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24-12-01.....대림 제1주일 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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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다해) 예레미야 33,14-16 1테살로니카 3,12-4,2 루카 21,25-28.34-36 2024. 12. 1. 주제 :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오늘은 전례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때라는, 대림시기의 첫째 주일입니다. 세상의 달력을 사용해도 느낌은 같습니다만, 한 해의 첫째 날이라고 해서 어제와 오늘의 사이에 갑작스레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말해도 나이에 맞춰 키가 자라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갖는 지혜가 커지는 것도 아니라서, 한 해의 마지막 날에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고 말하는 새로운 해의 첫날에서 달라지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대로 눈썹이 하얗게 될까 봐 눈을 뜬 상태로 새해를 맞이했다고 자랑해도 어제와 오늘에서 달라진 것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시간에서 1초가 더 지나면, 세상에서는 제야의 보신각의 종을 33번을 친 다음,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앙인의 달력으로서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하는 특별한 날은 한 해의 마지막날이라고 하는 일과 무엇이 달라지겠는지 옳게 말하겠습니까? 오늘 대림절의 첫째 주일에 들은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한 해의 마지막이었다고 전례에서 기억한 지난 주일인, 연중 제34주일에 기념한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읽은 말씀과 성격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새해라고 말하면서 없는 일에도 희망을 말하는 일반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두렵고 안타까운 말씀을 계속하여 기억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들은 것처럼,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겁이 나는 마음으로 시간을 맞이하게 한 것이 한 해의 마지막에 들은 말씀이었는데, 오늘 신앙인의 달력에서 새해의 시작이라고 해도 그 사정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해와 달에는 표정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혼란에 떨 것이라고, 세상의 마지막에 있을 특별한 일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 우리가 미리 알아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세상에 살아있을 때,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 사람이 행동하는 일의 한계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 걸음을 더 나아가, 내가 힘든 일을 겪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일들은 정말로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요? 사람의 삶은 걱정으로 많은 일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하는 지금 하는 걱정은 내가 겪을 문제라기보다는 내 후손과 내가 산 다음에 태어날 세대가 겪어야 할 일이 되기가 쉽습니다. 말로만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드러내야 할 올바른 자세를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힘겨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얼마나 충실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겠습니까? 해석으로 충분한 변화가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다음에는 어떠한 태도로 실천하겠습니까? 내가 충실하게 기도한다면, 예수님과 하느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우리를 위해서 바뀔까요? 그리고 내가 하는 기도는 어떤 표현과 마음을 담아야 하겠습니까? 예레미아 예언자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면서 만났던 상황은 매우 암담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민족의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히브리 민족이 겪었던 일들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 수는 있습니다만, 한 나라의 멸망과 두 번 다시는 희망이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일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놀라우신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면서도 얼마나 암담하고 불행한 현실에 처해 있었는지 예상할 표현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길지 않고 짧던 시대에, 자기의 생애를 넘는 70년쯤 후에 실현될 하느님의 구원이 그 말씀을 듣던 세상의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의 소리가 되었겠습니까? 그리스의 중북부 지녁인, 테살로니카에 흩어져 살던 히브리 백성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히브리민족의 이름으로 세워진 나라가 멸망한 지, 600년쯤이 되었는데, 그렇게 모여 살던 히브리민족의 사람들을 향하여 바오로 사도가 외친 이야기가 얼마나 희망이 담긴 소리가 된다고 여기겠습니까? 사람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는 소리는 내가 오그리면, 손으로 무엇인가를 붙잡는 것과 같은 현실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에게 실현되기를 바라는 희망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일을 실현하시라고 정성으로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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