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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저를 보내주십시오15-16: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이어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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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1-19 ㅣ No.1369

[저를 보내주십시오] (15)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이어돈 신부 (상)


함께 계신 예수님 부르심 따라, 푸른 땅 제주에 뿌리내린 성소

 

 

이어돈 신부(리어던 마이클 조셉·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2011년 제주도에 있는 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이하 이시돌협회) 이사장이 됐다. 1954년 제주도에 내려와 성 이시돌 목장 설립 등 사목을 시작한 고(故) 임피제 신부(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사업 일선에서 은퇴하자 그의 곁을 지키다가 임 신부의 뒤를 이은 것이다. 놀랍게도 첫 제주 방문은 신부가 아닌 수의사이자 선교사로서 했던 이 신부의 유쾌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2회에 걸쳐 들어본다.

 

 

- “나는 예수님께 사랑받은 죄인”이라는 이어돈 신부는 제주도에만 20년 넘게 머물며 특유의 소탈한 모습으로 그 여정을 걸어왔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성 이시돌 피정의 집 앞에 선 이어돈 신부. 박효주 기자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나는 구원받은 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죄인이에요. ‘예수님께 사랑받은 죄인’입니다.”

 

이어돈 신부는 자신을 한껏 낮춰 소개했다. “아까 말과 함께 사진 찍었는데 나도 54년생 말띠”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은 이 신부는 “사제인 건 중요하지 않고 세례받은 게 중요하다. 세례 때 이름인 ‘미카엘’ 대천사를 존경한다”고 전했다. 이 신부에게서 이사장직도, 사제직도 아닌 본연의 모습을 중시하는 소탈한 면모가 엿보였다.

 

“한국엔 세속적인 이유로 왔다”는 이어돈 신부는, 시작은 미미하지만 앞날은 성대해질 것이라는 성경 구절처럼(욥 8,7 참고) 사실 영국에서의 술자리를 계획하다가 한국에 오게 됐다. 수의학과 학생 시절, 런던의 같은 수의학과 학생들과 교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에서 진행되는 외교관 면담 소식을 듣게 되고, 아일랜드에서 영국까지의 교통비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예상에 지원을 준비했다. 이때 추천서를 부탁한 수의학과 학장이 바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학생 출신이었다. 학장은 이 신부에게 한국에 파견돼있던 임피제 신부 이야기를 꺼냈고, 이 신부는 1978년 얼떨결에 한국, 그것도 당시만 해도 외딴섬이었던 제주도에 도착한다.

 

“한국말을 잘 몰랐던 덕분에 제주에 와서야 예수님을 멋쟁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릴 적 유아 세례를 받고 계속 성당에 다녔지만 제주도에 2년 반 머물렀을 때, 그제야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았다. 사실 한국말로 이뤄지는 임 신부의 강론 시간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렇게 지루했다. 그래서 이 신부는 영어로 된 매일미사책의 복음 부분을 계속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나안의 혼인 잔치에 술이 왜 떨어졌을까? 술꾼으로 소문났던 예수님과 제자들, 친구들 때문 아니었을까? 성모님이 예수님께 부탁을 한 것도 그런 아들이 창피해서 그랬던 거 아닐까?’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함께 어울리고 싶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어느 시대이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이 신부는 사제 성소를 고민하게 됐다.

 

 

- 이어돈 신부는 “이 말들처럼 나도 54년생 말띠”라며 수의사답게 능숙하게 성 이시돌 목장의 말들을 살폈다. 박효주 기자

 

 

제주, 내가 있을 곳에 사제로 다시 오다

 

이 신부는 2년 예정으로 왔던 제주도에 정이 들어 2년 반을 머물렀다. “그땐 제주도를 떠나면 다신 못 돌아올 줄 알고 계속 미뤘다”는 이 신부는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 알았으면 땅을 아주 싸게 사놨을 거라는 특유의 농담도 잊지 않았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를 통해 신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을 때 지도 신부가 이 신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 신부는 제주도 가고 싶어서 사제에 지망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우리는 현재 17개국에 사제를 파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을 수 있다”였다. 

 

이 말을 들은 이 신부는 며칠 동안 잠도 못 이뤘다. 하지만 이내 ‘예수님을 위한 길에 조건을 달지 말자’는 결심이 섰다. 한국을 꼭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한국에 오게 됐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이었던 것 같다고.

 

“제주도에 있으면서 지금까지 어려움도 많이 있었지만 어려움 안에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있을 자리라고 여겨졌죠.”

 

제주살이 처음엔 음식도 안 맞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 외롭고 힘들었다. 그러다 차츰 한국말을 배우면서 한국 문화를 더 이해하게 되고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들도 생겼다. 2004년 그토록 그리던 제주도에 사제로 파견된 이어돈 신부. 이시돌협회와 가까이 있는 금악본당 주임신부를 맡으며 임 신부와도 가까이 지내게 됐다. 거동이 불편해진 임 신부의 여러 자리에 동행하며 수행하기도 했다.

 

 

- 2015년 12월 8일 이어돈 신부(가운데)가 금악본당과 이시돌협회에서 제주소년원에 무상으로 우유를 제공하기로 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2009년 4월 21일 독일주교단 초청 소공동체 연수 중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서 (왼쪽부터) 전 교구장 강우일 주교와 인도의 무칼라 주교, 이어돈 신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임 신부님이 저에게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을 도와달라고 하시더니 담당은 본인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알겠다고 하고 그럼 대신 미사 할 때나 고해성사 줄 때마다 돈을 받겠다고 했죠.”

 

임 신부와의 일을 회상한 이 신부는 역시 장난스러운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임 신부는 자리에서 물러난 후 뒤를 이은 이 신부에게 일절 조언이나 개입을 하지 않았다.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한 부분이라고. 이시돌협회가 생긴 초창기에는 임 신부의 사업이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는데 이 신부가 맡고 있는 지금은 한국 산업이 이미 앞질렀다고 느낀다. 그런 이시돌협회에는 또 다른 사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앞서가지 않더라도 갈 데 없는 힘든 사람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고, 그들에게 적법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곳으로 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성 이시돌 피정의 집 성당 안, 고(故) 임피제 신부가 늘 앉아 기도하던 의자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어돈 신부. 박효주 기자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CXj9p0DmRaE?si=dGD065CINNQUVfT3 

 

[가톨릭신문, 2024년 11월 17일, 글 사진 박효주 기자]

 

 

[저를 보내주십시오] (16)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이어돈 신부 (하)


"한 걸음 또 한 걸음, 주님 안에서 배우며 사랑 실천하는 거죠"

 

 

인터뷰 장소였던 초록 들판과 파란 하늘이 펼쳐진 제주도 성 이시돌 목장보다 싱그럽고 활기찬 미소가 인상적인 이어돈 신부(리어던 마이클 조셉·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그 안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았던 이 신부의 다방면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들어봤다.

 

 

우선 하느님을 믿고 나서기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은 하느님 명령으로 고향을 떠날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 것이다. 이어돈 신부는 이와 달리 현대 생활이 계획의 연속임을 우려했다.

 

“고(故) 임피제 신부님도 제주도에서 처음부터 성 이시돌 목장, 복지병원, 피정의 집, 어린이집, 사제관 등 이 모든 걸 하리라고는 생각 못하셨을 거예요. 물론 계획은 있으면 좋은데, 앉아서 3년 후 계획을 얘기하는 일은 없었어요. 사랑은 말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거예요. 어떻게 실천할까 생각하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방법이 생겨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큰일을 성취하게 되는 거죠.”

 

이 신부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일들에서 앞으로의 희망도 본다고. 자신도 처음 한국에 온 이유가 그저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지려다가, 였기 때문이었을까.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라는 성경 구절처럼, 처음부터 너무 원대한 무언가를 찾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시작하는 것, 그러다 보면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의 도우심대로 역사하실 것이라고 이 신부는 믿는다.

 

“누구나 성소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저의 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은 선교사라고 생각합니다.”

 

 

- 2016년 10월 1일 제7차 해외 선교의 날 행사에서 토크에 참여한 이어돈 신부(오른쪽 세 번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선교를 통해 ‘다름’을 배우다

 

“방 2개짜리 집에 신부 두 명이 살았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와서 몇 명이 함께 사냐고 물었어요. 두 명이라고 하니 둘밖에 안 되냐고 놀라더라고요. 자기는 이만한 집에 10명이 함께 살고 있다고요.”

 

1986년 1월 사제 서품을 받고 8월 한국으로 파견된 이 신부는 서울에서 1년 반 정도 빈민 사목을 했다. 한 도시 안에서 누구는 따뜻한 방에서 자고 누구는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후 30년이 훌쩍 넘게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 신부는 “한국에 오래 살아서인지 이제 아일랜드 가면 좀 어색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일랜드에서만 살 때보다 한국에 와서 생각이 많이 넓어지고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됐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는 예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 가장 좋은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신부는 자신의 견해나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반대는 외면하는 성향을 경계한다.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끼리만 모이면 어떠한 틀 안에서만 사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버린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지금도 새로운 걸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어요.”

 

다른 나라를 가게 되면 ‘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이 많아진다. 그 후 고향에 돌아가면 그동안 당연했던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고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신부는 “다양성 안에서 하느님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며 “여러 문화를 통해서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때론 다투기도 해야 서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면 양쪽에서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선교사는 부족할수록 많이 배울 수 있으니 서로의 문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이 신부는 유쾌하게 귀띔했다.

 

 

- 2018년 11월 22일 제30회 아산상을 받은 이시돌협회를 대표해 시상식에 참석한 이어돈 신부(오른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차별 없는 세상에서 웃기

 

“제가 믿는 하느님은 신자 비신자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신자들만을 위해서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다른 종교라고 차별하지 말고 상대방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게 이 신부의 생각이다. 다른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선교 사제가 다른 나라에 갔을 때 그 문화에서는 아무리 이상해 보이더라도 신자들은 ‘그래도 우리 신부님’이라며 인정을 한다. 이것은 차별을 조금씩 없애는 데 효과적이라고. AI가 우리 하는 일을 거의 모두 다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을 받는 요즘, 다른 사람을 자기 도구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세상엔 심각한 일이 많죠. 웃지 못하면 미쳐버릴 수도 있어요.”

 

인터뷰 내내 재치 있는 말로 웃음을 자아낸 이 신부는 “예수님이 옆에 계셨더라면 농담을 많이 걸었을 것”이라며 “위트로 어떤 어려움도 넘어갈 수 있다”고 유머에 대한 철학을 전했다. 어떠한 긴장 속에 있는 관계에서도 농담을 하면 이내 굳었던 얼굴이 얼음 녹듯 풀리며 미소로 바뀐다. 물론 자칫하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농담을 할 땐 조심해야 한다. 또 남들은 웃지만 나 혼자 상처를 받았을 때, 열을 내면 혼자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위트에서는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이 신부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웃음과 농담이라는 부드러운 방법이 더 좋은 선교 방식이라고 여긴다. 이 신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한마디를 들을 차례가 왔다. 장난기로 무장한 이 신부의 앞날은 역시나 하느님과 함께다.

 

“하느님은 앞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는 길을 도와주실 거예요. 하느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말이에요. 뭐, 믿으면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 초록 들판과 파란 하늘이 펼쳐진 제주도 성 이시돌 목장보다 싱그럽고 활기찬 미소가 인상적인 이어돈 신부는 “예수님이 옆에 계셨더라면 농담을 많이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rL9gR9o2bRI?si=Sqwz9Wojcg2dgQEK 

 

[가톨릭신문, 2024년 11월 24일,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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