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1일 (월)
(녹)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9-10 ㅣ No.648

[허영엽 신부의 ‘나눔’]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오래전에 사목했던 본당에서의 일입니다. 신자들을 대상으로 저녁 8시에 창세기 성경공부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첫날부터 할머니 한 분이 성당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강의 때마다 성경과 필기구도 없이 맨손으로 오셔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무셨습니다. 조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주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강의 첫날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고, 강사로서 분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도 똑같이 같은 자리에서 주무셨습니다.

 

세 번째 주에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그 할머니를 쫒아 갔습니다. “할머니, 제 강의 조금 알아들으시겠어요?”, “아휴! 잘 못 알아듣겠어!” 저는 차마 그분께 앞으로 오시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힘드시고 고단하신데 저녁 늦게 뭐 하러 성당에 성경 공부까지 하러 오세요. 집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니야, 그래도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해.” 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경공부가 마치 영어나 수학 과목으로 학교 공부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해야 하고 앞 내용을 알아야 뒤에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해주신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독일의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성경 읽기의 목적을 ‘우리가 온전해지는 것’,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에 눈뜨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륀 신부님은 성경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낱낱이 연구하거나 저자의 신학을 면밀히 고찰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내 삶에 비추어 읽고 스스로 되묻는 일입니다. 말씀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말씀이 내 안에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은 어디일까요? 성경을 해석할 때는 성경 언어의 비유성을 유념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체험의 표현입니다. 성경 언어는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체험을 비유로 표현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비유로 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을 비유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해석이 옳은지를 두고 다투는 위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할 때 유념해야 될 좋은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가 담긴 책, 하느님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주셔

 

성경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성경 공부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편 성경을 학문 연구 수단으로, 치열하게 공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성경에 대한 태도는 다를 것입니다. 우선 성경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아주 유익하고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곁에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합니다.

 

첫 번째,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가 담긴 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각 개인의 개별적인 삶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삶입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도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하느님에 비해 작고 부족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통해서 그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구약에서는 예언자, 또는 자연의 어떤 섭리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내가 바로 이런 존재다’라고 먼저 하느님께서 알려주셔야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이 먼저 말씀을 건네주시고, 스스로 알려주신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啓示)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신앙 공동체의 체험이 담긴 글이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어떤 일을 실제로 보고 듣고 겪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머리나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 인격 전체로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체험’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을 겪었다면,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상상할 수는 있지만 마음으로 공감하기는 힘든 일이 됩니다.

 

 

성경은 믿음을 갖고, 찾으며, 구하고, 읽어야 하는 ‘구원의 책’

 

세 번째로 성경은 연구나 실험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적인 능력의 이끄심, 다시 말해 성령의 영감에 의해 쓰인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이 주시는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살았던 신앙 선조들의 영적인 체험을 성경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도 같은 은혜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이 살아 계심,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이성적, 논리적인 판단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논리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책입니다. 믿음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부르시고 우리 인간은 응답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찾으며, 구하고, 읽어야 하는 ‘구원의 책’입니다. 오늘부터 성경을 5분씩이라도 매일 읽으면 어떨까요?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소리가 더욱 더 크게 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름에 크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9월호,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8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