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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보기: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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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9-10 ㅣ No.1684

[복음으로 세상보기]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예수님이 꿈꾸셨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마음껏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길 바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한 달에 얼마가 있으면 생활하는데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돈은 얼마가 필요할까요?

 

2020년 최저임금이 결정되었습니다. 최저임금은 시급이 240원 인상된 8590원입니다. 이 결정에도 많은 난항이 있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을 앞둔 지난 7월4일, 자유기업원 원장은 한 TV 토론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은 4000~5000원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실로 엄청난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최저임금을 무려 절반 안팎을 깎자는 주장입니다. 과연 지금의 최저임금으로, 또 반으로 삭감된 최저임금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연봉이 243억8100만원이라고 합니다. 한 달로 따지면 20억3175만원, 하루로 치면 9680만 원씩입니다.(한국일보 2018년 4월2일) 노동자들은 시간당 최저시급 9천원을 두고 치열하게 싸웠는데….

 

내년 최저임금을 적용해 보면 주 40시간과 유급 주휴시간을 포함하면 올해보다 5만160원 올라 월 179만5310원이 됩니다.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137~415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주휴수당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많이 올랐다고 비판하는 야당도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정규직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 가장 큰 소원입니다. 기술 사회가 되면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일하는 삶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되어갑니다.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알바로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절망과 좌절 속에 결혼을 포기하고, 출생률 꼴찌와 자살률 1위, 세계 최장노동시간 등의 파국적 삶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심각한 빈부격차와 양극화, 불평등, 민생고 문제들은 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소외와 갈등으로 몰아갑니다.

 

 

기본소득은 경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

 

해결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마태오 복음 20장의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세 시, 다섯 시 각각 일꾼을 불러 저녁 때 까지 일을 시킵니다. 일을 다 마친 후 주인은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었습니다. 미리 약정한대로 주인은 모두에게 똑같이 노동자 하루 품삯 8만원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일찍 와서 일한 사람들의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20,12). 이에 주인은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마태20,13-14.)

 

우리는 선뜻 이 포도밭 주인의 처사에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8시간 일한 사람이 1시간 일한 사람보다 더 품삯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8시간을 일하나 1시간을 일하나 똑같이 대우하면 불만이 생깁니다. 포도밭 주인처럼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똑같이 대우하면 누가 아침부터 일찍 나와서 일하겠느냐며 투덜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주인이 선하고 후한 분이라서 똑같이 주었다고 합니다. 선하고 후한 분이라면 각자에게 각기 일한 만큼에 상응하여 차별적으로 기본급을 지급한 후에 보너스를 더 주거나 품삯을 최저시급 이상으로 계산해서 더 많이 하루 일당을 지급해주면 불평을 들을 필요도 없고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나중에 일하러 온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합니다. 5시까지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던 노동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침 일찍 일자리를 찾아 일하는 사람보다 어쩌면 더 하루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일하지 못하면 내일 가족의 굶어야 할지 모릅니다. 가족의 생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생존의 기본임금을 의미합니다. 일이 없어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이건, 일을 적게 한 사람이건 누구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품삯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노동의 총량과 그 질에 관계없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비용이 바로 기본소득입니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경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 중심, 생명을 중심으로 임금을 바라봐야

 

예수님은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품삯을 줄 때 노동시간이나 노동의 양에 따라 합당하게 계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본급, 생계비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8시간 일한 사람도, 1시간 일한 사람도 하루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은 비슷할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시간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급이나 최저 생계비는 주어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계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영감을 얻은 경제학자 존 러스킨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의 부제는 생명의 경제학이었습니다. 간디는 본인의 자서전을 통해 “러스킨의 가르침에 따라 내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책이 바로 이 책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했던 노동이나 임금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입니다. 자본 중심의 경제학에서 사람과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을 통해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항상 “돈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임금을 바라봅니까? 자본을 중심으로 능력과 노동을 강조하고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하느님이 주신 모든 재화는 사람의 생존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먼저 나눠 함께 살 수 있는 사람 중심, 생명을 중심으로 임금을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9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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