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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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신경 - 하느님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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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20 ㅣ No.573

[교부들의 신앙 – 신경] 하느님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

 

 

“신경(信經)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믿고 고백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해답집입니다”(아우구스티노, 「설교집」, 214,1).

 

 

교부들이 강조한 ‘신경’

 

교부들은 자주 그리고 강한 어조로 ‘신경’에 대한 묵상을 강조해 왔습니다. 신경에 담긴 신앙 고백 안에서 교회가 고백하고 가르치며 전해 준 신앙의 진리가 핵심적으로 집약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 신앙 고백문들이 신자들의 생활에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기도와 묵상에 참되고 적합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치릴로 성인은 신경이야말로 교회에 의해 전해지고 성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신앙 진리의 총체로 여겼고, 우리의 마음 안에 새겨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겨자씨가 그 작은 씨앗 안에 많은 가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신경도 그 짧은 고백문들 안에 구약과 신약 안에 들어 있는 참된 믿음의 모든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받은 가르침들을 잘 간직하면서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것을 새겨 넣으십시오”(「예비 신자 교리 교육」, V,12).

 

교부들은 신경의 고백문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핵심 진리의 요약으로, 성경 안에 담긴 모든 것의 종합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한 문장 한 문장을 그냥 읽고 외우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고백문이 표현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묵상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우리가 주일과 주요 대축일마다 신경을 고백하지만, 과연 그 고백문 안에 담긴 내용을 얼마나 묵상하고, 또 깨닫고자 얼마만큼 노력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신경은 영적 인장이며, 우리 마음의 묵상이고, 항상 존재하는 보루와도 같은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신경은 우리의 가슴속에 지켜야 할 보물입니다”(암브로시오, 「신경 해설」, I).

 

‘인장’은 라틴말 ‘sigillum’을 옮긴 것인데, ‘날인’, ‘인호’ 등으로도 번역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받으면서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지워지지 않는 영적 표지인 인호를 받습니다. 이 인호는 그 어떠한 죄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암브로시오 성인은 우리가 교회로부터 전해 받은 ‘신경’도, ‘영적 인장,’ 곧 세례 때 받는 인호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지’로 해석합니다. 단순히 외우고 읊기만 하는 기도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경

 

“거룩한 사도들이 함께 모여서 신앙의 요약문을 작성했는데, 바로 우리 신앙의 모든 진리를 간결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간결함은 우리의 기억 속에 항상 간직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 사도가 열두 명이었듯이, 신경의 조문도 열두 가지입니다”(암브로시오, 「신경 해설」, II.VIII).

 

암브로시오 성인은 열두 사도가 직접 신경을 작성했다는 전설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실제 사실이라기보다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 전체를 사도들의 숫자로 상징하고자 신경을 열두 절로 구분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 신경’이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했다는 점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기에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신경은 로마 교회에서 세례 예식때 사용했던 신앙 고백문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세례 예식 때 사도 신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하느님께서 ‘신경’을 원하실까요?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를 위하여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의심하지 않게 하려고가 아니라, 그대가 믿게 하려고 ‘신경’을 원하십니다”(베드로 크리솔로고, 「설교」, 62,3).

 

베드로 크리솔로고 성인은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형식의 ‘신앙 고백문’을 원하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 등의 위험으로부터 굳건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기초를 하느님께서 원하셨다는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느님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믿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신앙 고백

 

교회는 미사 중의 한 감사송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이 감사송은 베드로 크리솔로고 성인의 말씀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하느님께는 우리의 찬미가 필요하지도,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찬미가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신앙 고백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이 사실 하느님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가 신앙 고백문을 통하여 신앙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과 세례로써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2-33).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주님의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합니다.

 

“여러분은 따질 것입니다.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했으면 됐지, 왜 입으로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담대히 말하는 꾸준한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입으로 신앙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더욱 충만한 사랑과 결의를 통해서만 우리는 높이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강해」, 34,3).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9-10).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영원한 의로움 속에서 다스리기를 기대하는 우리는,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고,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여 우리 안에 있는 이 믿음이, 교활한 이단자들의 올가미에 걸려 한순간이라도 금이 가지 않도록 할 때에만 비로소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신앙과 신경」, I).

 

* 장재명 파트리치오 - 부산교구 신부로 울산 우정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교부학과 교부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20년 1월호, 장재명 파트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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