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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지옥강론의 지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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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02 ㅣ No.1066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지옥강론’의 지옥 풍경

 

 

‘지옥강론’은 지옥에서 당할 각고(覺苦)의 참혹함과 하느님을 잃는 실고(失苦)의 참담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통회와 보속으로 지옥을 피하라고 권고하는 노래이다. 여러 이본 중에 교회에서 공적으로 사용한 「시복자료본」 소재의 ‘지옥강론’은 뒷부분이 일실되어 4음보 21행만 전해 온다. 이 자료와 시어의 측면에서 가장 근접한 「김지완본」 소재의 ‘지옥강론’은 4음보 33행으로 이루어졌다.

 

이 노래를 지은 민극가(1787-1840년)는 성경과 교리서, 신심서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반영하였다. 그는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교리 내용을 한글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대중들이 쉽고 빠르게 암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교리의 가사화는 기록 문학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 문학적 양식으로 치환하는 작업이었다. 이를 통하여 천주교의 가르침이 신분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게 전파되는 길을 열었다.

 

‘지옥강론’은 ‘상선벌악의 공정함 - 지옥 영고(永苦)의 실상 - 지옥행 회피 권면’으로 구성되었다. 첫머리에서 선인은 천국으로 가서 영복(榮福)을 누리지만, 악인은 지옥으로 가서 영고(永苦)를 겪을 것이라 단언한다. 4행에서 ‘천당강론 그만하고 지옥강론 대강듣소’라고 하여 ‘지옥강론’이 단독의 노래가 아니라 ‘천당강론’과 짝이 되는 노래이며, 지옥은 천당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각고의 참혹함을 노래하다

 

본사인 5-17행은 각고(覺苦)와 실고(失苦)에 대하여 언급한다.

 

천하만고(萬苦) 다모으고 세상만난(萬難) 가져다가

지옥고(地獄苦)에 비길진대 만분호리(萬分毫釐) 당할쏘냐

맹호독룡 잔해(殘害)하고 화해빙해(火害氷害) 끔찍하다

악즙독즙(惡汁毒汁) 입에가득 악성독성 귀에가득

흉형악형(凶刑惡刑) 눈에가득 악취독취 코에가득

사지백체(四肢百體) 어느곳에 화침독형(火針毒刑) 면할쏘냐

억억만년 지나도록 새록새록 괴로워라

죽고없어 면하잖들 그뉘능히 면할쏘냐

영혼본래 무형하여 죽도않고 멸토않네

각고(覺苦)비록 무한하나 실고(失苦)더욱 만배로다

세상부모 못뵈옵는 그괴로움도 난감커든

천주성용 천당영복 무슨복락 비할쏘냐

천주영광 잃었으니 생각도록 점점깊다

 

온 세상의 고통은 지옥 고통의 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며 각고의 참혹한 실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각고는 ‘삼사오관’(三司五官)이 당하는 감각적인 고통을 말한다. 곧 영혼의 세 가지 관능인 기억·지혜·사랑을 잃는 고통과 귀 · 눈 · 코 · 입 · 오체가 겪는 고통이다. 성경의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연기는 영원무궁토록 타오르고”(묵시 14,10-11)라는 대목에서 그 실상을 떠올릴 수 있다. 특히 지옥의 고통이 영원할 것이라는 표현은 다음의 「주교요지」 상편 ‘지옥은 천당과 맞은 짝이 되느니라’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개미 한 마리가 바닷물을 일 년에 한 모금씩 물어내게 하여 그 바다가 다 마르거든 지옥의 괴로움을 그치리라.”

 

 

실고의 참담함을 노래하다

 

각고에 이어 하느님과 영원히 격리되는 고통인 실고에 대하여 읊는다. 실고의 근원은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태 25,41)는 최후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지옥의 두 가지 고통 가운데 실고가 각고보다 만 배나 더 큰 괴로움이라 하면서도 각고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점이다. 이는 삼사오관이 당하는 고통인 각고의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묘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실고를 미루어 짐작하도록 하기 위한 시적 장치이다. 실제로 현세에서 느낄 수 있는 각고를 통하여 추상적인 실고의 고통을 체감하게 하려는 의도가 내재된 것이다. 이는 현세에서 지옥행을 피하고 천국행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당위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옥행을 피하는 삶을 권면하다

 

결사인 18-33행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피하는 삶을 권면한다.

 

이렇듯이 중한벌을 그뉘능히 면할쏘냐

면하고자 할진대 개과천선 으뜸이라

열심애주 하온후에 통회정개 보속하세

……

지옥강론 잊지말고 영혼육신 저히소서

선공간절(善功懇切) 발하오면 천주설마 버리시랴

주총내게 가득하면 삼구유감(三仇誘感) 자퇴(自退)로다

힘을쓰고 꾀를내어 성총회복 하여보세

주모신성(主母神聖) 돌보시면 설마지옥 보내실까

 

지옥의 각고와 실고에서 벗어날 방도로 ‘개과천선’을 들고 있다.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애주’(愛主)와 지은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痛悔),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는 ‘정개’(定改)와 죄로 말미암은 결과를 보상하고자 하는 ‘보속’(補贖)을 열거한다. 아울러 지옥을 피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초막(草幕)같은 천지간에 초로(草露)같은 인생이라’(22행)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현세를 가볍게 보려는 마음을 꼽는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2코린 5,1)라고 한 성경 말씀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 노래가 ‘지옥강론’임에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노래의 말미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면 세 원수인 육신 · 세속 · 마귀의 유혹도 스스로 물러날 것이며, 성모님과 수호천사들과 성인들이 돌보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하며 천국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천주가사는 현세의 그릇된 삶에 따른 참혹한 결과를 묘사한 뒤 이를 피하고자 현세에서의 삶의 도리를 제시하는 구성 방식을 통하여 ‘지옥강론’임에도 희망을 구가하는 노래로 끝내고 있다. 이는 이 노래가 대중들에게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천당강론’과 마찬가지로 현세에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살아서 천국 복락을 함께 누리자는 의도로 창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복음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옥을 면할 것이라는 데에 이 노래의 핵심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옥이 아닌 천국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천국과 지옥의 전제인 현세의 삶에서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천국이 아니라 악마가 이끄는 생지옥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지옥행과 천국행은 전적으로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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