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24-12-22.....대림 제4주일 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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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다해) 미카서 5,1-4ㄱ 히브리 10,5-10 루카 1,39-45 2024. 12. 22. 주제 : 하느님의 선언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축일의 전례를 거행하기 이틀 전에 만나는 대림시기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대림 제4주일에 우리가 첫째 독서로 만난 하느님의 말씀은 오래전부터 사람의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드러내는 미카예언자의 선포였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여러 가지로 태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좋은 의미로 내 귀에 다가온 소리라면 정말로 나에게 그 말대로 일이 일어날 것인지 궁금하게 여길 것이고,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나쁜 의미를 담은 내용이라면 피할 방법이 있는지 물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구별하면, 하느님의 구원이 사람을 향해서 찾아오신다는 오늘 들은 미카예언자의 말씀은 기쁜 내용일까요? 아니면 슬픈 내용일까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기준만 적용될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제로 세상의 일이 현실로 드러나기 전, 그 일이 좋은 일이겠는지 아니면 나쁜 일이겠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로 삽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알고 싶어서 점을 치기도 하고, 미래를 본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해서 내가 들은 얘기가 들은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구원이 사람을 찾아오신다는 예언자의 선언과 그 일은 ‘동정녀의 잉태’라는 놀라운 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사람의 상식과 지혜를 넘는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사람의 세상에 일어날 일을 하느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준비하셨다고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일어날 일이라고 미리부터 말씀하셨으니, 그 일은 분명히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그 모양을 바르게 드러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잘것없다고 보이는 것이 각자의 삶에 위대한 대상으로 바뀌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보잘것없는 것은 그 가치를 드러내기 마련이고, 내가 좋고 충분하다고 여겨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할 것인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아서 나의 삶에 좋은 일이 될 수 있는 일이나 결과들도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삶에서 밀려나는 것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들은 루카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신앙인의 삶에 등장하신 이야기가 아니라, 성모님을 통하여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특별한 모습을 드러내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과 함께였던, 성모님의 방문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태중의 아기가 뛰놀았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방문을 반겼습니다. 우리가 좋은 모습으로, 그리고 좋은 생각으로 그 일을 대한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만,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실 때,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하느님의 방문이 선물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찾아오시는 일을 성탄(聖誕)이라는 표현으로 우리가 기억합니다만, 신앙인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모든 사람이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일이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만, 사람이라는 대상에게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강요하지 못한다는 것이 또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모님의 방문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엘리사벳은 자기의 삶에 일어난 일을 참된 기쁨으로 누리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으로서 얼마나 기쁘게 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일을 기억하여 기념하는 성탄을 준비하면서 진짜로 기쁨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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