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덕의 스승 우리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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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02 ㅣ No.698

[레지오 영성] 성덕의 스승 우리의 어머니

 

 

10년도 더 된 한 사건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하루 피정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옆자리에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성무일도를 바치기 시작했는데 그분이 제 기도서를 흘깃흘깃 보더니 제가 기도를 끝내자 말을 걸어왔습니다. “선생님, 성당에 나가십니까?” “예!”

 

제가 성당에 다닌다고 하자 자기는 개신교에 다닌다며, 그렇게 그분과 본의 아니게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라고 스스로 밝힌 그분이 귀찮게 말을 계속 붙이는 바람에 묵주기도를 바치고 잠을 좀 자려던 계획이 무산되었습니다.

 

그분은 신학적인 토론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너무 귀찮아서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성경에 관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신구약을 넘나들면서, 기어이 성모님께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공격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서론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성모님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성모님을 “여인이여!”라고 부른 대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생활 중에 성모님이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 12, 48)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모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성모님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올바르게 실천한 분이라고 처음으로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첫 반응을 보이자 그분은 침을 튀기면서 성모님이 중요한 분이 아니라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복음서에 있다는 것입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요한 6, 63)라는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육체만을 낳은 성모님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수님,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낳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이제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육적인 예수님과 영적인 예수님 두 분이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선생님도 육체를 가진 선생님과 영혼을 가진 선생님 두 분입니까? 우리가 정신분열자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 인격이 육체의 인격과 영혼의 인격으로 분열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인격이 하나입니다. 한 사람 안에 영혼도 있고 육신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도 정신분열자가 아닌 이상 육적인 예수님과 영적인 예수님, 두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육적인 예수님이든지, 영적인 예수님이든지, 예수님은 같은 한 분입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성모님이 육적인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칩시다. 이 육적인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선생님의 육신을 낳은 선생님의 어머니도 선생님의 진짜 어머니가 아닙니까? 선생님 영혼을 낳은 어머니가 따로 있습니까?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실 필요 없이, 성모님이 예수님을 낳았다면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닙니까?”

 

이때부터 그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 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성모님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데, 참 딱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고,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면 누가 있겠습니까? 천국에는 예수님이 왕이시고, 그 왕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계실 것입니다. 그럼, 성모님을 싫어하는 선생님께서 천국에 가서 어떡하실 작정입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마디 더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성모님을 싫어하다가 천국에 가서 천국의 대왕대비마마와 같은 성모님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민망하고 껄끄럽겠습니까? 아마 천국에서 살기 힘들 것입니다. 천국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분은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마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습니다. 우리의 진짜 어머니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직통으로 예수님께 인도하시는 성모님을 모른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가 성모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온종일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묵주기도야말로 성모님을 찬미하는 가장 쉽고 올바른 방법

 

저는 어릴 때부터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왔습니다. 어떤 때에는 습관적으로, 또 어떤 때에는 졸면서 바치지만 매일 바칩니다. 이렇게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묵주기도야말로 성모님을 찬미하는 가장 쉽고 올바른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묵주기도 5단을 바치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고 적어도 성모님을 50번 찬미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모님을 찬미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은혜롭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환희의 신비부터 우리는 성모님의 생애를 하나씩 바라보면서 성모님이야말로 우리 성덕의 스승이요 모범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모님께서 일생 걸어가신 그 길이 바로 예수님 그리고 교회와 일치한 성덕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성덕의 길을 “사랑의 무(無, 케노시스Kenosis)”라고 부릅니다. 이 “사랑의 무”를 살도록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것이 제가 바치는 묵주기도입니다. 이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8월호, 권지호 프란치스코 신부(부산교구 총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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