로 이주한 로마인 귀족 집안에서 4남매 모두 성인품에 오른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성인은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주로 수도원과 세비야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보내며 다양한 학문적, 영성적 소양을 쌓았고, 특별히 라틴어와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큰형의 뒤를 이어 세비야의 대주교가 된 성인은 서고트족을 아리우스주의 이단에서 가톨릭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가톨릭교회를 재건하는 데 기여했다. 이로써 스페인에서는 정립된 전례 원칙을 바탕으로 통일된 양식에 따라서 성무일도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각 교구에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이 설립되었고, 사제들과 주교들은 그 직위와 신분에 따른 의무를 다하게 되었다.

 

한편, 성인은 성경 주석, 신학, 역사, 백과사전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저술했고, 수도 규칙서도 작성했다. 그리고 전 20권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인 ‘어원학’을 엮어서 펴냈다. 또한 그리스어를 비롯하여 의학, 법률 등도 연구하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바쁜 가운데서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보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방 교회의 마지막 교부로 평가되는 성인은 18세기에 교회 학자로 선언되었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인터넷, 그리고 컴퓨터 사용자와 기술자들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을 받는다. 이는 성인의 역작인 ‘어원학’의 형태가 방대한 지식 정보의 수록이며 색인 사용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데이터베이스의 구조와 비슷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추기경직에는 주교급, 사제급, 부제급의 세 품급이 있다. 전에는 평신도가 부제급 추기경에 임명될 수 있었으나, 비오 10세 교황(1903-1914년 재위) 이후 평신도가 추기경에 오른 사례는 없다. 오늘날에는 주로 교황청에서 새로 직책을 받는 성직자가 부제급 추기경에 임명된다.

 

[성모님의 군단, 2024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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