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성경자료

[신약] 성서의 해: 야고보서 - 실천으로 나아가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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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5 ㅣ No.5023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야고보서 - 실천으로 나아가는 믿음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바오로 서간」이라 일컬어지는 문헌들을 쭉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바오로 사도와 관련이 없는 서간들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오로 서간에 이어서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그리고 유다서가 순서대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 순서는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갈라 2,9)이라는 갈라티아서의 언급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전통은 예부터 이 일곱 편지를 묶어서 「가톨릭 서간」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본래 ‘가톨릭’이란 말은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요, 이 서간들이 바오로의 로마서나 코린토서처럼 어느 특정 지역의 신자들을 위해 쓰였다기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신자들, 즉 보편 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가톨릭 서간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야고보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서간의 발신인과 수신인은 첫 인사말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디아스포라: διασπορά)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야고 1,1). 여기서 언급되는 발신인 야고보는 누구일까요?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세 명의 야고보를 소개합니다: 1) 예수님의 제자로 제배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인 야고보(마르 1,19-20); 2) 예수님의 다른 제자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르 3,18); 3) ‘주님의 형제’로 불리는 야고보(갈라 1,19). 교회 전통은 이 중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서간의 저자로 지목해 왔습니다. 그는 비록 열두 사도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직접 나타나셨고(1코린 15,7) 이후에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이 되어 초대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요한 인물입니다(사도 12,17; 15,13-21; 21,18; 갈라 2,9.12). 그런데 우리가 바오로의 서간들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저자가 자신을 야고보로 소개한다고 해서 이 서간이 반드시 야고보의 작품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의 제자 또는 그를 존경하는 어떤 이가 차명으로 서간을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집필 시기는 기원후 1세기 말경으로 추정됩니다.

 

사실 야고보서는 그 내용과 권위에서 역사적으로 논란이 꽤 있었고, 그래서 비교적 늦게(3-4세기) 경전으로 채택된 편이기도 합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 전통은 복음적인 특성과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는 점, 특히 바오로의 의화(義化) 사상과 반대되는 듯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서간을 평가절하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과거의 평가들이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야고보서가 전하는 가르침의 중요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믿음’과 ‘실천’의 관계일 것입니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2,14-18). 어떤 이들은 이러한 입장이 바오로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된다고 해석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갈라 2,16)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역시 믿음은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고 가르치면서 신앙인들에게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을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권고합니다(참조: 로마 6,12-23; 갈라 5,19-25; 1코린 13장). 다시 말하면 두 가르침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야고보서 저자는 당시 바오로의 의화 사상을 잘못 이해한 자들이 말로만 믿음을 강조하면서 자비를 실천하는 것에는 소홀했던 모습을 강하게 경고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말 그대로 ‘죽은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진정한 믿음에 따른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일상의 삶 속에서 그러한 믿음을 증거하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믿는다’고 말함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믿음을 주술로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느님 말씀의 실천으로, 특히 이웃을 향한 자비와 사랑의 행동으로 그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2020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일 인천주보 3면,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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