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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어떤, 교회: 교회 공간에 대한 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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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 교회 공간에 대한 고민 1
주일이면 1300명 가까이 오는 본당이 비어 있습니다. 보통 평일 9시쯤 집무실에 나와 오후 5시 30분쯤 사제관에 들어갈 때까지 성당은 조용합니다. 평일 오전, 저녁 미사 전과 후를 제외하고는 이 큰 건물에서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죠. 지금 저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성당 안에서 책을 읽다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읽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오네요.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은 마치 대학교 건물 같다. 한적한 시간이나 계절에는 그 넓은 공간이 전부 버려진 채 존재한다는 것이 닮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오후 6시 이후의 대학교 건물은 아주 쓸모없다. 대형 교회나 현대식 사찰은 일요일이 아니면 거의 텅텅 비어 있다. 그래도 종교 건물이 대학 건물보다 나은 건, 종교 건물은 텅텅 비어 있는 시간에도 뭔가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긴다는 거다. 김승일, 『지옥보다 더 아래』
교회는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이기에 작가의 말처럼 비어 있어도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깁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죠. 하지만 교회론에서는 좀 더 본질적인 의미로 교회를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라 말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고, 교회 건물도 어떻게든 하느님 백성이 모여야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어떤 공간이 다목적이든 단일목적이든 그러한 목적을 가진 공간은 그것이 주어진 시간 내에 성취되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지난 후 그 공간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게 되며, 갇혀 있는 동안 우리의 삶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을 수 있다. 승효상, 『빈자의 미학』
교회라는 공간의 목적이 미사 전례 거행과 교리교육(또는 레지오 회합)에만 있다면, 이 공간은 그 목적을 위한 시간 외에는 비어 있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집 안에 머물며 가르치기보다 갈릴래아 호수나 들판에서, 산이나 거리에서 말씀을 많이 하셨죠.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품고 마음 깊이 사랑한 예수, 지난한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낸 예수,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부름받은(ecclesia)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교회인 것이죠. 세상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교회는 세상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성전이라는 공간은 그래야 합니다. 어떠한 장식이나 화려함 없이, 가장 단순한 공간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성전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 공간은 사목적인 측면과 하느님 백성의 친교라는 관점에서 고민하고 배려할 부분도 많습니다. 단순히 부름받은 사람들이 잠시 모여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기도하고 가는 곳이 교회라면, 성전 외에 다른 부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가고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꼭 공간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교회가 부름받은 사람들이 모여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곳인가, 비신자나 지역주민들, 미래세대인 유아들과 청소년들이 친숙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인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통해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인가(도시에 있는 무덤-교구청 내 성직자 묘지 같은)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고민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어느 날 다윗이 주님의 집을 짓겠다고 나탄에게 말하자 꿈에 주님이 나와 다윗에게 전하라 합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적도 없고,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는다고 너희에게 불평한 적도 없다. 그런데 다윗, 네가 내 집을 짓겠다는 말이냐?’ 주님은 성전 건물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어디에나 함께 계시죠. 그래서 교회는 주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진흙탕 같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만을 위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공간이 단순함 안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는 곳, 세상의 묵은 때를 씻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곳, 한편으로 미래세대와 지역주민들, 그리고 지금의 시대를 고민하며 녹여낼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24년 5월호,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성김대건성당 보좌)]
[어떤, 교회] 교회 공간에 대한 고민 2
저는 건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여러 교회를 다녀 본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세상 안에서 ‘벌어먹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빌어먹는 사람’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교회라는 공간이 이러면 어떨까 늘 고민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지난달에 말했던 것처럼, 교회라는 공간에서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성전은 단순해야 합니다. 고딕의 높은 첨탑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미고 화려한 십자가가 걸린 성전보다 저는 빛과 어둠만 존재하는 성전, 아무 장식도 없는 소박한 십자가가 걸린 그런 곳에서 더 깊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내 삶의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죠. 그 세속과의 다름을 인식하기 위한 공간이 성전이고, 적어도 그 공간에서만큼은 하느님을 수식하는 어떤 것도 없이 빛과 어둠, 그것을 감싸고 있는 침묵을 통해 절대자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으로 성전을 제외한 공간은 사목적인 측면과 하느님 백성의 친교라는 관점에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죠. 이왕 교우들의 정성을 모아 많은 비용을 들여 교회를 지을 거면 그 공간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교회 공간에 모이는 하느님 백성들이 어떻게 친교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용인제일교회에 피시방이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게임을 하며 부정적인 세상 문화에 접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교회 친구들과 함께 오픈된 공간에서 게임을 하며 교회 문화에 자연스럽게 친숙해지고 복음에 대한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를 했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같이 게임을 하러 교회에 나오고 그렇게 교회 사역자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해 신앙을 접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교회에는 키즈 카페, 실내 축구장, 편의점도 있습니다. 교회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미용실, 샤워실, 다목적 스튜디오, 개인 연습실, 실내 체육관, 수유실 같은 공간들도 있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며 주중과 주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건축해 다음 세대나 지역주민들 누구나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교회가 되자는 비전을 가지고 건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 교회를 지을 때 건축위원회를 구성한 게 아니라 성신여대 건축학과에 프로젝트를 의뢰해 건축을 진행한 것도 눈에 띕니다. 하느님 백성이 정성을 모아 지은 공간이 하느님 백성의 모임을 위해 어떻게 활용되고 배려되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물론 상업적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교회를 소개하는 여러 매체에서는 교회 신도와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이라 나와 있으니 세상과 똑같이 돈벌이를 위한 그런 공간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교구에도 많은 교회 건물이 있습니다. 공간은 넓은데 교리실마저 부족한 곳도 있고, 넓은 주차장이 있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면 늘 길을 헤매는 곳도 있죠. 성전 안의 기둥들 때문에 사각지대가 생겨 한 공간에 있지만 모니터 화면으로 미사를 참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우들의 고민과 바람이 녹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성당 건축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건축회사의 경험만이 담겨 있는 성당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형성되는 교회의 공간은 좀 더 섬세하고 넓게 바라보며 사목적인 배려와 고민이 담겨 있기를, 그러면서 세속과는 분리되어 하느님을 진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월간 빛, 2024년 6월호,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성김대건성당 보좌)] 0 3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