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성경자료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야곱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5 ㅣ No.5022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야곱 (1)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뒤를 이은 세 번째 성조(聖祖)이자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이름이 그로부터 비롯된 인물 야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의 탄생부터 말씀드리자면, 그의 어머니 레베카도 할머니 사라와 마찬가지로 불임의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내를 위한 이사악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에사우와 야곱이 태어나게 됩니다(창세 25,21). 이것은 야곱의 탄생이 특별한 사건임과 동시에 생명은 오직 하느님만이 주관하심을 보여줍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이름을 짓는 것이 특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는 일반적으로 기원이나 축복을 담아서 지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에사우는 그 신체적 특성을 따라서, 야곱은 그가 태어날 때 한 행위를 따라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에사우는 피부가 붉고 털이 많은 외모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의 후손들이 자리 잡은 에돔은 붉다는 의미를 지닌 ‘아돔’과, 에돔의 중심 지역인 세이르는 털이 많다는 의미를 지닌 ‘세아르’와 어원이 같습니다. 그리고 에사우의 발을 잡고 태어난 야곱의 이름은 발뒤꿈치를 뜻하는 ‘아케브’와 어원이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쌍둥이를 금기시해서 아이 가운데 하나를 버리거나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잔인한 일이지만, 나이 차가 나지 않는 대등한 관계 사이의 지나친 경쟁으로 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우려가 근거 없지는 않았던지 에사우와 야곱 사이에도 결국 사단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레베카는 야곱을 살리기 위해 친정 오빠 라반에게 피신시키게 되지요.

 

우리말 성경 25,27은 야곱이 온순했다고 합니다. “에사우는 솜씨 좋은 사냥꾼 곧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살았다.” 그런데 야곱이 앞으로 할 일들을 보면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온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탐’인데, 이것은 아랍어 ‘팀’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팀’은 ‘가사 일을 좋아하는’ 정도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야곱과 들에서 사냥하는 일을 좋아하는 에사우와의 대비가 확실해집니다.

 

그런데 비록 야곱과 에사우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 관계에 있었다 해도,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그들 사이의 갈등이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2020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야곱 (2)

 

 

창세기 25,28은 에사우와 야곱 형제의 갈등이 커진 원인이 부모의 편애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악이 에사우를 사랑한 이유가 그가 사냥해 온 고기 때문이라니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레베카가 야곱을 사랑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데, 밖으로만 나도는 큰아들과 달리 항상 곁에 머물며 어머니 일을 도왔기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두 형제의 운명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창세 25,23)을 들은 것이 레베카가 야곱을 편애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3절은 다르게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형과 동생으로 번역한 히브리 단어들은 각각 수와 지위의 영역에서 ‘많은’, ‘위대한’과 ‘적은’, ‘보잘것 없는’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문장 구조 안에서 주어와 목적어도 분명치 않습니다. 즉, 누가 누구를 섬기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비록 하느님의 말씀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일일지라도, 앞으로 레베카는 하느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 장자권을 가로채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전적인 자유가 장자 계승이라는 인간이 정한 질서에 얽매이지 않음과 동시에 인간의 불완전함조차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데 이바지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실 창세기는 아우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을 지속해서 보여줍니다. 카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사악, 형들과 요셉, 므나쎄와 에프라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이것을 하느님께서 고대 근동의 후발 국가이자 약자이던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불의와 억압, 착취의 대상인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우선적인 선택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는 예언은 일반적으로 다윗 임금이 에사우의 후손들인 에돔 민족을 복속시킴으로써 실현된 것으로 이해합니다(2사무 8,12-14).

 

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에돔이 유다를 위협하고, 결국에는 에돔의 후신인 이두매아 출신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장자권을 가로채 형이 된 야곱이 에사우를 다시 만날 때 그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굴한 모습을 보일 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202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야곱 (3)

 

 

에사우가 야곱에게 장자권을 넘기는 일이 일어납니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인 이스라엘의 장자는 자녀들 가운데 특별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가장의 뒤를 이어 한 집안의 으뜸으로 제사와 전쟁 등 모든 대소사의 통솔권과 심지어 가족 구성원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까지 가졌습니다. 유산도 다른 형제들의 두 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록 이스라엘에서 장자 상속제가 기본 제도였지만, 장자가 반드시 출생 순서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비열한 방법을 통해서지만 야곱이 에사우의 장자권을 양도받고 아버지로부터 장자 축복까지 받았으므로 구약성경은 야곱의 집안인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맏아들로 부릅니다(탈출 4,22).

 

오랫동안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은 에사우는 부정적으로, 야곱은 긍정적으로 묘사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 외경 희년서는 야곱은 글쓰기를 배웠지만, 에사우는 일자무식이었으며 상스럽고 사나운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또 창세기 랍바는 33,4의 해설에서 에사우가 야곱을 다시 만났을 때 짐승처럼 야곱의 목에 달려들어 물었지만, 그의 목이 돌로 변하는 바람에 치아를 다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미드라시는 에사우가 태 속에서 먼저 나가게 해주지 않으면 어머니 레베카를 출산 도중 죽게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반면, 중세 유다 전승은 야곱의 얼굴이 하느님의 어좌(御座)에 새겨졌다고 할 정도로 야곱과 에사우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9,13은 하느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셨다’라고 하며, 히브리서 12,16는 에사우를 불륜을 저지른 속된 자라고 부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레베카의 뱃속에서 에사우와 야곱이 싸운 것을 두고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에사우와 야곱은 모두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에사우는 과장하기를 좋아하고,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며, 근시안적입니다. 야곱은 이해타산적이고 몰인정하며 공격적입니다. 굳이 둘을 비교하자면, 야곱이 더 부정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에사우가 청을 하자마자 응답하는 야곱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형이 약해지기를 기다려 장자권을 뺏으려 미리 계획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맹세(이 맹세는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행위입니다)를 시킴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야곱 (4)

 

 

에사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기고 맙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 티그리스강 주변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 누지에서 발굴된 기원전 15세기의 점토판에도 장자권을 양도하거나 파는 것이 가능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성경에서 ‘마카르(판매)’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입니다. 이 단어를 사용한 야곱을 성경의 첫 번째 상인으로 본다면, 그는 턱도 없는 폭리를 취한 악덕 상인입니다.

 

장자권을 가진 야곱은 이제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에게 주어질 복까지 가로챕니다. 야곱의 이름 ‘야아코브’가 속인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코브’와 유사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창세기 27,1의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한다.’라는 표현은 이사악의 시력이 떨어진 것뿐 아니라 판단력이 흐려진 것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때 이사악의 나이가 134세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사악이 에사우에게 고기 요리를 해 달라고 청하는데(창세 27,3-4), 축복을 내릴 때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기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가릿 문서에 한 손에 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든 채 축복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사악은 에사우만 축복하려는데,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아들을 골고루 축복하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사우에 대한 극단적인 편애가 이사악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 같습니다.

 

창세기 27,5-6은 이사악의 아들 에사우와 레베카의 아들 야곱을 구분하여 마치 남남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레베카와 야곱은 이사악을 속이고 에사우에게 돌아갈 복을 가로채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창세기 27,13은 레베카의 야곱에 대한 집착을 보여줍니다. “내 아들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으마.” 그런데 야곱은 장자 축복을 위해서는 어머니가 저 대신 저주를 받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사우는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으로 이사악을 실망하게 하더니(창세 26,34-35), 야곱은 제 성공을 위해 어머니의 안위를 도외시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창세기 27,19부터는 야곱이 어머니의 사기 행각에 마지 못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두 번이나 자신이 에사우라고 속이며 하느님까지 끌어들이는 대범함을 보입니다(창세 27,20). [202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야곱 (5)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창세 27,22) 이사악이 야곱의 목소리를 듣고 의심한 이유는 단순히 목소리 자체가 달랐기 때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야곱이 에사우의 역할을 철저히 준비한 것을 보면, 성대모사까지 연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목소리의 차이를 메우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야곱과 에사우가 이사악에게 말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읽으면 에사우는 이사악에게 최상의 공경을 담아 말하는데, 야곱의 말투는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평소에 아버지에게 하던 말투를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야곱은 의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만 아들을 편애한 것이 아니라, 아들도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사악은 야곱에게 속아 그에게 족장의 지위를 포함한 풍성한 축복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야곱에게 그대로 주어질까요? 복은 이사악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것인데, 하느님마저 거짓말의 도구로 이용한 야곱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관건은 야곱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복을 받을만한 인물로 성장하느냐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미 야곱을 축복한 뒤 늦게서야 찾아온 에사우에게 내린 이사악의 축복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네가 살 곳은 기름진 땅에서 저 위 하늘의 이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면서 네 아우를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뿌리칠 때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떨쳐 버릴 수 있으리라.”(창세 27,39-40) 다수 학자의 의견처럼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저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사우를 위한 이사악의 축복은 다르게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땅의 기름짐이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하늘의 이슬도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칼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네 형제를 섬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떠도는 동안 그 멍에는 네 목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번역에 따르면, 야곱에게 이미 내린 축복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지만, 에사우가 사냥꾼의 일을 계속하며 떠도는 한 야곱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벌써 야곱에게 최대의 복을 빌어주고 만 이사악이 사랑하는 아들 에사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로 보입니다. [2020년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537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