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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공심판가의 영혼과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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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7 ㅣ No.1052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공심판가’의 영혼과 육체

 

 

‘공심판가’는 최후 심판을 묘사한다. 세상 종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산 이와 죽은 이를 공개적으로 심판하신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라는 ‘사도 신경’의 고백이 실현되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어

 

최후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영광을 떨치시며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이라는 ‘재난의 시작, 가장 큰 재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마태 24,3-31; 마르 13,3-27; 루카 21,7-28 참조)에 근원을 둔다. ‘공심판가’는 이처럼 재림하신 예수님의 엄정한 심판에 따른 칭찬과 질책이 있을 것이므로 이를 미리 알아 ‘착한 영혼’과 ‘악한 영혼’ 가운데 어느 편에 서서 살 것인지 결심하기를 촉구하는 노래이다.

 

이 천주가사는 ‘사심판가’와 마찬가지로 「박동헌본」과 「김지완본」에 전해 온다. 「박동헌본」은 4음보 115행인데 비해, 「김지완본」은 4음보 116행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어의 일부분만 다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1-6행은 사람은 누구나 심판받을 운명이라고 읊는다.

 

사심판은 죽는족족 영혼홀로 주대전(主臺前)에

상과벌을 결단하여 일정영원 변개(變改)없네

그공값과 그죄벌을 영혼혼자 못하리라

육신까지 지었으니 동수고락(同受苦樂) 당연하다

육신에게 못미치면 지공(至公)타고 이를손가

공심판에 이르러는 이와크게 다르도다

 

사심판, 곧 개별 심판은 죽은 뒤 하느님 앞에서 영혼이 심판받는 내용이다. 개별 심판에 대해 「성교백문답」은 “사람이 죽으니 그 영혼이 즉시 심판을 받는지라 … 오직 사람의 영혼은 지극히 신령한지라 육신은 비록 흙으로 돌아가나 그 영혼은 영원히 있어 없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언급한다. 개별 심판에서는 현세에서의 “그공값과 그죄벌을” 죽은 이의 영혼이 홀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심판, 곧 최후 심판에서는 인류의 마지막 날에 육신이 부활하여 분리되었던 영혼과 다시 만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현세에서의 ‘그공값과 그죄벌을’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도 함께 지었으니 고락을 함께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7-29)라는 성경 말씀에 기인한다.

 


천주 예수의 최후 심판

 

‘공심판가’ 서두에서는 ‘영혼과 더불어 육신도 상벌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어 육신이 부활하여 영혼을 만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37-53행의 묘사가 극적이다.

 

천신이 주명(主命)받아 호기(號器)를 크게불어

만만인을 불러내어 부활정판(復活定判) 하려하니

조성이후 많은사람 선자악자 물론하고

분묘중과 대해중에 원구시해(原軀屍骸) 뿜어내니

천당성령 지옥악령 본육신에 결합하여

착한영혼 육신보고 희락이 지극하여

세상에서 내영( )대로 고신극기(令苦身克己) 종신하고

사욕편정(邪慾偏情) 이긴고로 영복값이 네복이라

사랑하온 육신이여 영원동락 하리로다

악한영혼 육신보고 원수롭고 징그러워

원망하고 탓한말이 사욕편정 아니끊고

내명을 아니듣고 네편익만 좇았더니

원수로운 육신이여 동수영고(同受永苦) 네탓이라

악한육신 검은형상 더러운게 내음새라

오관백체 불이타고 전신이 나창(癩瘡)이라

착한육신 광명함은 태양보다 빛나도다

그몸에 광명함을 만국만왕 비길쏘냐

 

이 대목은 “그는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가 선택한 이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마태 24,31)라는 성경 말씀에 기반을 둔다. 그 세부적인 표현은 「주교요지」 하편 ‘세상이 마칠 때에 천주 예수가 다시 내려오시어 천하고금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느니라.’에서 “이때에 각 사람이 제 본 몸을 취하여 부활하니 … 선자의 육신이 다시 사니 … 그 모양이 양선(良善)하고 강건하며 아름답고 기묘한지라 … 악한 사람은 육신이 다시 살아 착한 사람과 상반하여 그 몸이 검고 더럽고 흐리고 무겁고 흉악한지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심판가’는 최후 심판의 장면을 세밀하게 그린다. 천사의 나팔소리에 모든 영혼과 부활한 육신이 심판장에 모이게 된다. 착한 영혼은 현세에서 종신토록 ‘고신극기’하고 ‘사욕편정’을 이겨 내며 부활한 자신의 육신을 보고 몹시 기뻐한다. 현세에서 영혼의 명에 따라 올곧게 산 육체에 대한 반가움이다.

 

그 반면 악한 영혼은 현세에서 음욕이나 방종과 같은 욕정에 빠져 자신의 편함과 이익만을 따르다 부활한 자신의 육신을 보고 마치 원수를 대하듯 징그러워한다. 착한 육신은 광명하여 태양보다 빛나지만, 악한 육신은 검은 형상으로 더러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심판 이후에 착한 영혼과 육체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지만, 악한 영혼과 육체는 영원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한 육신이 영혼과 다시 만나 심판받기 직전의 대비적인 모습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문제는 “영복값이 네복이라”, “동수영고 네탓이라”에 보이듯이 최후 심판의 결과는 현세에서 자신이 스스로 택한 길이라는 점이다. 곧 하느님 나라의 영광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지옥의 비참한 나락으로 들어설 것인지는 오로지 현세를 살아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사후 심판의 결과는 이미 자신이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너는 무엇을 위하여 성교에 나아오는가

 

인간은 가치 선택적 존재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인생, 어떠한 세계를 선택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영혼을 구하는 일보다는 육체를 가꾸는 일에,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에, 영원한 행복보다는 찰나의 기쁨에 집중하고 힘을 쏟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적어도 양자의 조화가 깨어진 것만은 사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신앙 선조들의 순교 영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공심판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혼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는 풍토, 정신적 가치를 말하지 않는 흐름,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영원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 분위기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천주가사의 현재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 첫 대목이 오늘도 새롭다.

 

문) 너는 무엇을 위하여 성교(聖敎)에 나아오는가? 

답)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니라.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장으로 계간지 「평신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8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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