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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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노동 - 사회교리로 보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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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02 ㅣ No.2534

사회교리 : 노동 (2) 사회교리로 보는 노동

 

 

노동의 객관적 주관적 의미

 

노동에는 객관적 차원의 의미와 주관적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객관적 차원에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땅을 다스리고 무언가를 만들어 왔습니다. 활동과 자원, 도구와 기술을 집약해 오늘날 물질문명이 이룩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성과 뒤에는 노동하는 한 명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도구나 기계가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기에 노동에도 주관적 차원이 중시됩니다. 이 주관성은 노동에 특별한 존엄을 부여합니다. 아무리 엄청난 성과가 달성되어도, 정작 노동하는 개인이 비인격적인 생산 도구 취급을 받는다면 하느님께서 이를 기뻐하시지 않을 터입니다. 그러니 노동의 주관적 차원은 객관적 차원에 우선해야 합니다.

 

 

노동할 권리

 

노동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합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재산권을 가지며 가정을 유지합니다. 노동을 통해 인류의 문명이 발전되므로 결국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인류 가족의 공동선에 이바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회교리는 실업 문제를 염려합니다.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에게 실업은 사회적 재앙이 됩니다. 정의와 공동선을 지향하는 경제 체제라면 무엇보다 “완전 고용”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국가에는 적극적인 고용 정책을 증진할 의무가 요구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백주년」에서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의 대가로 빵을 얻을 의무는 동시에 그렇게 할 권리를 전제한다. 이러한 권리가 체계적으로 부정되며, 경제 정책의 결정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합당한 조건들을 달성하도록 해주지 못하게 하는 사회는 윤리에 합당하다고 인정될 수 없으며 사회적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43항)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불행히도 물질적 가치를 최상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사회교리의 가르침은 헛된 이상론으로만 맴돌고 있습니다. 재물이 사람보다 앞서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고, 노동의 주관적 의미 역시 격하됩니다. 세상의 주인은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노동은 객관적 가치의 크고 적음과는 별도로, 개인의 본질적인 표현이며, ‘인격적인 행위’(actus personae)이다.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 도구, 물질적 가치만을 지닌 단순한 노동력으로 격하시키려는 모든 경제적 신조나 물질주의는 노동의 본질을 왜곡할뿐더러 노동에서 그것의 가장 숭고하고 근본적인 인간적 합목적성을 빼앗게 될 것이다.”(교황청 정의평화협의회, 「간추린 사회교리」, 271항)

 

[2020년 8월 2일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5면,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수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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