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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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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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08 ㅣ No.733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나를 감동시킨 한 점의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선택하겠다.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같은 작품인데 다른 느낌을 받는 데에는 감상자의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미술작품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보다는 양식사적 분석 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피렌체 대성당 부속 박물관이 2015년 10월 문을 열기 한두 해 전 박물관 측은 일부 작품을 공개하는 형태로 문을 연 적이 있었다. 그때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전시관 중앙에 임시로 세워져 있었으나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그런지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새롭게 단장한 박물관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라성 같은 피렌체 작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대형 벽면이다. 고리타분한 박물관이 아니라 모던한 느낌의 미술관으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1550년 피렌체에서 출판된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 소개된 주옥 같은 200여 명 작가의 전기 덕에 우리는 르네상스 작가들에 대해 그 어느 시대보다 소상히 알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을 이 벽에서 볼 수 있었다. 바사리의 이 명저는 2018년과 2019년 국내에서 총 6권 4000쪽이라는 방대한 책으로 한길사에서 출판되었고 나는 이 책에 해설을 썼기에 감회가 더하였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시대별, 장소별, 작가별로 최상의 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치되었다. 덕분에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아르놀포 디 캄비오, 안드레아 피사노 같은 고딕 거장들의 작품들도 집중하여 감상할 수 있었다. 이들 작품에 빠져있던 나는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서는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하였다. 예술가의 영혼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성녀 중 하나다.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에 특별히 많이 그려졌는데 이유는 화가들이 이 성녀를 간음하다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여인과 동일시하는 바람에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즐겨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 중심 사상이 솔솔 피어나다 보니 이런 세속미를 풍기는 여인상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물론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경 어디에도 그녀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였다는 근거가 없었으니 화가들은 잘못된 정보를 그림으로 그린 셈이다.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추의 미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 아니라 참회에 깊이 빠져 넋을 잃은 듯한 늙은 여인이다. 작품의 높이는 183cm이니 실제 인물처럼 느껴진다. 비쩍 마른 얼굴, 주름투성이의 목, 퀭한 눈, 나무토막 같은 몸, 게다가 맨발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인데 두 손이 살짝 떨어져 있어 기가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긴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금발이 아니라 야생인간인 듯 헝클어진 채 치렁치렁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짐승 털옷과 머리카락은 경계가 없어 무엇이 머리카락이고 무엇이 털옷인지 알 수가 없다. 막달레나를 이처럼 짐승 털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은 그녀가 말년에 프랑스의 어느 외딴 섬으로 가서 은둔하며 참회의 삶을 살았다는 전설에 기인한다. 작가는 그 설에 따라 성녀가 이처럼 처절하게 참회의 기도를 바치며 늙어간 여인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도나텔로는 평생 하느님 작업에 몸을 바친 70대 노대가였다. 그는 피렌체 대성당을 위해 참으로 많은 걸작을 남겼고, 시에나 대성당, 파도바 대성당에도 그 지역 역사를 바꿀 조각작품들을 제작함으로써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시킨 주인공이다. 평생 일한 작가로서 성녀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요, 구원에 대한 작가 자신의 갈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도나텔로는 이 작품에서 극적인 자연주의, 완전한 리얼리즘에 도달했다. 이 무렵 피렌체 작가들은 고딕 미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체의 아름다움을 미화시키는 장식적인 형태를 즐겨 표현하였는데 도나텔로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집중하였다. 이 작품이 놓인 곳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린다면 바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보이게 되어 있다. 도나텔로가 있어 미켈란젤로가 존재함을 디스플레이를 통해 암시한 것이다.

 

이 작품은 도나텔로가 70대인 1455년에 제작되었다. 작품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당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이런 추한 외모를 조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당시의 피렌체 시민들은 일흔이 넘은 노대가의 걸작을 단번에 알아보았던 것 같다. 이 작품과 유사한 모작들이 제작되기 시작했고, 피렌체를 침략하기 위해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적군의 대장인 프랑스의 왕 샤를 8세가 이 작품을 구입하고자 시도했다니 말이다. 만일 프랑스 왕이 그 때 이 작품을 구입했다면 이 걸작은 피렌체가 아니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젊은 시절 몇몇 작품을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으나 이후에는 아름답게 미화시킨 형태가 전무하다. 그는 일관성 있게 추의 미학을 추구했다. 바로 도나텔로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미켈란젤로를 탄생시킨 걸작이 바로 도나텔로의 이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평신도, 2020년 여름(계간 68호),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 미술사학자)]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d/donatell/3_late/various/3magda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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