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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행복을 찾아서: 순종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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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9-24 ㅣ No.963

[행복을 찾아서 – 순종]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번극할 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휴식될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나니.”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 고착과 전복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는 흔한 믿음이 있다. 역사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리 삶 또한 이러한 끊임없는 투쟁과 도전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의존적인 인간

 

의존이라고 하면 뭔가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약물 의존이나 게임 의존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렇다. 자유를 좋아하고 의존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의존적인 사람이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모두 의존적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만들어진다. 아플 때는 의사에게 의존하고, 공부할 때는 교사에게 의존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 의존한다. 부부는 서로 의존하며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

 

복잡한 사회 구조와 다양한 문화를 만든 인간은 완전히 의존적인 삶을 산다. 자유나 독립은 선언적인 의미일 뿐 문자 그대로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아가는 기인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자유란 사람과 어울림에 실패하여 생긴 반작용으로서의 자유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투쟁의 시작

 

인간이 무리 생활을 한 것은 적어도 육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친척 중에서 독립생활을 하는 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장류는 무리를 지어 서로 돕고 살아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서로 협력하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며 살아왔다. 이전 세대로부터 기술을 배우고, 지혜를 전수하며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부족 대부분은 높은 수준의 평등 사회를 이루고 사는데, 심지어 남녀의 차이도 별로 없다. 기능과 역할에 따른 성별 분업이 있고, 경험과 지혜에 따른 연령 분업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한 사회다.

 

사실 구석기 시대에는 계급 투쟁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고 부족 간 전쟁도 없었다. 싸울 일이 없었다.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것은 뭔가 원하는 것이 부족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면 되는 세상에서 굳이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약 일만 년 전 신석기 혁명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유야 어쨌든 많은 사람이 좁은 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한곳에 머물러 지냈다. 계급이 생기고 차별이 생기고 빈부가 생겼다. 타고난 신분과 지위에 따라서 인생의 여정이 달라진 것이다. 투쟁이 시작되었다. 투쟁이 시작되면서 무리에 대한 건강한 의존, 곧 믿음을 이용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존의 역설

 

신석기 혁명으로 말미암아 인구는 증가했지만 인류의 삶은 척박해졌다. 인간 상호 간 감염을 통한 질병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풍진, 페스트 등은 모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긴 질병이다. 태어난 아기의 절반이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고, 이후에도 40퍼센트의 성인 남성은 전쟁 중에 죽었다. 삶이 척박해질수록 계급과 집단 간의 경쟁과 싸움이 심해졌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과 투쟁했다.

 

모든 사람은 모두에게 의존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너무 강한 의존심을 가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되었다. 서로서로 이용하는 세상이라면 순진하게 의존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일 수 없다. 실제로는 의존하고 있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상대를 배신하고 위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상대에게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의존에 빠지지 않으려는 모순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의존보다는 조금 더 ‘좋은’ 의미가 있다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리 높은 가치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순종의 동의어는 복종과 순응이고, 반의어는 거역과 반항이다. 거역과 반항은 당하는 쪽에서 보면 나쁜 일이지만 성공만 하면 큰 이익을 주는 행동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순종’이라는 가치에 대해 ‘물론 좋은 태도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과 같은 애매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건강한 순종

 

심리학적으로 의존은 다른 이의 돌봄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시작한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행동하면서 이른바 ‘착한 아이’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정도가 심하면 의존형 성격이라고 한다. 그저 자신을 보살피고 일상의 결정을 대신 내려 줄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의존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유일하게 적극적인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의존할 대상을 열심히 찾아다닐 때다.

 

하지만 순종은 조금 다르다.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관심이다. 생태학적으로 적극적 생존 전략이자 타인 지향적이며 환경에 따른 유연한 전략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를 찾아 조언을 구하고 현명한 이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다.’(1사무 15,22; 이사 1,19 참조)는 것이다.

 

늘 순종적이고 착한 당신. 험난한 세상에서 이른바 ‘호구’가 되어 살게 될 슬픈 운명일까? 그러나 정확하고 사려 깊은 결정을 분별할 힘만 있다면 순종하는 태도는 뜻밖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도 있다.

 

오랜 지혜를 따르고 조언을 경청하는 태도는 늘 복심을 품고 역변할 자세를 가진 태도보다 건강하다. 순간순간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조금은 견디고 참는 것도 필요하다. 여름 내내 실컷 고생하고도 바로 알곡이 익지 않는다고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순종과 어리석은 의존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순종은 지혜를 구하고 따르는 것이지, 눈과 귀를 닫고 그저 하라는 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열린 자세로 여러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태도로 오랫동안 따를 길을 찾는 것이 바로 순종이다. 고민 끝에 한 번 결정하고 믿기로 하면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이 순종이다. 귀한 것은 금방 얻을 수 없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상황에서도 일단 믿었으면 가을까지는 기다려 보는 지혜다.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 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로 지내며, 서울대학교 비교무화연구소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일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9월호, 글 박한선 · 그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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