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저는 믿나이다5: 사도 시대 신앙을 해치는 이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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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5) 사도 시대 신앙을 해치는 이단들 영지주의 · 금욕주의 등에 맞서 정통 신앙을 지키다
- 그리스도교는 사도 시대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정통 신앙을 위협하는 다양한 이단들과 맞서며 온전한 믿음을 고수해 나갔다. 렘브란트 작 ‘베드로와 바오로의 논쟁’, 1628, 유화,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호주.
지금까지 우리는 가톨릭 신앙에 있어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 믿음에 유익이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는 사도 시대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해 교회에 혼란을 일으켰던 사례들을 신약 성경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는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팔레스티나 지역 밖에서 살던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완전히 다른 문화권, 특히 헬레니즘 문화와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실히 전달했으나 구성원 가운데 몇몇은 교회 가르침과 달리 자기 나름으로 신앙을 변형시켰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유다교와 분리될 수 없다며 그리스도인들도 구원받기 위해선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유다교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도 먹어선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또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은 유다교 율법에 따라 여전히 정한 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기도했습니다.(사도 3,1; 5,21 참조) 당시 유다인들은 그리스도교를 ‘나자렛파’라 부르며 유다교의 새 종파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신약 성경 ‘사도행전’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49년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구원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지며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들이 할례와 율법 준수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합니다.(사도 15장 참조)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역사는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선 이원론적인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영지주의는 2~3세기 고대 교회 안에서 대두되지만 이미 신약 성경이 쓰이던 사도 시대 초대 교회 안에서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원론과 종교 혼합주의를 기반으로 한 영지주의는 플라톤 사상처럼 세상을 선한 영적 세계와 악한 물적 세계로 구분합니다. 이들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정하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지식과 완전한 자유를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자부했습니다.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하고 참된 영적 지혜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육체를 업신여겨 그리스도의 강생도 부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신약 성경 ‘유다 서간’과 ‘베드로의 둘째 서간’은 영지주의를 경고하는 대표적 정경입니다. 이들 두 서간은 영지주의자들을 ‘거짓 교사들’, ‘육욕에 빠진 자’ ‘꿈꾸는 자’ ‘본성만 따르는 짐승 같은 자’ ‘자신만 돌보는 이기주의자’ ‘불평불만꾼’ ‘아첨꾼’이라 비난합니다. 이들이 성령이 아니라 자기 본능에 따라 방탕한 생활을 하는 ‘현세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통 교회에 적대적인 자들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천사들을 모독했습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 곧 영지주의자들을 세 가지 형태로 식별합니다. 첫째, 이들은 불경합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주님께서 드러내 주신 진리와 참된 생활양식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둘째, 이들은 방탕합니다. 불륜을 저지르고 변태적인 육욕에 빠진 자들입니다. 셋째,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기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입니다.(1-4절)
그러면서 유다서는 영지주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 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라.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고 자비를 베풀어라.(20-25절) 세 가지 당부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기본 덕인 ‘믿음·희망·사랑’과 일치합니다.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는 향주삼덕은 모든 윤리의 기초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도록 주신 은총입니다.
영지주의는 오늘날에도 교회의 큰 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영지주의는 하느님과 하느님 은총의 신비든, 하느님의 초월성을 인간이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겨 결국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에 이르게 한다”고 경계했습니다.
또 종말을 고대하던 열심한 신자들 사이에서 극단적 금욕 생활을 조장해 신앙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마르치온은 이미 사도로부터 이어진 정통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신생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은 선하시기에 구약 성경의 공정하고 벌하시는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일 수 없다고 철저히 구분했습니다. 또 극단적 금욕 생활을 실천해 결혼을 거부했습니다.
사도 시대 초대 교회는 이렇게 유다이즘과 영지주의적 이원론, 금욕주의 등에 대항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정통 신앙을 고수해 나갔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2월 8일, 리길재 선임기자] 0 3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