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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7: 시바의 여왕, 커피로 솔로몬을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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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3 ㅣ No.579

[사유하는 커피] (7) 시바의 여왕, 커피로 솔로몬을 홀리다


부부의 연 맺게 해준 사랑의 묘약

 

 

‘독서광’으로 소문난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1813년 정치적 경쟁자이던 토머스 제퍼슨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편지에서 성경의 잠재력을 은유했다. 그는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이다. 세상의 모든 도서관보다 더 많이 나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적었다.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은근히 뽐내면서도 성경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

 

한 권의 성경에 담긴 콘텐츠가 수만 권의 책을 능가하는 것이 놀랍다. 그 비결을 비유와 상징이라는 표현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성경의 한 구절은 다양한 추정과 해석을 자극하며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가 기원전 540년경에 쓰인 열왕기 상권 10장이다. 에티오피아 남부와 예멘에 걸쳐 형성됐던 것으로 보이는 시바(Sheba)지역을 지배하던 여왕이 솔로몬 왕을 알현한 사연이 그려진다. 시바의 여왕은 유다교의 경전, 쿠란(이슬람 경전), 에티오피아 역사서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1959년에는 율 브리너와 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의 영화 ‘솔로몬과 시바’로도 개봉돼 유명세를 탔다.

 

시바의 여왕은 오랫동안 가상 인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악숨에서 고대도시 유적이 발굴돼 유네스코로부터 1980년 세계유산에 선정되면서 성경의 묘사는 역사가 됐다. 시바의 여왕은 마케다(Makeda)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얻었으며, 재담꾼들의 공상쯤으로 여기던 온갖 이야기들이 사실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열왕기가 다룬 내용은 싱겁게 보이기도 한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까다로운 문제를 들고 예루살렘을 찾았다. 솔로몬이 모든 문제를 막힘없이 풀어내자, 여왕은 그를 찬미하며 엄청난 향료와 보석을 선물했다. 이에 솔로몬도 여왕이 청하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게 전부이다.

 

반면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들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에티오피아 건국 신화의 토대가 열왕기이다. 솔로몬은 여왕의 미모에 매료돼 묘책을 썼다. 자신의 허락 없이 행동하면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해 허락을 받았다. 솔로몬은 저녁 식사에 향신료를 많이 넣도록 하고 잠자는 여왕을 몰래 지켜봤다. 여왕이 목이 말라 잠결에 물을 마시는 찰나에 나타나 자신의 허락 없이 물을 마셨으니 청을 들어줘야 한다고 우겼다. 그날 밤 둘 사이에 남자아이가 잉태됐는데, 그가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인 메넬리크(Menelik) 1세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솔로몬의 피가 흐른다고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여왕 측 사람들의 목격담은 이와 다르다. 자신의 땅을 공격하려는 솔로몬을 달래기 위해 먼저 계책을 꾸몄다. 여왕이 매혹적인 커피의 향미를 이용해 솔로몬을 유혹해 아들을 회임했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로 인해 커피는 ‘인류 최초의 최음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카페인은 실제 신경전달물질과 화학구조가 유사해 뇌에 직접 작용하는 향정신성 물질이다. 다윗과 솔로몬 부자가 각각 아비게일과 시바의 여왕에게 커피를 선물 받고 부부의 연을 맺는 장면은 커피 애호가들에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에게 바쳤을 에티오피아 에어룸(Heirloom) 내추럴 커피를 한 잔 놓고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 생각한다. 성경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방식으로 역사가 되고, 현실이 되어 주는 게 아닌 듯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말씀’(Logos)은 커피를 쓰고 오신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6월 21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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