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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75: 교회의 신비(770~78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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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3 ㅣ No.2509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75. 교회의 신비(「가톨릭 교회 교리서」 770~780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주시는 거대한 ‘성체’와 같다

 

 

무엇이 “신비롭다”라고 말할 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신비로울 게 없습니다. 꽃은 신비롭습니다. 인간은 꽃에서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러나 짐승들은 꽃이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태극기를 보며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봅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 신비롭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입니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혼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혼의 결합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신비롭지 않습니다. 그의 ‘거짓’ 때문에 신비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를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버지”(요한 8,44)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고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 몸을 가리고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이렇게 진실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면 ‘신비성’을 잃게 됩니다. 사람이 끝까지 진실할 힘을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짓의 악령과 대비하여 “진리의 성령”(1요한 4,6)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간을 ‘신비’롭게 만드는 힘인 동시에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성령은 인간 안에 들어와 하느님 모습을 심어주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이는 하느님을 상징하는 신비롭고 성스러운 인간이 됩니다. 이렇게 피조물이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과 하나가 될 때 ‘신비’라는 말 대신 ‘성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신비’(mysterium)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합’을 의미한다면, ‘성사’(sacramentum)는 ‘눈에 보이는 피조물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결합’입니다.

 

가장 완전한 신비이자 성사이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가장 완전한 ‘신비’이자 가장 완전한 ‘성사’가 되셨습니다.

 

인간도 그리스도의 ‘성사’가 됩니다. 모든 성사는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성사를 받아들이는 이는 또 다른 성사가 됩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예수 그리스도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도 함께 받아들입니다. “성령께서는 … 성체 안에 탁월하게 현존”(737)하십니다.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모신 또 다른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사가 된 이들이 함께 모인 교회도 거대한 하나의 성사가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습니다.”(775) 마치 성체를 영한 한 인간이 또 다른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듯, 교회도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잉태한 하나의 커다란 성사가 됩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며, “진흙 집이며 왕의 궁궐”이며, “검지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771)입니다.

 

성사는 그 본성상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먹혀서 누군가를 또 다른 성사로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 소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이런 의미로 교회는 “구원의 보편 성사”(776)이고, 세상 구원을 위해 파견된 “그리스도의 도구”(776)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교회를 성사로 만드셨듯,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파견하여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성사는 믿는 이들에게만 구원을 줍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이들에게만 구원을 위해 유효한 것과 같습니다. 믿음 없이 성체를 영하면 성체는 그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믿는다”라고 고백할 때,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사임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박해하는 바오로에게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시며 교회를 당신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듯,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의 커다란 성체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을 때 교회를 통한 구원이 시작됩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6월 21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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