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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71: 성령의 임재(736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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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5-24 ㅣ No.2488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71. 성령의 임재(「가톨릭 교회 교리서」 736항)

 

성령이 내 안에 함께하심은 자신의 기분으로 측정될 수 있다

 

 

델마 톰슨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 훈련소로 이주해 살게 되었습니다.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모래바람이 불어 입과 눈과 음식으로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뱀과 도마뱀이 우글거리지만, 주위엔 자신들을 도와줄 누구도 없었습니다. 몇 달 만에 우울증에 걸린 그녀는 고향 부모에게 이런 하소연을 써서 보냈습니다.

 

“더는 못 견디겠어요. 차리라 감옥에 가는 게 나아요. 정말 지옥이에요.”

 

그러나 아버지의 답장엔 단 두 줄만 적혀있었습니다.

 

“감옥 문 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두 죄수가 있다. 하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는 흙탕길을 본다.”

 

이 두 줄의 글을 읽은 그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꺼리던 인디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로부터 공예품 만드는 기술과 멍석 짜기도 배웠습니다. 사막의 식물들도 자세히 관찰해보니 매혹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사막의 저녁노을은 신비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빛나는 성벽」이란 소설을 썼는데 엄청난 인기도서가 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막은 변하지 않았다. 내 생각만 변했다. 생각을 돌리면 비참한 경험이 가장 흥미로운 인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생각과 감정이 그리 쉽게 바뀔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세상에 기분 나쁜 감정으로 살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쁜 감정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델마 톰슨도 아버지의 편지 덕분에 마음 안으로 성령께서 들어오게 하였기 때문에 변한 것이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리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하느님은 필요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 자리 잡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하느님의 나라는 ‘행복의 감정’입니다. 이 감정의 느낌이 ‘성령’의 열매입니다.(갈라 5,22 참조) 사랑과 믿음이 성령으로 부어지는 것처럼(로마 5,5 참조) 기쁨과 평화의 감정 또한 성령으로 부어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라고 한 것처럼 우리 안의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내 안의 성령의 에너지를 측량할 수 있는 계기판이 필요한데, 바로 ‘기분’, 혹은 ‘감정’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라고 하십니다.

 

교리서는 “성령께서는 성부의 포도나무 가지에 열매를 맺게 하는 수액과 같은 분이시다”(1108)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요한 15,1-17 참조)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흘러들어오는 수액이 ‘성령’이십니다. 이 성령의 열매를 잃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갈라 5,17) 그래서 교리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가 자신을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더욱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736)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려면 자신의 욕망에서는 떨어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능력’으로 먼저 자신 안에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5월 24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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