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30일 (수)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가톨릭 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80: 노동 에피소드 1편 - 신부님, 거기 왜 가세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26 ㅣ No.2532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80. 노동 에피소드 1편 - "신부님, 거기 왜 가세요?”(「간추린 사회교리」 208항)


노동 약자 위한 연대, 이웃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도심 한복판 노상에서 천막을 치고 머리에 띠를 매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수막에는 생존권, 단결, 투쟁 등의 글자가 써 있고, 주변에는 경찰들이 삼엄하게 서 있습니다. 저도 그 광경이 낯설었습니다. 노동사목위원회에 오기 전까지 말이죠. 그러나 소임을 맡고 나서 그런 현장에 종종 갑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거기에 왜 가세요?”(이주형 신부 ‘노동쟁의 현장을 다녀와서’ 중)

 

 

노동현장, 일상 속 낯선 풍경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는 과거 1980~1990년대 서울 명동을 시작으로 구로, 창동, 시흥동 일대에서 노동상담소를 운영했고, 임금체불과 같은 노무(勞務)관련 사목을 했습니다. 또한 1998년 IMF 당시 고용안정을 위한 취업지원 사목도 했습니다. 고용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직접적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도 많고 노무법인과 노무사들도 많아 위원회의 일을 덜었습니다. 노동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노동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해고와 실업, 갈등과 노사쟁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장은 그런 갈등이 분출되는 곳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KTX여승무원 대량해고사태, 삼성 백혈병 사망자들, 쌍용자동차 사태, 콜트콜텍 기타 악기 노동자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과 대학의 환경미화 노동자를 비롯해서 많은 노동쟁의 현장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꽉 막힌 방송현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생을 마감한 tvN 이한빛 피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억울한 사고를 당한 김용균 형제, 병원 간호사들의 어려움을 드러낸 박진욱 간호사와 서지연 간호사 등등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노동 현안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노동 문제들

 

쟁의가 벌어지는 곳이나 극단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넓은 시각에서 노동 관련 문제는 매우 많습니다. 불안한 일자리인 비정규직의 급증,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에서 보았듯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점차 증가하는 해고와 실업사태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과로로 쓰러지는 택배기사들과 우체국 집배원들을 포함해 여전히 한해 2000명이 일터에서 숨지는 현실, 청년들의 극악한 취업난,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와 빈곤도 노동문제와 연관된 현장입니다.

 

또한 매해 반복되는 최저임금 문제, 청소년 노동인권 문제, 급증하는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도 하나의 현장입니다. 현장이 장소가 아니라 사안인 셈입니다. 나아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의 증가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를 두려움은 미래의 고용현장 전체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런 문제와 무관하신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상관이 있습니다. 80만 명이 넘은 취준생들, 120만 명이 넘어 버린 실업자들과 600만의 영세 자영업자들, 10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에게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크고 작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들은 인간존엄의 상실, 인간소외, 비(非)구원의 상태를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현장이란 사안을 파악했을 때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절실하게 도움을 외치는 곳이자 누군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 가장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2018년 8월 서울 정동 쌍용자동차 고(故) 김주중 조합원 시민분향소 앞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미사는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문제의 해결과 희생자 추모를 위해 기도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현장 속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

 

몇해 전 대학교 환경미화원들이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농성하는 곳을 찾았을 때, 30~40여 분의 연로한 노동자들이 농성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제게 오시며, “신부님, 저 세실리아에요! 저희 좀 도와주세요! 빨리 문제가 해결돼 성당 가서 미사 드리고 싶어요!”라고 울먹이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입으신 노동조합 조끼가 참으로 어색해 보였습니다.

 

부당해고가 억울해 농성에 참여했지만 고령의 나이에 노숙과 컵라면으로 이어가는 농성이 고단한 나머지 사제인 제게 하소연을 하신 것이죠. 현장에는 투쟁에 이력이 난 활동가, 타협조차 거부하는 강성 인사부터 인권에 기민한 감수성을 갖은 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와 제도의 허점, “어쩔 수 없잖아”라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그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들이었습니다. 현장은 상처 받은 이들이 모인 곳이자 우리 사회의 상처였습니다.

 

“사랑 받아야 할 이웃은 사회 안에 있으며, 따라서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궁핍하고 곤궁한 이웃을 도와 주는 것은 개인 간의 관계라는 단순한 차원과는 다른 무엇을 의미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08항)

 

[가톨릭신문, 2020년 7월 26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66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