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대전교구 삽티성지 옥외 제대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3 ㅣ No.727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 대전교구 삽티성지 옥외 제대]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제대는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생명의 물이 솟아 나오는 바위,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날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바쳐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다. 그래서 한번 축성한 제대는 중요하며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황석두 루카 성인의 안장지, 삽티

 

대전교구 하부내포성지(담당 맹세영 신부)는 성 다블뤼 주교의 주 사목지이자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많은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지역이다. 지금의 충남 보령시와 청양군, 서천군, 부여군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2007년부터 세상에 그 존재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황석두 루카 성인의 안장지인 삽티성지가 있다.

 

‘삽티’(揷峙, 삽고개)는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2리의 계곡에서 내산면 금지2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당시 삽티는 황석두 성인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황기원 안드레아와 황천일 요한이 주도하여 교우들이 모여 살던 교우촌이었다. 황석두 성인도 가끔 찾아와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시고 격려하였다.

 

그러던 1866년 3월 30일 보병 갈매못에서는 다섯 명의 성인이 순교한다. 그들의 머리는 사흘 동안 장깃대에 매달렸다가 그 몸과 함께 아무렇게나 모래밭에 묻혔다. 그 가운데 황석두 성인의 시신은 그 가족이 거두어 삽티에 안장하였다. 그 뒤 성인의 시신을 묻었던 황천일과 황기원이 순교해 정확한 안장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성인의 시신이 삽티에 안장된 사실은 1922년 시복 법정에서 성인의 종손녀 황 마르타가 증언하였고, 1964년 삽티에서 박해 시대에 매장되었던 성물이 발굴되자 교회사가들은 이곳을 성인의 시신이 안장된 지점으로 추정했다.

 

삽티성지는 성인의 유해가 묻혔던 바로 그 자리가 아닌 성물 발굴지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조성되었다. 2016년에는 삽티성지의 기념 경당인 ‘성석당’이 봉헌되었고, 성인의 안장 기념일인 5월 29일에는 해마다 현양 미사가 봉헌된다. 그리고 성인의 빈 무덤 위에는 대전교구 역사를 온전히 간직한 화강석 옥외 제대가 놓여 있다.

 

 

주교좌성당에서 성지에 오기까지

 

삽티성지의 옥외 제대는 1933년부터 20여 년 동안 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성당의 중앙 제대였다. 거룩하게 축성된 이 제대에서는 그동안 제2대 교구장 황민성 베드로 주교를 비롯해 대전교구 역대 주교들의 착좌식과 대전교구의 사제 서품식이 열렸다. 또 수많은 견진성사 등 교구의 공식 전례가 이 제대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던 제대는 1936년 내부 공사를 하면서 더 커다란 제대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전 시내 작은 성당으로 이전된 이 제대는 10여 년 동안 미사성제가 봉헌되며 신자들에게 은총을 베풀었다. 이윽고 제대는 다시 새 제대에 밀려 18년 동안 성당 화단의 조경석으로 ‘모퉁이의 버려진 돌’처럼 놓였다.

 

이 제대를 황석두 성인의 빈 무덤 자리에 옮겨 와 거룩한 은총의 도구로 만든 이는 2016년 당시 삽티성지 담당 윤종관 가브리엘 신부(원로 사목자)다. “교구의 역사를 함께했고 거룩하게 축성한 제대가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그 돌’처럼 방치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제대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그리스도의 몸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죠. 성인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우리 교회와 지킬 걸 지키지 못하며 살아가는 오늘 신앙인들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거룩함을 지키지 못한 것을 통탄한 윤 신부는 그 의미를 잊지 말자며 제대의 이력을 돌에 새겨 제대 앞에 놓았다.

 

가로 221cm, 세로 90cm, 높이 23cm 크기의 상석은 뒤집힌 채 놓여 있다. 오랫동안 방치되다 보니 본디 윗면이 훼손되고 세월의 흔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제대석 아랫면을 보면 모퉁이에 새긴 십자가가 아직도 고고한 자태로 남아 있다. 다섯 개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가로 55cm, 세로 83cm, 높이 76㎝의 받침돌에는 성지의 상징인 금빛 십자가를 새겼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그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2-23). 성경 말씀처럼 삽티성지의 옥외 제대는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황석두 루카 성인의 믿음과 삶, 그리고 그리스도 자체이며 성당의 중심인 거룩한 제대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운다.

 

[경향잡지, 2020년 5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46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