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 (목)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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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전례력 돋보기: 저회를 위하여 벌어주소서 -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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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1-19 ㅣ No.2562

[전례력 돋보기] “저회를 위하여 벌어주소서.” -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11월은 전례력의 마지막 달이자 바쁘게 달려온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계절입니다.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마무리, 마지막, 그리고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이 11월에 교회는 위령 성월을 지냅니다. 한 달 내내 먼저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리는 시기이지만 11월의 첫날과 둘째 날은 더욱 특별합니다. 바로 ‘모든 성인 대축일’과 ‘위령의 날’을 지내게 되는데, 이 날들을 통해 천국에 있는 성인, 단련을 받는 연옥 영혼, 그리고 아직 지상 여정길을 걷는 우리가 연결되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를 청하는 아름다운 ‘성인들의 통공(通功)’ 교리가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가장 간절하게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에는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순교자 공경에서 성인 공경으로

 

초세기부터 교회는 순교자의 순교일을 마감된 지상의 삶 대신 하늘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탄생일, 곧 천상 탄일(Dies Natalis)로 기념하여 왔습니다. 최초의 순교자 공경에 대한 증언은 156년경으로 추정되는 터키(현, 튀르키예) 스미르나 지역의 주교였던 폴리카르푸스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백부장은 유다인들의 완고함을 알아채고, 폴리카르푸스의 시신을 가운데에 놓고 그들의 관습에 따라 화장하였습니다. 그 뒤 우리는 보석보다 더 귀하고 금보다 더 값진 그의 유골들을 모아 적당한 곳에 묻었습니다. 우리는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가능한 한 그곳에 모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전에 투쟁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순교할 사람들이 단련하고 준비하도록, 그가 순교한 날을 기념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폴리카르푸스,『편지와 순교록』, 18,1-3)

 

스미르나의 신자들은 이교인 관습으로 불태워진 폴리카르푸스의 유해를 특별한 존경과 함께 적당한 곳에 모시고 자주 그곳에 모였으며 특별히 그의 순교일을 기념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순교자 공경은 한 순교자의 무덤 주변에서 시작되어 지역적인 성격을 띄었었지만 점차 순교자가 증가하고 그 명성이 다른 지역에 전파되면서 동서방 교회를 가릴 것 없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순교자들과 그들의 기념일을 기록한 달력이 등장하였고, 순교자의 무덤과 거리가 먼 곳에서도 그를 기리기 위해 유해의 일부를 모시고 공경하는 관습도 생겨났습니다. 나아가 공경하는 이들의 범위도 점차 확대되어 신앙을 지키다 살해 당한 이들 뿐만 아니라 고초를 겪거나 유배를 간 이들도 포함하게 되었고, 박해가 끝나고 순교할 기회가 없어지자 순교자에 부합하는 신심 깊은 이, 곧 위대한 주교나 수도자, 그리고 동정녀, 금욕을 실천하는 이 등 성덕이 뛰어난 신자들도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순교자와 성인 공경은 초대 교회에서 이미 자리잡은 성모님과 사도들의 공경에 더해 신자들의 신심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중 신심을 반영하듯, 보니파시오 4세 교황(재위 608-615)은 609년에 로마 시내의 이교 신전이었던 판테온(Pantheon, 모든 신들의 신전)을 ‘순교자들의 성모 성당(Santa Maria ad Martyres)’이라는 이름으로 성모님과 모든 순교자에게 봉헌하였습니다. 모든 이교신을 기리던 장소에서 이제 모든 성인을 기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 성전 봉헌을 통해 특정한 성인 뿐 아니라 천국의 모든 성인을 함께 기리는 전통이 공식화되었습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레고리오 3세 교황(재위 731-741)이 성 베드로 대성당 내에 모든 성인을 기리는 경당을 봉헌하면서 그 기념일을 11월 1일로 정했고, 이후 그레고리오 4세 교황(재위 827-844)이 이 축일을 서방 교회가 모두 기념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인 대축일은 그 역사가 천년도 넘은 아주 전통 깊은 대축일이며 그만큼 교회가 일찍부터 성인들을 뜨겁게 공경했음을 증언합니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모든 성인 대축일에서 기리는 성인은 천국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모든 이를 말합니다. 이들은 더이상 우리가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이미 천상 행복을 누리는 분들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순교자들은 이미 그들이 겪은 고난으로 인해 완전함에 도달하였기에 더이상 정화가 필요하지 않으며, 우리가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들의 변호인이 된 것이라 가르칩니다.(「설교」 285,5참조)

 

이런 관점에서 모든 성인 대축일의 의미도 분명해집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에 성인들의 공덕을 기리고 칭송하지만 거기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이 축제의 핵심은 그러한 모범적인 믿음의 삶의 결과 행복하게 예수님 결에 머무시는 성인들이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고 일치되어 있음을 기억하는데 있습니다. 나아가 이날은 성인들이 지상의 험난한 나그네 길을 걷는 우리가 각자 겪는 어려움을 잘 받아들이고 천국의 행복에 다다를 수 있도록 우리의 보호자, 변호인, 전구자가 되어 주심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며 더욱 간절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그분들의 기도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와 더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천상의 성인들의 전구와 형제적 배려로 우리의 연약함이 많은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교회헌장」 49항 참조)

 

[월간 빛, 2024년 11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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