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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럽의 도시와 교회사 이야기: 라벤나(Rav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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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10 ㅣ No.1228

[유럽의 도시와 교회사 이야기] 걸어서 세계 교회사 속으로

 

 

3. 라벤나(Ravenna)

 

이번 달에는 이탈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라벤나로 떠나보자.

 

라벤나교구의 역사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로마제국 역사에 주요 도시로 등장하게 된 것은 4세기부터인데, 이는 로마의 황제들이 정치적 중요성을 잃고(약 300년경), 다른 거주지를 선호하면서, 트리어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비롯해 라벤나를 주목하면서부터이다.

 

서로마의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황제(384~423년)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피난하기 좋은 항구도시 라벤나로 천도를 하였는데, 게르만족의 일부인 동고트족이 라벤나를 침입하면서, 라벤나는 동고트의 왕 테오데리히(Theoderich)에 의해 동고트 왕국의 수도가 된다(489년).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은 울필라스(Uiphilas, Wulfila)인데, 그는 아리우스의 옹호자였던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 주교에 의해 고트족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고트어1)로 된 성경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고트족에게 전한 그리스도교는 아리우스주의2)적인 그리스도교였다. 아리우스주의는 알렉산드리아의 바우칼리스 성당 신부였던 아리우스(260~327년)가 주장한 이단으로 아리우스는 이 이단적 교리를 주장함으로 니케아 공의회에서 단죄를 받았다. 아리우스주의는 다른 게르만 부족에게도 전파되었는데, 동고트족도 아리우스주의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서로마제국 점령 후, 정통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들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동고트 왕국은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에 의해 정통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누스 1세(513~527년)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552년).

 

그렇게 비잔틴 제국의 도시가 된 라벤나는 또다시 롬바르드족(게르만족의 하나)에 의해 점령되는데, 이때 교황 스테파노 2세(752~757년)는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소용이 없게 되자 다시금 프랑크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과 그의 아들 칼 대제는 롬바르드족이 점거했던 지역, 즉 라벤나를 포함한 중부 이탈리아의 모든 영토를 교황에게 에계 증여할 것을 약속하고는 이를 실현시키게 된다.

 

이리하여 마침내 교황령(敎皇領)이 탄생되었고, 라벤나는 그때부터 로마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인 영역이 되고 만다. 교황령은 1929년 2월 11일 ‘라테란 조약’에 의해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으며, 교황청은 현재의 바티칸 시국 영역으로 축소가 된다.

 

언제부터 이탈리아의 유명 성당들이 입장료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라벤나에는 티켓 한 장으로 다섯 군데의 명소를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인류문화유산 중 다섯 군데 명소를 나열해보자면, 성 비탈리스 성당(Basilica di S. Vitale, 526~547년)과 성 아폴리나리스 신 성당(Basilica di S. Apollinare Nuovo, 504년), 그리고 대주교 박물관과 경당(Museo e Cappella Arcivescovile), 네온 세례경당(Battistero Neoniano, 430년), 갈라 플라치디아 묘(Mausoleo di Galla Placidia, 430년) 등이 있다.

 

라벤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성 비탈리스 성당3)은 동고트 왕국 지배 아래 있던 527년,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건립하여, 막시밀리아누스 주교 때 완공(548년)되었는데, 팔각형으로 된 이 성당은 천장화만 빼놓고 거의 다 모자이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의 양식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성당인 이곳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세르기오스 성당과 성 바코스 성당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또한 칼 대제의 아헨왕궁 경당도 이 성당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며, 피렌체의 유명한 대성당의 돔도 이 성당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와 동고트족, 그리고 비잔틴 문화가 융합된 라벤나의 건축물들은 외관은 비록 간소하고 검소하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다양한 모자이크를 이용한 장식물들이 있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거리의 도로명판도 모자이크로 되어 있다.

 

대주교 경당은 6세기 초부터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주교들이 이용한 개인 기도실이었다. 494년부터 519년까지 라벤나의 주교로 있었던 베드로 2세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이 건축물의 중요성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초기 그리스도교 개인 기도실이었다는 사실에 두고 있으며, 그 성화상학(聖畫像學)4)은 아리우스주의에 강하게 반대하는 상징주의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라벤나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네온 세례경당은 라벤나의 다른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내부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우르수스 주교(재위 399~426년)가 건립을 시작했는데, 경당 이름은 네온 주교(재위 450~473년)의 이름을 딴 것으로 모자이크 작업이 그의 재위기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세례경당과 견줄만한 것이 바로 아리우스파 세례경당(Battistero degli Ariani)이다. 아리우스파 세례경당은 5세기 말 테오데리히가 그의 통치를 강화하고 아리우스적인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인 왕궁의 종교로 만들면서 건립한 것이다.

 

이 두 세례경당의 천장화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놓았는데 비잔틴 예술에선 드물게 예수님의 모습을 나체로 적나라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에 아리우스적인 그리스도교 영향을 받은 것으로(고대문헌에 따르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비교할 수 있는 예가 없어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두 그림 모두 예수님 머리에 후광을 그려놓은 점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려 했고, 예수님의 나체를 그린 점으로 보아선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든다.

 

그리고 또 다른 성 아폴리나리스 성당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는 ‘in Classe’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이 별칭은 당시 라벤나 항구에 있는 고대 로마의 도시 ‘Civitas Classis’(함대의 도시)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아폴리나리스 성당은 우르시치누스 주교가 건축을 시작해서 막시미아누스 주교에 의해 축성되었고(549년), 초대 주교인 성 아폴리나리스의 무덤 위에 세워졌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유해는 9세기 중반 신(nouvo)교회로 옮겨졌다.

 

그밖에도 테오데리히 왕의 묘(Mausoleo di Teodorico, 520년)와 동시대 건축물 중 모자이크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갈라 플라치디아의 묘(Mausoleo di Gallal Flacidia, 43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이며 콘스탄티누스 3세의 황후)도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다. 또한 카말돌리의 베네딕토 수도회를 세운 성 로무알도가 라벤나 출신이라는 점과 ‘신곡(新曲)’으로 유명한 단테의 묘도 라벤나에 있다는 점 등을 미리 알고 가면 더 좋을 듯 싶다.

 

1) 고트어(Gothic language) : 인도 · 유럽어족인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언어로 4,5세기경 유럽의 많은 지역과 아프리카 북해안에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며 그 후 사멸하여 현존하지는 않는다.

 

2) 아리우스주의(Arianism)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Arius)적 신학사상을 말한다.

 

3) 성 비탈리스 성당 : 라벤나의 수호성인. 성 비탈리스가 순교한 장소에 세워진 성당.

 

4) 성화상학(聖畫像學, Iconography) : 성화상을 해석하는 학문. 일명 도성학이라고도 함.

 

[외침, 2020년 3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황치현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세계교회사, 라틴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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