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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체험의 심리학 버킷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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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9-24 ㅣ No.962

[심리학이 만난 영화] 체험의 심리학 버킷 리스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에드워드는 억만장자다. 그의 관심사는 돈이다. 그는 병원을 소유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려고 병원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그에게 병원은 수익을 내는 도구이고 환자들은 돈이다.

 

사람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부른다.

 

오랫동안 에드워드의 곁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그의 손발이 되어 준 비서의 이름도 번번이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른다. 방금 전에 ‘토미’라고 불러 놓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 ‘토마스’라고 부른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카터가 어리둥절해서 묻는다. 도대체 토미와 토마스 가운데 당신의 진짜 이름은 뭐냐고. 그러자 비서가 말한다. “제 진짜 이름은 매튜입니다.”

 

 

버킷 리스트의 자격

 

로브 라이너 감독의 2007년 작품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는 암에 걸려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의 이야기다. 에드워드 콜과 카터 챔버스는 60대 후반으로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6개월, 운이 좋으면 1년 정도다. 같은 병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

 

“양동이를 차기 전에”(before we kick the bucket)라는 표현에서 나왔다는 버킷 리스트. 목에 줄을 매고 양동이 위에 올라선 사람이 양동이를 걷어차기 전에, 그러니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작성한 것을 말한다. 두 사람은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이를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이들의 버킷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진짜로 장엄한 광경 목격하기(히말라야에 가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 보기, 쉘비가 튜닝한 한정판 고성능 자동차 쉘비 머스탱 운전해 보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하기, 문신하기, 스카이다이빙 하기, 영국의 스톤헨지에 가보기,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주일 보내기, 이탈리아의 로마 여행하기, 이집트의 피라미드 보러 가기, 아프리카의 세렝게티에서 큰 고양이(사자) 사냥하기,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연락하기 등이다.

 

어떤 것은 나중에 추가되기도 하고(다시 연락하기), 어떤 것은 수정되기도 하고(사자 사냥하지 않고 세렝게티 가기), 또 어떤 것은 혼자만 하기도 했지만(문신하기), 에드워드와 카터는 자신들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에 버킷 리스트의 항목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

 

 

체험하기의 심리학

 

에드워드와 카터의 버킷 리스트에는 물건을 사고 싶다거나, 소유하고 싶다는 항목은 하나도 없다. 굳이 물건과 관련된 것을 찾자면, ‘머스탱 운전해 보기’ 정도다. 그런데 이것도 머스탱을 갖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운전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온 것들은 모두 ‘체험해 보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는 어쩌면 너무 당연해 보인다.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아파트와 자동차, 그리고 보석을 사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의 버킷 리스트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체험이었다. 직접 경험하고 몸과 마음으로 느껴 보고 싶었던 것들이다.

 

행복에 대한 최근 연구들은 물질보다는 체험이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같은 돈을 사용하더라도 물건을 소유하려는 소비보다 체험을 위한 소비가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비싼 옷과 구두를 사는 것보다 그 돈으로 여행이나 콘서트를 즐기는 것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연구에 참여한 이들에게 지난 5년 동안 했던 가장 중요한 물질적 소비와 체험적 소비를 회상하게 하였다. 참가자들은 체험을 위해 돈을 쓴 것이 물건을 사려고 돈을 썼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고, 만족감도 더 오래 지속되었다고 보고했다. 체험을 위해 쓴 돈은 나중에 “그때 돈 참 잘 썼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험이 우리에게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기쁨을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기억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유하려고 산 물건에 매우 빠르게 적응하고,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식상해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물질을 소유하는 기쁨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진다. 하지만 체험의 기억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남아서 그 당시의 기쁨을 되새겨 준다.

 

사람은 추억의 동물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체험으로 얻게 된 기쁨의 추억은 순간순간 다시 살아나 우리를 그 당시 기쁨의 현장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한다. 체험의 기쁨은 우리의 기억이 살아 있는 한 평생 지속된다. 그리고 이런 체험의 추억이 많을수록 우리 마음속 행복의 창고에는 기쁨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에드워드와 카터의 첫 번째 버킷 리스트는 ‘장엄한 광경 보기’였다.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종류의 체험 중에서도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직접 히말라야와 피라미드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에서부터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현실에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는 경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나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기쁨은 커진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과 키스하기

 

에드워드는 사람에 관심이 없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 딸 에밀리이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사위가 딸을 때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에드워드는 사위를 죽일 기세로 찾아갔지만, 그 대신 다시는 딸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는 에밀리가 이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와의 연을 끊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카터는 에드워드의 격렬한 반대에도 둘의 버킷 리스트에 마지막으로 하나를 추가한다.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연락하기.’ 카터의 장례식을 마치고 에밀리를 찾아간 에드워드. 그곳에는 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소녀가 따뜻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에드워드의 손녀다. 그는 드디어 버킷 리스트에서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연락하기’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과 키스하기’를 지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드워드에게는 손녀와의 만남이 바로 경외심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체험은 사실 여행도 콘서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것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9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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