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ㅣ세계 교회사
[세계] 교회의 역사와 교회의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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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교회의 역사와 교회의 위기 (1)
이 글은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교회사가 후베르트 예딘(Hubert Jedin, 1900~1980) 신부가 1968년 9월 독일 바이에른 방송국 교회 방송에서 행한 강연(제목: 교회의 역사와 교회의 위기 Kirchengeschichte und Kirchenkrise)의 번역이다. 원문은 1969년도 「아헨 교구신문(Aachenerkirchenzeitung)」에 2회에 걸쳐(132~135면, 149~151면) 소개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에 전문위원으로 활약한 예딘 신부는 교회사, 특히 공의회사의 최고 권위자로, 수년 전 그의 『세계공의회사(Kleine Konziliengeschichte)』가 최석우 몬시뇰의 손에 의해 번역되었다(2005년, 분도출판사). 예딘 신부가 이 강연에서 지적하는 전례의 위기, 권위의 위기, 신앙의 위기는 더욱 악화되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안에 널리 ‘조용한 배교’가 진행중임을 탄식하였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일찍이 공의회 이후의 교회가 ‘자기 비판의 단계를 넘어 자기 파멸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하였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개혁’, ‘쇄신’, ‘적응’ 등의 슬로건 속에 신앙의 선조들이 피로써 증언한 신앙의 유산을 자발적으로 짓밟고 가톨릭교회의 프로테스탄트화를 부추겨 온 40년이다. 예딘 교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에게 개혁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제 그 길을 가는 것은 교회와 우리의 책무다’(『세계 공의회사』 뒷표지 설명)고 외친 공의회 신학자이기에, 공의회 이후의 교회 현실에 대한 그의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독자들은 이 글이 공의회가 끝난 지 불과 3년 후에 작성된 것임을 감안하시기 바란다. - 역자 주
교회의 위기 – 정말인가?
가톨릭교회 안의 위기에 대한 말을 해도 되는 걸까요? 어쩌면 반드시 해야만 되는 게 아닐까요? 이 물음에 부정하는 대답을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볼 때 교회 건물에 금간 데가 없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나 트리엔트 공의회를 비롯해 거의 모든 옛날 공의회가 있고 난 뒤와 견주어 이탈이며 분열 운동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저 자신의 경우 이 물음에 긍정의 대답을 합니다. 제 생각으로 우리 교회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맨 먼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으로 전례의 위기가 있습니다. 공의회에서 마련한 전례 개혁이 실제로 이루어지면서 뜨거운 찬성과 함께 거센 반발도 같이 일어났습니다. 대혼란이란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여러분이 일요일 오전에 아무 도시나 본당들을 두루 다녀보시면 가는 교회마다 이른바 미사의 ‘틀’이 다르다는 걸 아시게 될 것입니다. 빠트리는 게 있는가 하면, 이제까지 미사 때 쓰이던 것과는 다른 독서나 복음을 듣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 외국에라도 나가게 된다면 그 나라 말을 할 수 없을 경우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낯선 느낌을 받게 됩니다. 천주께서 정말로 함께 와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의 공통성 없이 치러지는 성찬의 전례를 두고 다 함께 드리는 공동체의 미사란 말을 결코 쓸 수 없습니다. 그 전의 전례에 들어 있는 형식주의며 획일성을 좀 더 느슨하게 늦출 필요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전례 개혁 운동에서 요구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꽤 높은 정도로 실현되기도 한 신자들의 적극적인 미사 참여가 온 세상 교회로 퍼져간다는 것은 몹시 바라마지 않을 일입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실험이 지나쳐서 전례를 무슨 동호회 저녁모임처럼 ‘틀을 짜고’ 있습니다. 이 ‘전례’(Liturgia)라는 게 법도에 맞게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걸 잊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권위의 위기입니다. 이 권위의 위기 원인들로 종국에 닿게 되는 우리 시대정신 속의 원인들에 대해서는 따지고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에서 너무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들로 꼽히는 것이 이른바 기성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란, ‘자유’란 개념을 무정부주의로, ‘민주주의’를 테러로 잘못 쓰는 것 따위입니다. 그 대신 교회생활에서 나타나는 증후들에만 이야기를 한정짓기로 하겠습니다. ‘교회 민주화’란 구호는 좋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그러니까 그 말뜻이 권위를 가진 사람들, 곧 교황과 주교들과 신부들이 전보다 하느님 백성의 말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평신도들과의 만남을 잘 가꾸고 그들과 함께 일하도록 애쓴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렇게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만남과 발언권이 먼저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톨릭에서 벌이는 일은 수난이 되고 맙니다. 그게 바로 ‘민주화’의 올바른 뜻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은 신앙의 선포, 그러니까 올바른 신앙의 전달에 대한 궁극의 책임은 평신도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신학자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로부터 ‘온 세상에 가서 만백성들을 가르쳐라’ 하는 일을 맡은, 바로 그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인 주교님들입니다. 주교님들의 권위와 의무는 바로 그들이 맡은 이 일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위와 의무 어느 것 하나도 민주주의식으로 갈라 나눌 수 없습니다. 지난해(1967년) 9월 로마에서 열린 평신도 대회는 전체 교회 통솔에서 교황에게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면서 분명하게 그 권한을 넘어섰습니다. 해당 주교가 정당한 이유로 교수 임용을 거부한 사람을 대학생들이 억지로 교수로 임용하려고 한다면, 거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교수나 종교를 가르치는 교사의 신앙이 올바른지 결정하는 일을 누가 해야 하겠습니까? 대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일까요, 아니면 자기 일로 맡으면서 권위와 책임을 지고 있는 주교일까요? 공의회에서 신앙의 그릇됨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걸 금지하였다는 말을 이따금씩 듣는데, 그러나 그건 한 마디로 사실이 아닙니다. 공의회 스스로가 교황 요한 23세의 의향에 맞게 신앙의 그릇됨을 일일이 이름을 달아 판단하여 결정하길 피했다는 말은 참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진리의 수호자인 한에서 교회는 필요하다면 그릇된 것들을 판단하여 결정하고 이미 퍼져 있는 그릇된 것들을 교도권과 멀리해야만 합니다.
이제 어느덧 세 번째 위기이면서 가장 심각한 위기인 신앙의 위기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여자 교수 한 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파견한 암살범의 손에 끌려가 살해되었고 그 뒤 어머니와 함께 독일로 피난하였다가 끝내 미국으로 이주한 분인데, 역시 대학교 교수인 그분 남편과 셋이서 자동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던 길에 그 여자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그 끔찍한 세월 동안 내가 매달렸던 단단한 발판이요 내가 딛고 서는 반석은 바로 가톨릭 신앙이요 우리 가톨릭교회였어요. 그런데 이젠 그 모든 게 흔들리고 모든 게 다 미심쩍은 것이 되고 말았답니다.” 높은 지성을 겸비한 이 여교수가 저에게 말했던 것을 독일에 사는 신앙심 굳고 열심인 가톨릭 교인들이 확인해주기도 했습니다. 강론이며 종교수업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신앙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내용을 해체하는 쪽이며 비유며 상징들 속에서 드러나는 해체 모습들인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믿어야 할 것을 뚜렷하게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늘 가톨릭교회의 장점이었습니다. 천주교 교리는 뚜렷하고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천주교 신앙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하는 물음 소리가 자주 들리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불안은 점점 더 퍼져나가서 그렇지 않아도 끔찍한 지경으로 만연된 신앙의 상실을 더욱더 앞당기고 맙니다. 제 강연이 끝난 뒤에 벌어진 토론에서 어느 개신교 신학자 한 사람이 공개적으로 솔직히 말하길, 개신교 신학자인 자신조차도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아주 염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위기에 대해 교회의 역사, 교회의 역사가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들 중에서는 제 물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발하시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도대체 거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 기술면에서나 정신면에서나 다 같이 깊이나 폭에서 급하고 심하게 일어난 변화들로 그와 견줄 만한 예를 찾을 수 없고 그 결과 교회의 역사에서도 해결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사회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사람들의 삶에 일어난 이런 커다란 변화들은 사람이 불을 만들어낸 사건과 비교할 만합니다. (계속)
[교회와 역사, 2024년 10월호, 글 후베르트 예딘 신부(본대학 신학교수) 번역 정종휴 암브로시오(전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0 1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